걸어서 155마일
⑦ 경기 김포
전쟁 상흔 오롯이 품은
한강 하구 평화의 공간
대자연과 호흡하는 숲속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조각품 30점을 설치한 김포국제조각공원.
경기도 김포 월곶면 용강리 검문소 앞. ‘민간인 출입 금지’ 붉은 푯말이 보인다. 총을 멘 군인이 묻는 말에 답하고 인적사항을 장부에 기록한 뒤에야 검문소 차단기가 열린다. 검문소를 통과하자 좁지만 포장이 잘된 외길이 보인다. 푸른 하늘과 적막함이 진공상태로 포장된 마을 같다. 용강리에는 외지인이 이사 들어와 새로 지은 집이 많다. 원주민은 전체 주민(250명)의 45%에 불과하다. 정서가 달라 원주민과 외지인이 왕래하는 일은 드물다.
용강리 마을회관 앞에서 마을 이장 정해곤(74) 할아버지를 만났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소박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이 ‘산골 이장’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주민들이 검문소를 오가는 데 불편한 것은 없어요. 나는 아파트를 통과하는 게 더 어렵더라고.”
할아버지가 손으로 연신 땀을 훔치며 검문소 쪽을 바라봤다. 요즘 다른 민통선 지역에서 검문소를 없애자고 하는데, 용강리는 사정이 어떨까.
“최전방 지역이라 용강리만큼은 검문소를 없앨 수 없대요. 다른 지역의 검문소가 없어지면 되려 용강리 검문소는 김포시의 트렌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용강리는 공기도 좋고 물도 좋아서 통일만 된다면 사람 살기 좋은 마을로 소문이 날 겁니다.”
1949년생인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두 살이었다. 어머니 등에 업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바라봤던 총부리, 사람들을 쭉 세워놓고 총부리를 겨누던 군인들의 눈빛, 피란 갔던 동굴 속 습한 냄새 등 전쟁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고 했다.
용처럼 거대한 강령포 ‘용강리’
용강리는 경기 김포시 서북단에 위치한 민간인통제선 안에 위치한 마을이다. 서해로 흘러드는 한강 끝자락과 접해 있다. 서쪽에는 문수산이 솟아 있고, 동쪽엔 애기봉이 있다. 북쪽 넓은 들 끝에는 조강을 끼고 철책선 너머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 용의 용(龍)자와 강령포의 강(康)자를 하나씩 붙여 지은 용강리는 ‘용처럼 거대한 강령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강이 물길로 이용됐을 땐 용강리에 조강의 대표적 상업포구인 강령포가 있었다. 그 주위로는 드넓은 전답이 펼쳐져 있어 일 년 내내 장작불로 쌀밥을 지어 먹을 만큼 풍족했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용강리 앞 한강이 남북의 경계선으로 설정되면서 강령포는 폐쇄됐고, 어업과 상업에 종사하던 일부 주민들은 고향을 떠났다. 과거 융성했던 용강리는 이제 한적한 농촌 마을로 남아 있을 뿐이다. 최근 군사보호구역에 대한 제약이 완화되면서 용강리는 전원주택지와 생태 테마마을 조성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대자연과 호흡하는 숲속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조각품 30점을 설치한 김포국제조각공원.
“역사의 산증인을 소개해주겠다”면서 이장 할아버지가 길을 안내했다.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둘러앉아 있던 할아버지 셋이 목을 빼고 기자를 바라봤다. 이우일(82) 할아버지는 1950년 6월 25일 아침 상황이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1941년 용강리 강령포구 인근에서 나고 자랐다. 용강리는 6·25전쟁 당시 남한과 북한이 대치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쟁 시작 첫날부터 국군과 인민군이 이곳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인민군들이 개풍군에서 보트를 타고 조강을 넘어 강령포에 들어왔어요. 그때 내 나이 열 살 정도였는데, 마을 어른들이 수군거리며 마을 뒷산으로 도망가자고 말했어요. 우리는 이른 아침에 밥을 해 먹고 뒷산에 숨었지. 거기가 배미골이야.”
