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24 파리 하계올림픽에서의 남과 북
‘평화의 성전’에도 남북관계 개선 요원
北 선수단 ‘우리는 하나’ 느끼게 해야
제33회 파리 올림픽이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전 세계 206개국 1만여 명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이번 대회에 남북한 선수들도 참가한다. 잔뜩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북한은 남한을 ‘괴뢰’, ‘괴뢰 한국’이라고 칭한다. 한때는 한반도기를 내세우고 함께 입장하고 한 팀으로 뛰었던 남북.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는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16일 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국제올림픽휴전센터(IOTC)의 슬로건으로 올림픽의 주요 정신으로 통한다. 올림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포츠 대회인 올림픽이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스포츠가, 올림픽이 평화와 무슨 상관성을 가지고 있기에 세계 평화를 구현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수 세기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올림픽 유산(Olympic Legacy)’의 뿌리를 ‘평화’라는 틀 안에서 살펴볼 때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올림픽 게임은 평화 유지를 위해 ‘올림픽 정전(Olympic Truce)’을 구현했다.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기간에는 ‘평화의 성전(Sacred Heaven of Peace)’이 선포돼 전쟁 중이라도 모든 국가가 정전을 선포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스포츠 종목의 종합대회인 올림픽은 지금껏 국제 평화 구현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남북관계도 그러했다. 6·25전쟁 휴전 협정 체결이 얼마 되지 않아 남북관계가 잔뜩 얼어붙었을 때 남북은 올림픽 단일팀 구성이란 주제로 회담을 시작했다. 1963년 1월 24일 스위스 로잔에서 이루어진 남북 체육 회담이 그것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남북 동시 입장
남북 체육 교류 역사의 시작이 된 이 회담은 1962년 7월 28일 북한이 도쿄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협의를 위한 실무 회담을 제안하면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 남한은 북한의 제안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IOC가 남한이 북한과의 단일팀 구성에 대한 가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도쿄 올림픽에 북한을 단독으로 출전시키겠다며 중재에 나서자 회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 체육 회담은 6·25전쟁 이후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를 통틀어 남북 인사들이 만나는 첫 공식 접촉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으나, 회담은 당시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남북 대표자들 간 상호 비난 속에 결국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이러한 모습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남북 단일팀으로 탁구 여자 단체전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던 것은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였다.
올림픽에서 남과 북이 처음으로 손을 잡은 것은 지난 2000년 9월 호주에서 개최된 제29회 시드니 올림픽이다. 당시 입장식에서 남북은 각각 90명씩 총 180명이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 입장했다. 비록 경기는 남북으로 나뉘어 치렀으나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손을 맞잡고 한반도기를 흔들며 함께 응원하는 모습은 전 세계인의 박수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올림픽 등 종합경기대회에서의 남북 공동 입장은 메인 행사가 되다시피 했고 2018년 치러진 평창 동계올림픽과 자카르타 팔렘방 장애인아시안게임까지 모두 12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구성됐고, 같은 해에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농구와 드래곤보트, 카누 등 3개 종목,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수영과 탁구 등 2개 종목에서 남북이 단일팀으로 출전해 경기를 치렀다.
北, 한국팀을 ‘괴뢰’ ‘괴뢰 한국’ 표기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2 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남북 체육 교류가 통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자가 전체 응답자의 7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교육부와 통일부가 실시한 ‘2018년 학교 통일 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정권)에 대해 2018년 단일팀 구성 운영 이후에는 ‘협력 대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50.9%로 전년 대비 9.6%포인트가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북한이 ‘적’이라는 응답자는 5.2%로 전년 대비 35.8%포인트가 하락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인식 변화를 보였다. 이처럼 남북 체육 교류는 국민에게 통일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남북 체육 교류는 이어지고,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해빙 분위기와 북한에 대한 국민 인식 변화의 계기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섣부른 예측일지 몰라도 현재의 분위기는 참으로 암울하다.
