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포커스
북한의 핵 독트린과 한국의 대응
국론 통합과 미국 확장억제력 강화로
북핵위협 억제해야
북한 핵무력 정책 법령의 주요내용과 의미를 짚어보고 북핵 위협 억제를 위한 우리의 대응전략을 살펴본다.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비롯한 각종 비핵화 합의를 위반하고 비밀리에 지속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왔다. 김정일 시대에는 “미국의 대북한 선제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러한 주장은 김정은 시대에 와서 완전히 달라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 구소련 간의 핵군비경쟁 시대에도 없었던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직접 공격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미국에게 직접 도발을 거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김정은 정권의 핵 독트린의 의미와 시사점
북한은 전략군사령부를 창설하고 한국, 일본, 아태지역의 각종 미군기지를 타격목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작전 교리를 개발해 훈련해 왔다. 한 달 전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전술핵운용부대의 훈련을 참관함으로써 김정은 시대의 핵전략이 김정일 시대의 보복적 억제 단계를 넘어 선제공격을 포함하는 거부적 억제전략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김정은 정권의 공격적 핵사용 독트린은 2022년 9월 8일 채택한 ‘핵무력 정책 법령’에 분명히 제시돼 있다. 이날 발표한 5가지의 핵무기 사용조건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한 경우 ▲ 국가지도부에 대한 핵 및 비핵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한 경우 ▲국가의 주요 전략대상에 대한 군사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한 경우 ▲유사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 ▲위기가 발생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됐다고 판단하는 경우 등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핵지휘통제체제를 직접 지휘하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미국의 정치학자 비핀 나랑(Vipin Narang)이 말한 확증보복단계에서 비대칭확전태세를 넘어 공격적 비대칭확전태세로 전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 대한 핵전쟁 위험이 바로 우리의 코앞에 다가옴으로써 우리는 6·25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를 맞게 됐다.
북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한국의 옵션
북한의 핵위협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한반도의 핵전쟁 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억제하고, 북핵 사용 시 북한을 응징할 수 있는 거부적 억제전략과 보복적 억제전략을 동시에 고려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네 가지 정도의 옵션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동맹국인 미국이 제공하는 핵확장억제력을 구체화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 둘째,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재반입하는 것이다. 셋째,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장해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방법이다. 넷째, 북한의 핵무기 사용 징후 발견 시 선제적으로 억제할 수 있도록 한국의 독자적 선제타격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위의 네 가지 옵션에 대한 비교를 통해 채택 가능한 최선의 정책대안을 찾아보기로 한다.
① 한미 확장억제 협력 체제 강화
2006년 10월 북한의 제1차 핵실험 이후 지금까지 한미 양국은 연례적인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통해 “미국은 핵우산 제공을 포함한 핵, 첨단 재래식 무기, 미사일 방어체제 등 모든 군사적 능력을 동원하여 한국의 안보를 보장해 주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수차례 확인해 왔다. 한미 확장억제정책위원회를 설치해 맞춤형 억제전략을 구체화시켜왔으며,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고고도에서 방어할 수 있는 사드(THAAD)를 한국에 배치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북한의 제6차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탄 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확장억제력 제공 공약을 재확인하고 한미 간에 확장억제협의체를 발족시켰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백 수십 회가 넘는 미사일 실험과 전술핵운용부대 편제 및 훈련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자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일부 국민은 미국이 나토국가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핵공유 제도와 같은 것을 한국에도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한미연합사 내에 한미 공동 핵전략기획팀 설치, 미국의 핵잠수함과 괌에 배치된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한미 간 정보 공유, 표적 선정, 공동 훈련 등을 포함해 미국의 확장억제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구체화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확장억제력을 강화하고 구체화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사진은 2022년 9월 23일 한미 연합 해상훈련 참가를 위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VN-76)의 모습 ⓒ연합
②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려면 전술핵무기를 남한에 재배치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재배치는 핵무기가 없는 한국이 북핵을 억제하고 이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전술핵무기 재반입을 둘러싼 한미 간 의견 차이, 여야 간 논쟁 격화, 시민사회의 반대 운동 등이 발생할 경우 한국 내 남남갈등이 증폭되고 한미 간에도 불협화음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 정부 간에는 전술핵 재배치보다는 미국의 확장억제책을 강화함으로써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③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한국이핵무장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이 독자적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은 2006년 북한의 제1차 핵실험 직후에 52%, 2013년 2월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직후 67%를 기록했으며,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거듭되는 미사일 시험 속에서 진행된 2022년에는 71%까지 증가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은 핵비확산조약 체제에 대한 정면도전일 뿐 아니라 한미동맹의 기본 틀을 깨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미·영·프·중·러 5대 핵보유국의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이 북한과 똑같은 국제법 위반자라는 불명예스런 딱지와 함께 국제사회의 외교적, 경제적 제재를 받을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국제적 감시를 벗어나 핵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우라늄농축시설과 재처리시설을 제대로 갖추기도 어려울 뿐더러 한국의 평화적 원자력의 이용마저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독자적 핵무장은 전혀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④ 한국의 킬체인과 미사일 방어 능력 강화
한국의 독자적 억제력 제고를 위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킬체인으로 선제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의 핵·미사일 사용을 사전에 억제하는 방법이다. 2014년부터 한국은 소위 3축체계 즉, 핵·미사일 공격 징후 발견 시에 선제타격하는 킬체인, 핵·미사일 공격 시 중간 추진단계와 종말단계에서 방어할 수 있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 탄도미사일을 대량으로 발사해 북한을 응징하는 대량응징보복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이제 한국은 소위 ‘발사의 왼편(left of the launch)’ 에 대한 공격을 목표로 하는 ‘선견-선결-선타’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긴급억제타격 체제의 건설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차세대 지휘통신체계(JADC2)를 확보하고 이스라엘의 스턱스넷(Stuxnet)과 같은 사이버 선제타격능력을 구비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비록 재래식 무기이긴 하지만 한국이 독자적인 선제타격 능력을 갖추고 북한에게 분명하게 보여 줄 때 북한의 선제 핵공격 시도 자체를 막을 수 있다.
국론 통합 속 미국 확장억제력 강화해야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핵확산방지조약(NPT) 모범 회원국으로서 기본적으로는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력을 통해 북핵과 미사일 위협을 억제해야 할 것이다. 북핵을 선제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킬체인 중심의 억제력을 건설하는 등 한미 간 북핵 억제전략체계를 공동으로 수립하고, 역할 분담을 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미 외교·국방 당국은 9월 16일 워싱턴에서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개최하고
미국의 핵·미사일 방어 정책 관련 동맹 간 긴밀한 협의를 지속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외교부
북한이 핵사용 교리와 정책을 발표하고 전략군과 전술핵운용부대의 편제를 갖춰 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위협이 허구인 양 떠드는 공리공론은 사라져야 한다. 모든 국민과 정치권이 일치단결하여 국론 통합을 이루고 “우리의 안보를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정부는 한미동맹을 최대한 활용해 북한의 핵사용 움직임을 사전에 탐지하고 선제억제력을 발휘함으로써 북한의 핵사용 시도를 막아야 한다. 미국의 확장억제력이 시나리오별로 한반도에 확실하게 제공되고 이행될 수 있도록 만반의 대책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내의 자중지란은 핵억제체제를 허물어뜨리는 가장 위험한 요소가 된다. 지금은 국론을 하나로 모아 대응해야 할 때다.
한 용 섭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前 국방대학교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