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12022.09.

세계는 지금


민주평통에는 131개국에서 3 , 900명의 해외 자문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코리안의 삶과 평화통일 이야기를 자문위원의 시선으로 소개한다.

청년의 나라 동티모르

말모이 정신으로
한국학 씨앗을 심다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동티모르는 21세기 최초의 신생 독립국으로, 사람으로 치면 이제 갓 스무 살 된 청년이다. 1975년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했지만 열흘 만에 인도네시아에 다시 점령당했고, 2002년에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독립했다. 최창원 분회장이 동티모르와 인연을 맺은 건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8년. 장관 회의 통역을 위해 방문했던 동티모르에서 만난 현지 대학 총장의 한국어 교수직 제안은 그에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현지 대학의 열악한 재정 상황 탓에 보수도 없이 8년을 일했지만 새로 태어난 젊은 나라에서 무엇이든 이뤄 낼 수 있다는 설렘으로 지금껏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최근에는 동티모르에서 순수 외국어 중 최초의 사전인 『테툼어(동티모르 언어)-한국어 사전』을 발간하는 쾌거를 이뤘다. 백지상태와 같았던 청년의 나라 동티모르에 한국학의 씨앗을 심고 가꿔온 최창원 분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 최창원 민주평통 동티모르분회장

최창원 민주평통 동티모르분회장

설렘 좇아 떠난 동티모르에서
한국학의 대부가 되다

Q. 동티모르는 어떤 나라인가?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 티모르섬의 동부에 위치한 동티모르는 포르투갈, 인도네시아로부터 오랜 기간 식민 지배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식민 지배 중 일어났던 1991년 산타크루즈 대학살은 전 세계에 동티모르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죠.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동티모르 하면 위험한 국가, 최빈국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위험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인 평화 지수를 보면 한국보다 동티모르의 평화 지수가 더 높습니다. 민주주의 지수도 아세안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자유 지수 또한 매우 높은 편입니다. 동티모르는 이제 스무 살이 된 젊은 나라입니다. 색안경을 벗고 동티모르를 바라본다면 또 다른 매력과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티모르에서 최초로 실시된
한국어능력시험을 기념해 제작된 달력

2021년 용산에서 열린
한국어 웅변대회에 참가한 학생들

Q. 동티모르가 지속적으로 아세안(ASEAN) 가입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2011년 정식으로 아세안 가입을 신청한 이래 지속적으로 아세안 회원 가입을 위해 노력했지만 싱가포르, 라오스 등 몇몇 국가의 소극적 태도로 아직 가입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동티모르 정부는 동남아 국가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국제체제 학습을 위해 아세안 가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아세안 의장국이 되는 내년을 아세안 가입의 최적기로 보고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동티모르가 아세안의 11번째 회원국이 된다면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한국과의 교류와 협력도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동티모르 국립대에서 한국학 수업을 받는 수강생들

동티모르 국립대 한국학센터 건물

Q. 동티모르에서 한국과 한국어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
2009년 동티모르 국립대 관광학과 한국어반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2013년 7월에 한국학센터가 승인을 받았습니다. 한국학센터가 문을 열 때만 해도 수강생이 20명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300명까지 늘어났을 정도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2009년에 시작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서 일하려 하는 현지인들이 많아지면서 한국어에 대한 인기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영어능력시험인 토플(TOEFL)이나 중국어·일본어 능력시험도 없는 이곳에 2019년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 생겨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1999년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된 한국의 상록수 부대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 데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동티모르의 ‘말모이’팀,
최초의 외국어 사전을 펴다

Q. 최근 『테툼어-한국어 사전』이 발간됐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언어 공부의 기본인 사전 하나 없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현지 학생들을 위해 제대로 된 테툼어-한국어 사전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의 여러 전문기관에 협업을 요청했고 그 중 같이 길을 만들어 보자며 흔쾌히 제안에 응해 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약 7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올해 1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테툼어-한국어 사전』 출판 기념회를 열었습니다. 무엇보다 동티모르에서 공용어(테툼어와 포르투갈어)와 업무어(영어와 인도네시아어)를 제외한 외국어 사전 중 최초의 사전이라는 데에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테툼어-한국어 사전』 출판기념회(2022.1.26.)에 참석한
그레고리오 주한 동티모르대사와 김형찬 前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장

『테툼어-한국어 사전』 출판기념회에서
사전의 특징을 소개하고 있는 최창원 분회장

Q. 사전을 제작하며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마감’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걸 수차례 경험했습니다. 전문 기관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일인 만큼 활동 규정도 엄격하고 마감일 관리도 철저했죠. 하나의 단어를 만들기 위해 유사어, 반대말, 어원, 표기방법까지 조사해야 하다 보니 업무량도 만만치 않았고요. 집필이 계속될수록 눈은 충혈돼 튀어나오고 목은 거북이처럼 된 데다 허리와 어깨도 굽어갔어요. 동티모르에서는 아직도 정전이 흔한 일이라 정전이 되면 지체 없이 호텔 로비로 이동해 새벽까지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어 교육 전문가인 아내와 현지 제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완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특히 제자들과 한 집에서 먹고 자며 사전을 집필했던 시간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저희 집필팀 이름이 ‘동티모르 말모이’인데 모두가 말모이 정신을 가지고 한마음 한뜻으로 사전을 준비했기에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알다’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한국과 동티모르가 서로를 알아 가며 더 아름다운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고 싶습니다. 동티모르에는 한국학을 더 널리 알리고, 반대로 한국인들에게는 동티모르에 대해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 『테툼어-한국어 사전』에 이어 내년 2월에는 『한국어-테툼어 사전』이 발간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겨레말큰사전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테툼어와 한국어뿐 아니라 남북한의 언어 통일을 위해서도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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