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시간 10분!
북한 인권 국제 컨설턴트
(민주평통 자문위원)
변호사 강다예
남북관계 어려울수록
서로 보듬어야
“지속 가능한 평화엔
‘정의’가 필요”
안녕하세요. 호주에서 온 한인 2세 법정 변호사 강다예라고 합니다. 호주에는 사무 변호사(Solicitor)와 법정 변호사(Barrister) 두 가지가 있는데, 법정 변호사는 재판과 소송 준비와 법원에 들어가서 하는 일을 맡고 있거든요. 그래서 판사님 앞에서 변호하는 일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에 있는 시민단체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함께 컨설턴트 일을 하는데, 덕분에 1년에 한두 번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됐어요. 탈북민들을 인터뷰해서 북한에 어떤 인권유린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서를 쓰는 작업을 돕고 있습니다.
강다예 변호사가 5월 1~3일 서울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2024 글로벌 전략특별위원회 워크숍’에 참석해
글로벌전략특위 위원 임명장을 받고 있는 모습과 민주평통 행사에 참석해 경청하는 모습.
‘전환기 정의’와 ‘피에 물든 석탄’ 보고서
인권·시민단체들 중에는 변호사가 없는 곳이 많아요. 국제인권법이나 국제형사법 등을 사용해서 보고서를 쓴다면 어떤 내용들이 필요하고 법의 조건들이 충족되는지 그런 컨설팅을 주로 하고 있어요. 북한 인권 문제는 제가 딱히 관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사용을 하지’, ‘어떻게 해야 제일 높은 효율성을 끌어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대학 생활 때 꽤 많은 단체들에 소속돼 있었는데 어떤 곳에서는 조언을 해주고, 어떤 곳에서는 인터뷰를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이벤트를 실행하기도 했죠. 그런데 자연스럽게 다 끝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게 북한 인권이었습니다.
이게 참 신기한데요. 법대를 졸업하고 법원에서 1년 계약직으로 판사 보조를 했어요. 그걸 끝내고 제 미래에 대해서, 앞길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때가 스물서너 살 때인데 딱 그럴 시기잖아요. 그러다 그냥 한국에 좀 가봐야 되겠다 싶어서 들어와서 한 달을 거의 여행만 했어요. 한국에 계신 친척들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제주도도 다녀오고. 그러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에 갔어요. 그곳에서 만난 교수님이 ‘서울에 이런 시민단체가 있는데 관심사에 맞을 것 같다. 가서 만나보지 않겠냐’고 해서 사무국장님과 부국장님을 만나게 됐는데, 부국장님이 폴란드 출신이세요. 요안나 호샤냑 박사님인데, 어린 시절 1950~60년대 북한과 비슷한 (공산) 체제를 몸소 겪으신 분이라서 북한에 대한 시선이 한국분들과 달라요. 사무국장님도 대단하신 게 국제엠네스티 한국 본부를 만들어서 민주화 운동을 같이 하시고, 대한민국이 민주화된 후에 ‘이제 북한에 있는 형제들도 우리가 나서서 도와야 되겠다’라는 취지로 만든 단체가 북한인권시민연합입니다.
강다예 변호사는 호주에서 법정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제일 처음에 했던 일은 ‘전환기 정의’에 대한 보고서였어요. 그러니까 평화로운 통일이 일어나면 어떠한 일들을 해야 되는지, 어떠한 숙제들이 있는지 보고서를 썼어요. 그다음 2017년에 여성 인권 보고서를 냈는데, 2013년 이후에 탈북하신 분들을 인터뷰를 해서 낸 게 그 보고서였답니다.
그다음에 2019년, 2020년에 걸쳐서 써낸 석탄 보고서 ‘피에 물든 석탄’이라고 있는데요. 북한 사회는 성분으로 나누어져 있잖아요. 제일 나쁜 성분들은 제일 어려운 직업, 아무런 보호 장비나 아무런 기계 없이 석탄을 손으로 깨뜨리고 캐내는 작업이 주어지거든요. 그 석탄이 어디로 가서 어디에 쓰이는지, 누가 사용하는지 그런 것들을 제가 질문을 드려서 보고서를 써낸 게 그겁니다. 북한 정부가 그 석탄으로 어떻게 체제를 이어갈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연구했어요.
“국민 섬기지 않는 곳이 나라일까요?