현재 북한에서는 남한을 향해 6·25전쟁 초기나 1970~80년대에나 있을 법한 험한 말들을 쏟아내고, TV 방송에서는 남한을 ‘괴뢰’로까지 표기하는 것도 모자라 태극 마크를 삭제하거나 민간 영역의 상업보드인 한글 간판까지도 모자이크 처리하는 등 매우 적대적인 행태를 취하고 있다.
2023년 10월 5일 중국 항저우 첸탕강 스마트 뉴월드 일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마라톤에서
한국 응원단과 북한 응원단 앞으로 각국 선수들이 함께 뛰고 있다. (뉴시스)
스포츠 현장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이미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중국 항저우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 당시 북한은 자국 선수단의 호칭을 놓고 북한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또 여자 축구 남북 대결을 중계하면서 한국팀을 괴뢰라고 표기했다. 올해 5월에 개최된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17세 이하(U-17) 여자 아시안컵에서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대회에 참가 중인 한국 대표팀을 ‘괴뢰 한국’이라고 소개했다. 이처럼 북한 관영 매체들은 지난해부터 한국을 소개할 때 남조선 대신 ‘괴뢰’나 ‘괴뢰 한국’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7월 26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33회 파리 올림픽에서의 남북 교류는 요원해 보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문화체육관광부나 대한체육회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는 듯하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는 달리 정부 차원에서 파리 올림픽을 통한 남북 체육 교류에 대한 브리핑은 한마디도 없고,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역시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라면서 “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정도만 언급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에는 장웅 IOC 위원 이후 후임자가 없는 상태고, 북한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은 민간인 신분이 아닌 북한 내각의 체육상(김일국)이 겸직하고 있다. 북한의 체육상은 우리나라로 치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이 때문에 아무리 국제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이라지만 대한민국을 괴뢰라 부르며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는 이 시기에 북한 정권의 장관이 남한의 민간인인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만나서 남북 체육 교류를 협의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남북관계는 생물처럼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에도 남북은 핵과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 등으로 곧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지만 결국은 북한의 고위층 참가와 단일팀 구성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이끌어낸 적도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올림픽은 정치와 다르다”
국제 스포츠 현장에서 남북 간의 긴장 대치는 결국 북한의 선수단에만 피해가 간다. 그간 국제 스포츠 현장에서 남북이 같이 출전한 경우 남한 선수단은 공동 훈련을 통해 북한 선수의 경기력 향상 지원이나 훈련장비 지원 등을 종종 해왔다. 그리고 한 민족으로 한 핏줄을 가진 선수로서 서로 친밀감을 유지하면 낯선 현장에서 선수들의 긴장감 해소에도 적잖은 도움이 돼왔다.
그러나 남북 긴장감이 심화되고 북한 정권에 대한 국제 제재가 강화될수록 북한 선수단은 스스로의 활동을 베일에 감추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유발해 정신적 스트레스로 생기는 부담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은 북한의 경기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올림픽은 평화 이념을 실천하는 자리다. 남북관계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긴장 상태라 하지만 올림픽에 참가한 한 민족, 한 핏줄의 선수단이 악수도 거부하며 서로 모른 척 무시할 이유가 없다. 스포츠는, 올림픽은 정치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는 우리 남한의 선수단과 체육인들이 좀 더 여유로운 자세로 북한 선수단에게 친밀한 말 한마디 더 건네고, 응원단들은 북한 선수단에게 더 크게 힘내라고 함께 응원해주면 어떨까. 혹시 사전에 남한 선수단엔 눈길 한 번이라도 주지 말라고 교육받고 왔을지도 모르는 북한 선수들은 이역만리 머나먼 땅에서 속으론 내심 역시 ‘우리는 하나’라는 걸 느끼며 고마움에 울컥할지도 모를 일이다.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의 축제인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관계의 현실은 아쉽지만, 그 축제를 즐기는 우리 선수단과 응원단은 북한의 선수단을 한 번 더 보듬어주는 아량으로 훗날의 기억을 뿌듯함으로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성 문 정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