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12021.11

북한 포커스


사상초유의 시련에 놓인 북한,
전향적 길로 나설 가능성은?



지난 10월 10일은 북한 노동당 창건 76주년이었다.
창건 기념일에 나온 발언들을 토대로 현재 북한의 고민과 상황을 알아보면서 북한의 대외전략을 전망한다.


지난 10월 10일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노동당 창건 76주년 기념강연회에서 주민생활 안정을 강조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북한은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6주년 기념일을 계기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기념강연회(10.10.)와 국방발전전람회(10.11.)를 개최했으며 두 행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두 연설을 진행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기념강연회에서 대외 메시지 없이 당 차원의 중요 과업을 재차 강조했다.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발전기에 맞게 당 사업을 더욱 개선 강화하자’고 하면서 5년 안에 주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 제8차 대회가 설정한 5개년 계획 기간을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고 인민들의 식의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인 5년, 세월을 앞당겨 강산을 또 한번 크게 변모시키는 대변혁의 5년으로 되게 하자”고 말했다. 이어서 국방발전전람회에서 ‘국방력을 지속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대외적으로 한국과 미국을 향해 이중기준, 적대시 정책 철회 등 대화 조건을 재차 명시하며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사상초유의 시련 앞에 체제결속과 주민생활 향상에 집중
  이번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강조한 내용을 분석해 보면, 앞으로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체제결속을 다지는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경제 및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진행한 강연회, 전람회의 의미를 계속 부각하면서 성과 도출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대내외 사안의 변화, 중요성을 인식하며 올 연말까지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성과 도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견된다.

  대외적으로는 강경 노선을 계속 견지하기보다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려는 목적이 엿보인다. 유엔의 대북제재 장기화와 코로나19 여파,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민심을 다독이며 경제회복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북한 내부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와 연일 강조하는 북한 내부 상황 등을 유추해 보면, 북한의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 상황은 점차 심각한 수준으로 가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0월 18일자에서도 대북제재 장기화와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된 북한의 현 상황을 ‘사상 초유의 시련’이라고 표현했다. “오늘 나라 사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생활상 애로도 적지 않다”면서 “남들 같으면 열백 번도 쓰러졌을 장기간의 가혹한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또 코로나19로 북한의 국경이 장기간 폐쇄되며 무역은 급감하고, 외화 사정은 점차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식량 및 생필품과 원자재 수급 상황이 좋지 않고 물가 및 환율 변동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북한의 불안한 경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의 대중국 무역 동향을 보면, 2017년 1분기 북·중 무역액은 12억 961만 달러였던 것이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2018년 1분기 4억 7,268만 달러로 대폭 줄었다. 그 이후 다소 증가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1분기에는 2억 2,671만 달러로 급감했다. 그 이후도 북·중 무역은 계속 줄어들어 2021년 3분기에는 1억 1,960만 달러에 그쳤다.


먹고사는 문제 커지며 높아진 주민 불만
  북한 내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종합해 보면, 먹는 문제와 경제난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6월 노동당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어려운 사정을 인정했다. 9월 14기 5차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어떤 불리한 기상·기후 조건에서도 농업생산의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9월 도·시당 책임비서들에게 “옥수수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라”는 지시를 내렸을 정도이다. 일반 주민들이 겪는 식량난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공개한 사진 자료를 보면, 최근 북한의 농촌에는 올해 농사의 성과적 결속을 강조하는 선전화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가을걷이와 탈곡을 힘 있게 다그쳐 올해 농사를 성과적으로 결속하자’는 문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이 올해 110만 톤의 곡물을 외부에서 들여와야 할 것으로 추산했는데, 20만 5,000톤을 수입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결국 86만 톤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일랜드의 인도주의 단체 ‘컨선월드와이드’와 독일의 ‘세계기아원조’가 10월 14일 공동 발표한 ‘2021 세계기아지수(GHI)’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기아지수는 25.2점으로 ‘심각’ 단계로 분류됐다. 최악의 기아 수준 100점을 기준으로 50점 이상이면 ‘극도로 위험’, 35~49.9점은 ‘위험’, 20~34.9점은 ‘심각’, 10~19.9점은 ‘보통’, 그리고 10점 미만은 ‘낮음’ 등 5단계로 분류한다. 보고서에서는 2018~2020년 사이 북한의 영양부족 인구는 전체 주민의 42.4%로, 조사대상 116개국 가운데 5번째로 높은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자료: 컨선월드와이드

  북한의 경제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민도 더욱 깊어졌을 것으로 추론된다. 지난 10월 10일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당 책임 일꾼들은 고상한 도덕품성을 지니고 인민들을 존중하며 자기를 무한히 낮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민심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연일 강조하면서 자구책을 찾고 있지만, 북한 내부 노력만으로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확인된 일이고, 이는 북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대외 무역을 재개하고, 제재가 완화돼야 경제 회생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주민생활 향상을 강조해 왔던 김정은 위원장은 2016년 5월 제7차 당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도 실패하면서 올해 초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을 다시 내세웠다. 올 연말에는 일정한 성과를 보여줘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또다시 실패를 자인하며 2022년을 맞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10월 19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주민들이 농기계로 벼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

北, 상황 따라 적극적으로 대외 행보에 나설 수도
  이런 내부적인 경제 여건은 최근 북한이 부분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는 배경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상황 조성에 따라 북한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외 행보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국경 봉쇄를 부분적으로 완화하고, 대내외 경제 정책을 더욱 중시할 것이다. 남북 통신선 복원에 이어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긍정적 화답을 하고 있다. 북한의 반응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북한으로서는 새로운 국면 전환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낙관적으로 전망하면, 북·미 간 물밑 대화가 지속되고 남북 간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은 있다. 2022년 2월 개막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는 또다시 평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희망적 기대도 해 볼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이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여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낸다면 한반도의 경색국면을 다시금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무턱대고 유화적 움직임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생각하는 조건(적대시 정책 철회, 체제 보장, 대북제재 완화 등)이 어느 정도 마련되면 남북관계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가 중요하다. 북한으로서도 핵 보유 가치가 떨어지거나 핵 고집으로 인해 잃게 되는 기회비용이 커지게 되면 대미 및 대남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지적·대응하되, 한편으로는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 국면전환 과정에서 북한이 보여주는 단편적 행태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합리적인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한다.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의 토대 위에서 남북뿐만 아니라 동북아 경제가 균형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 생명 및 그린 공동체를 실현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내외 공감대 확산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가오는 연말 연초에 종전선언으로 평화협정이 구체화되고, 한반도 대전환의 시기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부행장·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