정유현(80) 할아버지가 말을 보탰다.
“그렇지, 그렇지. 멀리서도 인민군들이 총 들고 마을로 진입하는 모습이 보였잖아. 산에 숨어 있던 우리는 정말 무서웠다고. 동굴 속에서 누군가가 그러데요. 차라리 ‘인민공화국 만세’ 부르며 마을로 내려가면 살 수 있을 거라고.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내려와 인민군을 보자마자 ‘인민군 만세’를 외쳤어요. 이념이고 뭐고 그냥 살고 싶을 뿐이었지. 인민군들이 걱정하지 말고 하던 일 하라고 하기에 어리둥절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어요.”
파편과 한 몸이 돼버린 70년
문수산 꼭대기에서 인민군과 국군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산에서 온종일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가끔 배미골 계곡에 핏물이 흘러내렸고, 인민군들이 들것에 실려 내려왔다. 정해균(85) 할아버지는 어느 저녁에 화장실을 가는데, 어둠 속에서 산바람을 타고 화약 냄새가 나던 날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고 했다. 하늘이 푸른 멍이 든 것처럼 파랬다고.
중간에 대화에 낀 용강리 주민 이영범(60) 씨가 “주민들 대부분이 피란을 떠나지 못했다”며 “6·25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낸 사람이 많다”고 말을 거들었다.
“주민들이 그때까지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잖아요. 하루에 수만 개씩 포탄이 떨어져도 무서운 줄 모르고 전쟁 내내 마을에 머물렀던 거예요. 포탄이 몸에 박히는 ‘사고’도 많았죠. 이 어르신이 그 사고를 당하셨잖아요.”
전쟁의 아픈 기억과 가난하고 헐벗었던 고단한 시절, 풍요가 시작되기까지의 과정을 거쳐온 용강리 주민들.
왼쪽부터 이영범, 정해균, 정유현, 이우일, 정해곤 할아버지.
1952년 여름 용강리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정해균 할아버지는 그때 겨우 열다섯 살 소년이었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 논에 물을 보러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대포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할아버지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때 박힌 파편이 지금도 몸에 남아 있다. 할아버지가 펜을 들고 종이에 그날의 기억을 펼쳐놓았다.
“중공군이 용강리에 주둔한 미군을 잡겠다고 대포를 쏜 거예요. 때마침 들판에 있던 내가 대포 파편에 맞은 거지. 아버지가 나를 가마니에 말아 지게에 지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살려달라고 미군 부대에 맡기셨어요. 이후 미군 의무병원에서 치료받았지. 내 등에는 파편 자국과 미처 제거하지 못한 파편이 엑스레이 사진 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박혀 있다고.”
70년이 흘러 이제는 한 몸이 돼버린 그 여름날의 파편. 할아버지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전쟁은 참 비참한 거야”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평화통일 주제로 한 세계 유일 테마공원
어르신들의 배웅을 받으며 몸을 차에 실었다. 용강로를 따라 10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도 김포반도 북쪽을 휘두른 문수산 숲길.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엔 새들만 지저귈 뿐 사람 하나 오가지 않는 평일 오전 여름 숲은 고요하면서도 평화롭다. 155마일 휴전선 끝자락인 문수산이 바라다보이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접어드는 지점에 들어선 이 숲길은 1998년 통일과 평화를 주제로 조성된 세계 유일 테마공원 ‘김포국제조각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7만㎡의 넓은 숲속에 산행길과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다. 문수산을 감싸고 형성된 숲길에는 조각 작품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형상화한 세계적 조각가 14인과 국내 저명 작가 16인의 작품 30점이 2km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실내나 넓은 잔디밭에 세워둔 기존의 조각 공원과 달리 대자연과 호흡하는 숲속에 작품을 설치한 점이 이 공원을 한없이 매력적으로 만든다.
