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평화
카메라에 담긴 고려인의 일상
과거를 딛고 일어선
고려인의 현재
행복한 고려인의 삶을 전하는 ‘길 위의 사진가’
  김진석 사진작가는 2016년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사진 촬영 의뢰를 받아 카자흐스탄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모진 역사 속 이미지와는 달리 행복한 웃음을 짓는 고려인들을 만났다. 현재의 고려인을 기록하는 것이 과거의 고려인을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에 살고 있는 고려인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가 말하는 고려인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본다.
카자흐스탄 쉼켄트에서 보안업체를 운영 중인 이 드미트리 씨의 가족사진
강제 이주라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다
  1937년 10월 어느 날. 러시아 연해주에 살고 있던 우리 민족 17만 2,000여 명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굉음을 내며 달리는 열차에,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화물칸’에 실려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강제 이주가 진행된 것이다.
  강제 이주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소련의 1937년 10월 25일자 보고서에 기술된 내용에 고려인 총 3만 6,442가구의 17만 1,781명이 이주를 마쳤다. 이주 고려인들은 카자흐공화국에 2만 170가구의 9만 5,256명, 우즈베크공화국에 1만 6,272가구의 7만 6,525명이 124편의 열차를 이용해 배치되었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철도는 대략 30~40일 정도가 소요되었다. 열차 환경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 열차는 화물칸 50량, 위생객차 1량, 식당차 1량 등으로 구성되었다. 화물칸은 이층 구조로 되어 있었고 1개의 난로가 있었는데 5~6가구(30여 명 정도)가 탑승하였다. 이동 중 노약자가 사망하기도 했는데, 그 인원은 554명에 이르렀다. 강제 이주 과정의 실상에 관해서는 원로 고려인들의 회상을 통하여 많이 알려졌다. 부실한 식사와 불결한 위생상태, 식수 부족, 의료 지원의 부족 등 한 달여의 여정은 고통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인들은 왜 강제 이주 되었는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극동지역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본 첩자의 활동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있다. 외모에서 고려인과 일본인을 구분할 수 없었고, 일본과 전쟁을 앞둔 상태에서 고려인들의 밀정(?)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논리였다.
  두 번째는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의 규모가 생각보다 컸고 특히 한반도와 경계를 이루었던 러시아 포시에트의 경우는 고려인들이 절대다수를 형성하고 있었다. 즉 고려인들의 자치구 요구가 높아졌고, 향후에도 영토적 자치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본 소련 정부는 있을지 모르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성을 느꼈다.
  마지막으로는 소련이 지배하고 있던 중앙아시아 지역에 인구를 공급하고 전쟁 물자에 필요한 농업생산력 증대를 위해서다. 이미 1928년에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벼농사를 성공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농업기술을 가진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 지역의 농업생산력 향상을 위해 적합한 민족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주역으로 성장한 고려인
  현재 고려인의 수는 5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대한민국 외교부 추산 집계). 고려인들이 주요 거점으로 살고 있는 국가들은 러시아를 비롯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3국 등 10여 개의 국가에 이른다.
  현재 고려인들은 강제 이주 이후 5세대의 후손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다. 주로 비즈니스와 농업, 문화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30대와 40대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통해 고려인들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중앙아시아의 K열풍을 타고 자신들의 뿌리인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상승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와 경제 발전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한글 보급의 확대와 인적 교류 등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활발했던 교류들이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지만 위드 코로나 이후 더욱 발전된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과거 강제 이주에 대한 슬픔을 딛고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가고 있는 고려인들은 앞으로 한국의 신북방정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김진석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