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12021.11

특집

종전선언과 한반도


종전선언으로 대화 시작하고,
평화프로세스 지속하는 토대 마련



최근 종전선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갖는 의미와 역할을 살펴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1일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종전선언과 관련하여 △서로에 대한 존중 보장 △타방에 대한 편견적 시각과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 및 정책 철회 등을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다.

  종전선언과 관련한 논의와 제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우리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그 시작은 1992년 발효된 ‘남북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이다. 남북기본합의서에는 “현 정전상태를 공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두 번째는 1996년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제안으로 진행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남·북·미·중 4자 회담과 북·미 핵협상이다. 세 번째는 2007년 10·4 남북 정상회담 합의이다. 남북은 “현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종전선언으로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계기 마련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신 베를린 선언’을 통해 처음으로 종전선언 논의 의지를 표명한 이후, 2018년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함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이번에 제안한 종전선언 역시 비핵화 협상이나 평화체제로 들어가는 입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등의 변화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실질적 평화가 더 중요하며, 종전선언 이후 관련 국가들의 약속 이행 여부가 불투명하고 입장을 번복할 우려가 있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상호 신뢰와 선언적인 입장 표명, 이행 등 세 가지 모두 필요하다. 종전선언이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상으로 들어가자고 하는 ‘정치적 선언’이더라도 그 자체로 갖는 의미가 크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대북제재의 지속, 코로나19의 확산, 체제 안전보장에 대한 신뢰성 결여, 비핵화 협상의 부진 등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된 지 2년 반 이상이 지났다. 이번 종전선언 제안이 남·북·미·중 중심의 대화를 통해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북·미 간 비핵화 논의 재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우리 정부는 중재를 포함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난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의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청와대

국방력 강화 흐름 속 대화 준비하는 북한
  북한은 작년만 해도 남북관계를 적대관계로 규정하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번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나름대로 해석이 필요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리태성 외무성 부상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과 함께 조건부 남북관계 개선을 대내외에 표명했다.

  북한의 대남·대외 정책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와는 조금 다른 결을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전제조건을 포괄적으로 제시했지만, 구체적 사안을 대화 재개 조건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대미전략 구상을 집행하기 위한 전술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을 보면 대화도 준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말이 아닌 실천으로 민족자주의 입장을 견지’할 것과 더불어 ‘남북선언의 성실한 이행’과 남북관계를 ‘근본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경제정상화, 국가 방위력 강화 및 체제 공고화 등 대내 문제에 집중하면서 대외 문제에 있어서 전술적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2021년 1월에 개최한 제8차 당 대회 결정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여긴다.
어떤 일이든 마무리가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지난 4년여의 노력은
그 어느 시기보다 역동적이었다.
한반도에서 평화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전력투구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와 국방발전전람회 연설을 통해 북한의 입장과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첫째, 한국을 통해 미국의 입장을 확인하고 태도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한미연합훈련과 첨단 전략무기 도입 중단 등 적대시 정책 철회와 이중적 태도 시정 등을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다. 또한 북한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미국의 태도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강 대 강, 선 대 선 원칙’ 아래 협상의 여지를 열어 놓고 대미요구 조건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있다. 나아가 남북관계 쟁점 해결의 조건을 제시하여 한국이 적극적인 행동으로 미국을 설득하게 함으로써 미국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둘째, 자위권 차원의 국방력 강화를 위한 정당성 확보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무장력 확보는 전쟁억제가 목적임을 강조하고, 북의 주적은 한국과 미국이 아닌 ‘전쟁 그 자체’로 규정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에서 미·중 간 경쟁과 갈등이 경제를 넘어 군사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맞추어 북한도 제8차 당 대회에서 제시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상의 중점 목표 달성을 위해 전술핵무기 개발을 본격화하고 첨단 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 북한의 반응도 그 연장선에서 국가방위력 강화를 정당화하고 대북제재 명분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 또한 전략 · 전술무기의 개발 문제를 북·미/남북관계와 분리, 별도의 프로세스임을 명확히하여 추진한다는 것이다. 9월 25일 김여정 부부장의 담 화 이후 3일 만에 동해상으로 발사체 발사, 최근 잠수함

  발사탄도미사일 (SLBM) 시험발사와 더불어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국방력 강화는 필수적이고 사활적인 중대사’라고 언급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국방부문 과업이 다른 부문들 보다 우선시되는 선차적 과제임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10월 21일 평통 장성군협의회가 진행한 한반도 종전 응원 캠페인
한미가 함께 ‘근본 문제’ 협의하며 북한과 해결점 찾아야
  최근 이러한 동향들을 종합해 볼 때, 남북 간 신뢰회복과 함께 남북관계의 공간을 마련하고 중재 역할에 적극 나서는 등 ‘대화’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 남북의 상호 평화번영을 위한 큰 틀 속에서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 접근해야 한다. 근본 문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 북한의 체제안전 우려 해소와 함께 비핵화를 비롯한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대화 없이 대결이 지속되면 군비경쟁만 가열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는 “앞으로 대북 대화 재개 시 북측 관심사를 포함한 모든 사안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양국의 입장을 확인했다. 10월 12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이 없다는 미국 측의 ‘진정성’을 재확인한다고 밝히면서,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북한과 만나서 협상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동북아 내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북한이 한미를 극도로 불신하는 상황에서 한미 양국의 분명한 입장 표명은 큰 의미가 있다.

  이제는 한반도 상황과 유관한 근본 문제에 대해 한미가 충분한 협의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북한과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상호 대립과 대결국면을 반복할 것인가? 남북/북·미관계 정체가 장기화되는 사이에 북한은 ‘자기의 길’대로 핵·미사일 등 군사력 강화에 집중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역행하고, 나중에는 접점을 찾기 어려운 수준으로 선을 넘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상관성을 고려하면서 관계 발전과 신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북한은 자위권 차원의 국방력 강화를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 11일부터 22일까지 당 창건 76돌을 기념하여 열린 국방발전전람회
ⓒ연합/조선중앙통신
백 리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여겨, 마지막까지 전력투구해야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종전선언 도출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하지만, 결과에 너무 급급해서는 안 된다.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과 북한이 제시하는 조건과 입장이 달라 조율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전선언과 비핵화 등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여 차기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논의해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색된 남북 및 북·미관계가 지속되고, 이러한 상태가 차기 정부에 그대로 이관되어 정책의 연속성이 차단되는 것은 전략적·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에도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남북/북·미관계 경색국면의 장기화는 상황 악화만 초래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서두르지 말 고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데 더욱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향후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조건의 변화 가능성이나 한반도와 북한에서의 정세 변동 등에 대한 치밀한 대비도 필요하다. 북한의 내부변화와 선택, 미·중관계의 변화 양상에 따라 남북, 북·미 및 북·중 관계에 다양한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대응책 마련에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여긴다. 어 떤 일이든 마무리가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지난 4년여의 노력은 그 어느 시기보다 역동적이었다. 한반도에서 평화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전력투 구해야 한다.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대화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건은 남북 모두에 공통되어 있다.

  남과 북은 모든 것을 대화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포괄적이며 폭넓은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관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