김포평화문화관은 김포의 평화문화자원과 통일미래 비전을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배우는 평화문화 체험 공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2021년 10월 개장한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모습.
크리스마스트리를 형상화한 흔들다리를 건너면 조강전망대에 다다른다.
공원에 들어서자 100m 길이의 오솔길을 따라 늘어선 15개 스테인리스 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것의 정체는 프랑스 현대미술가 다니엘 뷔렌이 통일의 길, 인생의 길을 묘사한 ‘숲을 지나서’. 각 틀에는 8.7cm의 줄무늬 33개가 앞뒤로 각각 한 줄씩 이어진다. 오르막 방향에는 흰색과 주황색의 줄무늬가, 반대의 내리막 방향에는 흰색과 청색의 줄무늬를 적용해 서로 다른 시각적 효과를 연출한다. 33개 줄무늬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외친 3·1만세 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남한을 의미하는 파랑과 북한을 뜻하는 빨강을 중화해 주황색과 청색으로 표현한 것이라니,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외국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깃발’은 두 개로 나뉜 한반도의 불완전한 상황과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남북의 평행 관계를 국기가 걸리지 않은 붉은색 국기 게양대로 형상화한 프랑스 현대미술가 장 피에르 레이노의 작품. 높이 15m의 두 개의 긴 깃대가 높이가 다른 받침대 위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김포지구 전투에서 서울을 수호한 해병 제1연대 제3대대, 독립 5대대 용사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위해 건립된 애기봉 해병대김포지구 전적비.
완만한 내리막이 끝나는 산자락에는 언젠가 남과 북이 하나로 조우하길 바라는 바람이 담긴 조각품 ‘산들거리는 속삭임’이 있다. 일본 작가 고조 나시노의 작품이다. 높이 5m의 묵직한 강철 삼각 지지대 위에는 빛나는 한 쌍의 날개가 가벼운 느낌으로 얹혀 있다. 하늘과 구름, 바람, 땅, 숲 등 자연과 한데 어우러진 4차원의 조각품을 구경하면서 2시간에 걸친 평화 여행은 끝이 난다. 전쟁의 상흔을 걷어내고 평화에 한 걸음 가까워진 나그네는 융단처럼 펼쳐지는 소나무와 그 사이로 끊어질 듯 아련하게 이어지는 숲길과 조각품을 바라보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친다.
함께 둘러보면 좋은 김포 여행지
김포평화문화관
김포의 평화문화자원과 통일미래 비전을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배우는 평화문화 체험 공간이다. 한강 하구에 인접한 김포의 특성과 상징성을 담아 북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보낸다는 의미로 컨테이너 건축물로 조성됐다. 1층과 2층에 걸쳐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영상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AR(증강현실) 영상과 게임, 분단문학 작품 등 다양한 평화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
1978년 건립돼 노후화된 기존 애기봉전망대와 간이휴게소 등 건물 2개 동을 허물고 조강전망대, 평화생태전시관, 생태탐방로, 테마공원, 흔들다리 등을 새로 조성해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으로 2021년 10월 개장했다. 공원 전체 면적은 4만9500㎡. 기존 애기봉전망대를 조강전망대로 이름을 바꿨다. 북한 개풍군과 김포 조강리 사이에 흐르는 조강의 명칭을 따 새로 지은 것으로, 북한과 1.4㎞ 거리에 있다.
애기봉 해병대김포지구 전적비
해병대사령부에서 김포지구 전투에서 서울을 수호한 해병 제1연대 제3대대, 독립 5대대 용사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1989년 11월 건립한 비석이다. 해병 제1연대는 전쟁 중 위기를 만회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 작전의 선봉군 역할을 한 부대다. 1·4후퇴의 와중인 1951년 3월부터 휴전 시까지는 해병 독립 제5대대가 이곳에 배치돼 한강을 사이에 두고 중공군과 대치하면서 한강 넘어 개풍군 및 개성 등으로 침투해 50여 회 작전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