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비전 인터뷰
“내 꿈은 통일한국 홍보대사”
박기태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단장
반크(VANK)는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약자다. “한국을 잘 모르는 세계인에게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사이버 외교 사절단”을 자임한다. 1999년 출범 후 세계 지도에서 ‘동해’ 표기 오류를 바로잡고, 각종 해외 교과서에 ‘직지’를 등재하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 중심에 박기태 단장이 있다. 자신의 장래 희망은 ‘통일한국 홍보대사’라고 말하는 박 단장을 만나 그의 통일비전을 들었다.
“반크가 그동안 해온 일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국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1999년 반크를 처음 만들던 당시, 세계인은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에 대해 잘 몰랐어요. 보통 사람들은 한국이 어디 있는지 잘 몰랐고, 아시아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오히려 잘못된 정보가 널리 퍼져 있었죠. 그걸 바로잡아서 세계인이 우리를 제대로 알게 만드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에 매력을 느끼고 우리와 친구가 되고 싶도록 만드는 게 반크의 목적이었습니다.”
박기태 반크 단장 얘기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바로 이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이 달라졌다. 예를 들어 1999년 당시 지도에 ‘동해’가 표기된 사례는 약 3%에 불과했다. 지금은 세계 지도의 약 40%에 ‘동해’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 거대한 변화의 출발점은 박 단장의 사소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자 달려온 20여 년
잠시 시곗바늘을 과거로 돌려보자. 1999년 박 단장은 서울 한 대학 일문과 학생이었다. 교양과목으로 ‘홈페이지 만들기’ 강의를 들은 뒤 수업 과제로 ‘해외 펜팔 사이트’를 만들었다.
“거기에 ‘저는 2002년 월드컵이 열리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라는 소개 글을 올렸어요. 그러자 제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 대부분이 ‘한국이 어디 있나요?’라고 묻더군요. 위치를 알려주려고 글로벌 검색 사이트에서 ‘Korean Map(한국 지도)’을 검색했을 때 처음 본 지도가 제 삶을 바꿨습니다.”
박 단장 눈에 처음 띈 지도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 바다, 즉 ‘동해(East Sea)’ 자리에 ‘일본해(Sea of Japan)’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 단장은 “그 지도를 외국인 친구에게 전송할 수는 없었다.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본해를 지우고 동해라는 이름을 써넣은 뒤 사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문득 “이러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제게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야?’라고 묻는 사람은 몇 명 안 되잖아요. 외국인 대부분은 한국에 관심이 생기면 직접 ‘Korean Map’을 검색할 테고, 그중 상당수가 잘못된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어요.”
마침 취업을 위해 토익 공부를 하다 ‘제품에 이상이 있을 때 항의하는 영어 표현법’을 배운 참이었다. 박 단장은 그 예문을 활용해 “지도 표기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영어 이메일을 작성하고, 세계 유명 지도 제작사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에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이 일어났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담당자가 “앞으로 제작하는 지도에 ‘일본해’와 ‘동해’를 병기하겠다”는 답신을 보내온 것. 그 편지를 펜팔 사이트에 올리자 회원들이 하나같이 “신기하다” “놀랍다”며 감탄했다. 이들이 박 단장과 힘을 합쳐 ‘한국 제대로 알리기’에 나서면서 반크의 역사가 시작됐다.
박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박기태 반크 단장과 지난해 12월 6일 상호협력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뉴스1)
박 단장에 따르면 반크는 1999년부터 2022년까지 세계 지도회사, 교과서 제작사, 박물관, 미술관 등 영향력 큰 기관 720곳의 한국 관련 오류를 바로잡았다. 2015년 9월, 세계 87개국 62개 언어로 교과서를 발행하는 ‘돌링킨더슬리(DK)’ 교과서에 ‘직지’를 등재하는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홍보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2021년 5월엔 200년 역사를 가진 콜린스 영어사전에 ‘한복’이라는 단어가 ‘한국의 전통 의상’이라는 설명과 함께 등재됐다. 이 또한 반크의 노력 덕분이다. 반크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총 5회에 걸쳐 대통령 단체 표창을 받았다. 박 단장은 독도평화대상, 이순신대상, 세종문화상, 독립운동가 해공민주평화상, 도산 안창호 사회통합상 등을 수상했다.