2020년에 국제변호사협회에서 주는 ‘올해의 젊은 변호사상’을 받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일이 없었어요. 1년 차였는데 ‘변호사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지원서를 넣었거든요. 그때 하던 게 많았어요. 인권 변호 일을 하고 있었고,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일도 하고 있었고, 박사 논문을 하고 있었고. 그냥 제가 하고 있던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지원서를 쓰고 지도교수님들한테도 레퍼런스를 받아서 냈는데 됐어요.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기회를 많이 얻게 된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조용했던 시기에 제가 어떻게 하면 제 일을 조금 더 효율성 있게 할 수 있을지, 제가 가진 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서 북한 인권단체나 북한 인권에 관심 있는 분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뭘까라고 생각을 좀 바꿔봤어요. ‘나는 변호사고 북한 인권을 알고 있어, 그다음에 한국어랑 영어 둘 다 능통하고, 그러면 법령을 조금 번역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을 하다가 이제 좀 찾아봤어요. 영문으로 돼 있는 북한 법령들은 어떨지. 그런데 ‘북한 법령 중에서 제일 이상한 10가지’ 아니면 ‘북한에 가면 이 10가지는 불법이다’, 너무 희화화하고 선정적인 내용이 많은 거예요. 아니면 정치색이 들어갔거나. 그래서 아무런 편견 없이 그냥 번역만 하는 그런 리소스가 되고 싶었고 그 덕분에 또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요. 대한민국 법제 데이터베이스에 북한 법령이 240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한 3분의 1을 번역하다가 본업이 바빠져서 손을 놓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2020년 ‘올해의 젊은 변호사상’ 수상 기념사진.
정부와 공무원은 국민들을 섬기고 국민들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생겨났잖아요. 그런데 국민들을 제일 높은 자리에 두지 않으면 그걸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북한의 인권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북한분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중국 드라마를 보면서 진짜 우리가 아주 다르게 살고 있구나, 아주 험하게 고생을 정말 많이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조금씩 더 접하게 됐잖아요. 그럴수록 더 강경하게 대책을 세워야 북한 정부가 존속할 수 있잖아요. 특히 정권이 바뀌고 코로나가 생기고 나서 국경을 봉쇄하거나 이런 것들을 계기로 더욱더 나빠지는 걸 보고 있고. 또 탈북을 하다 잡히면 형벌이 엄청나게 더해진 거예요. 노동단련대에서 6개월만 일하면 풀려났는데, 이제는 교화소에서 5년형을 받는다고 해서 참 큰 걱정입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피해자가 내는 게 맞죠. 제가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탈북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일단 파악을 하고 그분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를 한 다음에 그것을 분석해서 내는 게 보고서입니다. 제가 이 활동을 하면서 안타까운 부분이 꽤 많아요. 많은 것들을 몰라서 내가 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또 민족의 아픔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제 할머니 아니면 아버님들 어머님들이 겪으신 고통들에 대해서 쉽게 말씀을 못 하고 그냥 그런 생각을 안 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것을 그냥 덮어둔다고 해서 사회가 건강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평화로운 통일이나 지나간 아픔들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볼 계기가 좀 많았으면 좋겠어요.
지속 가능한 평화 밑에 ‘정의’ 꼭 필요
요즘 남북관계가 좀 많이 어려워지는데요. 이럴수록 서로 잘 보듬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탈북민들이 여기 오면 조금 좋아질 줄 알았더니 차별을 당한다, 빨갱이라고 놀림을 당한다, 적응하기에 조금 어렵다, 정부의 보조금을 어디서 받는지 잘 모르겠다, 휴대폰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 등 아주 일상적인 차별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정부 대 정부가 어려워질수록 시민 대 시민으로 서로 잘 돌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민자 경험이 있잖아요. 차별도 좀 많이 당해봤고. 시민들이 서로 돌봐주면 그게 미래의 정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어머니(왼쪽)와 할머니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통일은 가능한데 그게 어떤 형태일지 언제 찾아올지는 모르겠어요. 더 강경한 정책,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통일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체제라고 하던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도, 소련도 다 무너졌잖아요. 북한이 꽤 오래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북한 시민들도 조금씩 괴리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수령님이 우리를 돌보신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 생활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이제 우리가 생각하던 통일이 아니라도 조금 더 교류가 많아질 날이 있지 않을까, 그게 제 인생의 일부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오셔서 생활하는 탈북민이 3만 명이 넘어요. 그분들의 생각과 경험들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답이 있습니다. 탈북민들에게 더 많이 지원해주고, 북한에 아직 계시거나 중국에 난민이 되어 계시거나 북한분들을 생각하면서 만드는 정책이 바로 통일정책의 진일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되는지, 어떤 법령을 사용해야 되는지, 어떤 제도가 있어야 되는지, 남북한 간에 아주 많은 면에서 다르잖아요. 미래의 탈북민 2세 아니면 아주 어릴 때 탈북을 해서 대한민국에서 인생 경험을 쌓아가는 젊은 분들과 같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속 가능한 평화란 그 밑에 정의가 꼭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과정에 연관된 사람 모두 ‘그래도 정의롭다’, ‘그래도 통일할 만했네’라는 생각을 하려면 그 밑에 정의가 있어야 됩니다. 평화통일 밑에 어떤 정의가 필요한지 생각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시간 10분!
정리·엄 상 현 기자 | 사진·박 해 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