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칼럼
남북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북한의 영유아 사망률을 보고)
“저는 이 데이터가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키워서 죽입니까? 어렸을 때 죽는 것이 낫지 않나요?”
모 대학에서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협력사업을 소개하면서 북한 어린이들의 상황을 데이터로 설명할 때 한 학생이 던진 이야기이다. 학교 수업이나 대학 강의를 나가면 분단으로 인해 만들어진 마음의 경계가 학생들에게 깊이 뿌리내린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대상을 이렇게 치떨리게, 무서울 정도로 미워할 수 있을까?’라고 깜짝 놀랄 때도 있다.
분단된 한반도는 그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적을 만들고 마음의 경계라는 벽을 쌓는다. 마음의 경계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증오, 차별을 불러일으킨다. 나와 다른 의견을 부정하고 다양성을 혐오하게 한다. 증오, 차별, 혐오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 이외의 의견을 제안하는 사람에 대한 공격과 폭력을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남북이 분단된 상황은 우리 아이들에게혐오, 증오, 차별의 대상을 만들도록 부추기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경계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을까?
제4소학교에서 산별이라는 북녘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 친구와 춤도 추고, 손 꼭 잡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 친구가 제 이름을 기억하건 못하건 그냥 남녘 친구가 생겼다고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그 친구의 수줍게 웃는 얼굴을 생생히 기억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략) 4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우리는 거리 말고 마음으로 북녘을 먼 곳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한반도에 너무 진하게 선이 그어져 있어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북녘을 먼 곳이라고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2004년 민간단체 어린이어깨동무와 함께 평양을 방문해 북녘 아이들과 교류한 남녘 어린이의 감상문 중 일부이다. 두 사례는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상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아이들은 남북관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북관계에 따라 평화보다는 대결에, 만남보다는 혐오와 무관심에 익숙한 아이들의 인식이 변하기도 한다. 남북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남과 북의 아이들은 계속해서 미움의 땅에서 서로 증오하고 혐오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서로 미워하고 불신하는 분단의 한반도를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인지, 아니면 서로 이해하며 공존하는 가능성의 한반도를 물려줄 것인지는 어른들의 몫이다. 남북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건인가?
※ 평화통일 칼럼은 「평화+통일」 기획편집위원들이 작성하고 있습니다.
최 혜 경
(사)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