통일한국 브랜딩에 앞장설 미래
박 단장은 이 변화가 가능했던 건 자신이 ‘대한민국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140여 개국 가운데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 세계인을 전율케 하는 K-pop과 기생충·미나리·오징어 게임 등 매력있는 콘텐츠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소프트 파워’ 강국, 어느새 세계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 ‘대한민국’ 브랜드가 있기에 반크의 한국 알리기 활동이 힘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박 단장은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한다. 그의 관심은 머잖아 이뤄질 한반도 통일 이후 국가 브랜딩에 쏠려 있다. 그는 “한반도 통일을 이뤄내 동북아시아 긴장 관계를 해소하면 한국은 아시아의 ‘피스 메이커’로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며 “특히 동서양의 만남이 빈번해지고 대륙문화와 해양문화의 접촉이 활발해지는 세계화 시대에 한국은 아시아와 태평양을 연결하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문화의 다리로서 세계인에게 창조적 영감을 주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통일한국이 지향해야 할 모습을 C, O, R, E, A 다섯 개의 알파벳을 이용해 정리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무대에 처음 알려진 고려의 영어 표기 COREA에서 따온 것이다.
“저는 COREA의 C에서 Culture, 즉 높은 문화의 힘을 떠올립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의 경제력은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군사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하셨죠. 저는 통일한국은 백범이 꿈꿨던 문화대국이 돼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박 단장의 말이다. COREA의 두 번째 스펠링 O에는 Oriental, 즉 동양 평화에 대한 의미를 담고 싶다고 한다.
박기태 반크 단장(왼쪽 여섯 번째)이 지난해 12월 8일 ‘2022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시상식’에서 대통령 단체 표창을 받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독립운동가 안중근 선생은 우리가 동양 평화를 주도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유럽연합보다 50년 앞서 아시아 공동체를 설립하고자 했고, ‘동양평화론’ 설계에 자신의 삶을 바치셨죠. 저는 통일한국이 이 꿈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한·중·일 3국이 분쟁이 멈추고 협력해 경제를 발전시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반도가 통일되면 우리는 안중근이 가졌던 동양 평화의 꿈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COREA의 세 번째 스펠링 R에 대응하는 영어 단어는 Restoration, 사라진 역사의 회복이다. 박 단장은 이 대목에서 매헌 윤봉길 의사 이야기를 꺼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에서 일제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져 일본군 전력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당시 일본 내무성이 작성한 문서에는 윤봉길 의사의 꿈이 기록돼 있습니다. ‘나의 거사가 당장 조선 독립을 가져올 수 없다 할지라도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세계인이 조선의 존재를 알게 할 것이다. 현재 세계지도에 조선은 일본과 같은 색으로 표시돼 있어 세계인이 조선의 존재를 모른다. 나를 통해 세계인에게 조선의 존재를 강력하게 새겨녛는 것이 장차 우리 독립운동에 있어 결코 헛된 일이 아님을 믿는다.’ 저는 반크 활동을 하며 이 말씀을 자주 되새겼습니다. 여전히 세계 많은 교과서에서 한국은 일본, 중국에 비해 턱없이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이 비중이 달라지고, 우리나라를 세계에 더 널리 알리고자 했던 윤봉길 의사의 꿈이 마침내 이뤄질 겁니다.”
5000년 역사에 처음 찾아온 ‘위대한 기회’
박 단장이 COREA의 E에 담은 의미는 Earth, 지구촌을 향한 봉사다. 박 단장은 통일한국의 진정한 가치는 세계를 향한 봉사를 통해 완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반도 통일은 세계 평화에 큰 도움이 되며, 지구촌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제 어느새 COREA의 마지막 A에 왔다. 박 단장은 A에서 Ambition, 즉 세계 문명을 만드는 위대한 야망을 떠올렸다. 그는 대한민국이 세계 역사에 기록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며 잠시 숨을 골랐다.
반크는 세계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자 노력하는 사이버 외교사절단으로, 통일 한반도의 홍보대사가 되고자한다.
“저는 통일한국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 모든 것이 반드시 이뤄지리라 믿거든요.”
그러면서 박 단장은 잠시 힘겨웠던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봤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다른 나라의 식민지였고, 1950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 1960년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
“그런데 보세요. 불과 30여 년 만인 1996년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잖아요. 2018년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로 세계 12위 경제대국이 됐어요.”
박 단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잠재력이 있습니까.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우리가 이룰 미래가 얼마나 찬란할까요. 통일한국이 건설되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은 우리나라 5000년 역사에서 그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위대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박 단장은 “나는 더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이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통일한국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설렘을 느끼고, 나와 함께 통일한국 홍보대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의 통일비전은 한국이 세계 평화를 선도하는,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새로운 문명의 중심에 서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 꿈이 조만간 이뤄지기를 박 단장과 함께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