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한반도
코로나19와 남북 백신 협력
남북 및 국제사회와 일관성 있는
인도적 지원 기준 함께 세워나가야
2022년 5월 12일 북한은 처음으로 자국 내 코로나19로 인한 발열자 발생을 발표한 이후에도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추종하며 보건의료적 안보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려 했다. 북한의 코로나19 발생 보도 이후 남한 및 국제사회는 북한의 재난적 인명피해를 우려해 인도적 차원에서의 대북 보건의료 지원을 시도했으나 북한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남한 및 국제사회의 예상과 달리 북한의 코로나19 발열자 수는 초기의 급격한 증가 이후 7월 말부터는 하루 0명을 나타냈다. 결국 8월 10일 전국 비상방역총화 회의에서 백신 없이도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음을 언급하며 북한 내 코로나19의 종식을 선언했다.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을 통해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나갈 것 같았던 북한은 9월 8일 제7차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자국 내 형성된 코로나19 항체의 유효기간을 10월까지로 판단하고, 11월부터 왁찐(백신) 접종의 책임적 실시와 마스크 착용 등의 2차 대유행에 대한 대비가 필요함을 언급했다. 북한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방역 정책을 추진하고자 함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도 더 이상 제로 코로나 정책만을 고수하기엔 어려운 상황일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코로나19 백신 수용 가능성
북한의 코로나19 발열자 발생 보도 이전부터 국제사회는 코벡스(COVAX)와 유니세프를 통한 백신과 방역 물품 지원 의사를 밝혔고, 남한도 대북 보건의료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북한은 무응답으로 반응했다. 이와 같은 북한의 반응은 정치적 의도가 농후한 인도적 지원은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향후에도 중국을 통한 백신 지원 정도만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산 백신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남한과 국제사회는 백신 지원에 대한 모니터링을 요구하지만 중국은 이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산 코로나19 백신인 시노팜(Sinopharm)과 시노백(SinoVac)은 2~8℃ 사이에서도 보관이 가능한 이점이 있어 백신의 보관 및 운송에 필요한 콜드체인(Cold Chain) 시스템이 열악한 북한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한 가운데 국제 백신공동구입 프로젝트인 코벡스(COVAX)는 여전히 북한에 백신을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남한 및 국제사회와의 다자간 협력 가능성
북한은 자국 내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 경험을 바탕으로 그간 유지해 왔던 강력한 봉쇄정책을 완화하고자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남한과 국제사회는 단기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백신의 원재료 제공을 통한 R&D 부분도 고려해볼 수 있다. 백신의 원재료 제공은 기술의 전달 이전에 백신 생산에 필요한 기자재 및 장비 지원 등의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대북제재의 범위 내에서 가능성을 타진해봐야 할 것이다.
북한이 2차 또는 3차 대유행이 발생하기 전 백신을 통한 예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선택이 필요한 상황이다. 농번기(5~6월)에 시행한 강력한 봉쇄정책으로 식량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발생한다면 북한이 발표하는 통계 발표와는 별개로 심각한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등 신종 변이 바이러스 출현 시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국가에서 대규모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백신 접종률이 현저히 낮은 북한에서 코로나19의 재유행은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남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새로운 건강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국제사회와 다자간 협력을 통해 북한의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선제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다. 백신 지원뿐 아니라 남한과 북한, 그리고 국제사회는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일관성 있는 인도적 지원의 기준을 함께 세워야 할 것이다.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 있어 다자간 협력은 남북 경색 국면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며 인도적 지원 기준을 마련하는 협상 테이블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 진 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통일의학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