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윤석열 정부 1주년 대북정책 및 남북관계 평가
대화 경색, 군사적 긴장 이어져도
일방적 양보는 금물
윤석열 정부가 출범 1주년을 맞았다. ‘담대한 구상’을 통해 30여 년간 악화한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나가겠다고 밝혔던 출범 당시의 정책 목표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짚어봤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년이 지난 현 시점에 남북관계는 경색 상태다. 대북정책은 북한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북한은 2022년에만 36차례에 걸쳐 70발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누가 자기 운명을 강낭떡 따위와 바꾸자고 하겠는가”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올해도 잠수함 발사 장거리순항미사일(SLCM)과 신형 핵탄두 ‘화산-31’,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잇따라 발사하는 등 핵·미사일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북한이 긴장을 조성한다거나 대화가 경색 국면에 있다고 해서 이것을 대북정책 자체의 문제로 보기엔 한계가 있다.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큰 불안요인은 북한의 자의적 정세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이고, 이를 변화시키는 것이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인식 및 주요 논거
윤석열 정부는 출범 당시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진보적 정책 노선을 채택했던 문재인 정부하에서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사실에 주목한 듯하다. 특히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북한이 2~6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등 핵능력이 고도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북한을 상대하는 데 있어 우리 능력을 확장하고, 남북한 관계의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을 교정해나가는 한편,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다양한 카드를 발굴할 필요가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전략적 결단’에 기댄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이 결국 북한 핵능력 고도화를 불러왔다는 인식을 갖고 원칙과 일관성에 기초한 ‘북한 비핵화’를 추진했다. 즉 강력한 억제(deterrence)를 바탕으로 북한 핵무기 포기(dissuasion)를 유도하며, 이 과정에서 대화(dialogue)를 통한 문제 해결을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북한의 성의 있는 태도 변화가 없는 한 현행 대북제재와 국제적 압력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도 견지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북한 비핵화 정책이 제재와 압력 일변도로 구성된 것은 아니며, 이는 2022년 8월 15일 발표한 ‘담대한 구상’에서 잘 나타난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시 ‘한반도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R-FEP)’ 등을 포함한 다양한 대북협력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이 구상은, 북한 비핵화에 따라 조기에 상응조치가 가능하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보상이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상황에 따른 탄력적 적용의 여지를 넓히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보도한 4월 13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 시험 발사 모습. (뉴시스)
윤석열 정부는 또한 ‘대화와 상호존중에 기반한 남북관계 정상화’를 표방해왔는데, 대화의 문은 열어두면서 원칙에 기초하되 정세와 국익을 고려한, 실용성과 유연성이 조화된 남북관계를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의 국가정체성(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존중 등)을 바탕으로 수용 가능한 것과 수용 불가능한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한편, 한국의 가치와 체제에 부합하는 남북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 정부가 어떠한 관계를 ‘정상적’인 남북관계로 보는가에 대한 인식은 정부 출범 이후 과거 남북관계에 대한 재조사 조치에서 짐작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과거 정책 결정 과정 및 책임자 규명에 나선 주요한 사례로는 2019년 11월의 탈북선원 강제송환, 2020년 9월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사건 등이 있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 우리 관할에 들어온 북한 주민에 대해 충분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를 시행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고 역할이라고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북한이 한국에 대해 국격모독형 발언을 하는데도 침묵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 주민의 인도적 여건 개선 및 삶의 질 증진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이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맥락을 같이한다. 지난해 5월 북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정부가 북한에 방역·의료 지원을 위한 회담을 제의한 것 역시 그 연장선에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추진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뿐 아니라 과거 남북관계로 유발된 우리 국민의 인도적 고통 역시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적 문제 해결’에서 이 부분 못잖게 방점이 찍히는 것은 북한인권에 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인권재단 출범을 목표로 삼고 있고, 북한인권 증진을 위해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했으며, 실제로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인권대사를 조기에 임명하고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발의국으로 복귀하는 등 발빠른 조치를 취했다. 이는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정권 엘리트의 인권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고 인권유린에 대한 부담감을 가중시키겠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남북이 공존하며 번영하는 한반도 구상
윤석열 정부 대북정책은 비핵화를 통해 남북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고 번영하는 한반도를 만드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과거 정책에서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차별화할 것은 분명히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북한이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면서 남북대화가 정체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의식과 행태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일부 양보적인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남북관계의 속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북한이 남북관계를 주도한다는 착시를 바탕으로 더 공세적이고 호전적인 대남정책을 구사했던 것이 과거의 교훈이다. 이러한 면에서 북한 비핵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선적 목표라는 점, 더 이상 과거의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향후에도 꾸준히 전개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분명히 전달한 것만으로도 지난 1년의 행보는 제대로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향후 윤석열 정부가 해결해야 할 대북정책과 남북관계의 과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 화해협력을 위해 우리의 정체성을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북한이 수용하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이를 바탕으로 화해협력을 추진한다는 정책기조를 꾸준히 추진해나가야 한다. 이 연장선에서 북한인권에 대해 더 많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남북관계가 발전하려면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체제를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한 수용은 불가피할 것이지만, 남과 북의 정치·경제 체제가 다르다는 점이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 훼손을 묵과하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왼쪽 두 번째)이 4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국가 위기관리센터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둘째, 과거 남북관계에 있어 김정은이 가진 인식의 중심에는 ‘주도권’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내재돼 있었다. 지금은 북한이 현재 여건으로는 기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체제안전 보장을 표방하고, 대내적으로는 ‘자강력’을 통한 경제 발전을 지향하지만, 이는 결국 주민 불만 해소와 지배 연합 공고화라는 상위의 목표를 위한 것이다.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김정은 중심 1인 권력체제 유지에 있다고 봐야 한다. 현재 북한은 이를 위해 핵개발이 최선의 수단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며, 북한의 계산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핵개발을 통해 김정은의 1인 지배체제가 오히려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줘야 한다. 또한 핵개발이 대내적인 주민 통제와 대외적 체제안전 보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해온 체제안전 보장 문제와 관련해서는 ①수령독재체제의 안정적 유지 ②남북관계에 있어 북한의 대남 우위 확보 ③이에 걸림돌이 되는 한미동맹 등 한국의 주요 안보장치 해체 등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반면 ①수령독재체제의 급격한 붕괴 방지 ②한국에 의한 흡수통일 배제 ③한미 동맹체제 등 외부요인으로 인한 북한 체제 안정성 훼손 우려 등에 대해서는 일정한 보장이 가능할 것이다.
셋째, 향후에도 대북정책의 기본은 대북 억제태세이며, 특히 북한 핵위협과 관련해 강력한 대핵(對核) 능력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 일부에서는 한반도 긴장 고조를 우려하지만 긴장은 회피하기보다는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다. 오히려 우리가 현시점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무력(武力) 시위에 대해 무력감(無力感)에 빠지는 일이다. 수년 전부터 한국과 미국에서는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목표이고 북한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대북제재와 압력으로 위기를 조장하기보다 북한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핵무기 위협을 차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의견은 오히려 더 큰 북한의 위협과 도발을 불러오는 전조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의 일방적 유화주의는 북한이 보기엔 자신들의 전술이 먹혀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협상 국면의 우위에 선 평양이 그 단계에서 멈춰야 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한반도판 ‘뮌헨 신드롬(Munich Syndrome)’이 생겨날 수 있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일은 물론 쉽지 않으며, 많은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길이야말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가야 할 길이며,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차 두 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