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칼럼
자국 우선주의와
무질서의 국제질서
언제부턴가 국제뉴스가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소식으로 도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은 이제 나토(NATO)와 중국의 체제적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핵전쟁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 모습이 왜 이렇게 됐을까? 간단히 말해 국제질서를 책임지는 국가들이 자국 우선주의의 대외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두말할 것도 없고 국제질서의 책임자 역할을 해 왔던 미국마저도 자국 우선주의를 중시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질서가 온전히 작동할 리 만무하다. 보편적 규범이나 규칙, 이를 지탱해주는 다양한 국제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공허한 국제질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무형의 질서유지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치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당, 국회, 유권자, 민주적 선거, 국민의 정치의식과 정치 문화 등 유형무형의 질서유지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질서유지 메커니즘을 ‘체제’라 부른다. 정치질서와 정치체제, 경제질서와 경제체제 등이 단적인 예이다. 마찬가지로 국가 중심의 국제사회에서도 질서와 질서유지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에서 국가들의 관계 유형을 의미하는 국제질서의 가장 일차적인 기능은 무력을 동반한 갈등을 방지하는 데 있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조정 없이는 국가나 개인들이 수많은 다른 가치들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무력 갈등을 방지하고 안정된 국제질서를 확보해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질서유지 메커니즘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국제사회의 모습은 그야말로 무질서의 국제질서이다. 무질서의 국제질서에서는 질서유지 메커니즘을 하나로 특정하기 힘들고 설사 국가 중심적 국제체제를 고집하더라도 강대국 중심이 아니라 강대국과 지역 주요 국가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국제체제가 중시될 것이다. 무질서의 국제질서에서는 자국 우선주의에 근거한 전략적 취사선택이 핵심적 구성원리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전쟁, 군비경쟁, 에너지 대란, 엄청난 자연재해 등)의 기저에는 자국 우선주의에 바탕을 둔 전략적 취사선택이라는 행동 원칙이 자리하고 있다.
무질서의 국제질서를 촉진하는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취사선택하는 대외정책 핵심기조는 국제협력의 구심력을 떨어뜨리고 협력의 파편화를 촉진해 기존의 다자제도를 통한 국제협력 전망을 매우 어둡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협력의 강화 또는 회복은 바로 나타날 모습이 아니며 그 가능성은 자국 우선주의에 바탕을 둔 국가들의 전략적 취사선택의 조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제갈공명도 해결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대외정책의 시대를 맞아 한국이 직면한 다양한 외교 안보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국 우선주의에 바탕을 둔 무질서의 국제질서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 수 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