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이웃
경남 진주시협의회
‘쓰담쓰담, 감정코칭을 배우다’
부모와 자녀 소통 돕는
‘탈북민 멘토링 사업’
지역사회 지원 속에 통일 담론 형성 촉매제 될 것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월아산 자연휴양림 ‘숲속의 진주’. 옹기종기 모인 글램핑과 야영 데크를 마주하고 있는 질매재관 건물 2층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조금은 긴장한 표정의 사람들이었지만, 먼저 온 사람들과 마주치자 금세 환한 얼굴로 정답게 인사를 나눈다. 같은 지역에서 부대끼며 고락을 함께한 탈북민들, 그리고 진주시협의회 관계자와 자문위원들이 손을 마주 잡고 반가움을 전한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학창 시절에 막 방학을 마치고 개학한 첫날의 풍경 같다.
4월 18일 오후, 경남 진주 월아산 숲속의 진주에서 탈북민 멘토링 특강 탈북민과 함께하는 ‘쓰담쓰담, 감정코칭을 배우다-자녀와의 대화법’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남지역회의 진주시협의회(회장 원호영)가 주최한 이번 특강은 탈북민이 자녀를 양육할 때 감정코칭의 중요성과 코칭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양육 방법을 점검하면서 바람직한 대화법을 습득하고 부모·자녀 간 소통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특강에는 원호영 회장과 멘토 자문위원, 탈북민 등 35명이 참석했다.
건강한 가정 구축 지원하는 멘토링 사업
진행을 맡은 여순화 박사(P&I 교육코칭연구소 대표)는 자녀의 말과 행동에서 어떻게 심리를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자녀와의 대화법과 감정코칭에 대해 밀도 있는 강연을 펼쳤다.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자녀가 올바르게 학교생활을 하고 성인이자 사회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여 박사는 탈북민이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다가 자녀 양육 문제로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부모와 자녀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시도해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했다. 이를 통해 참석자들은 탈북민 가정에서 자녀의 심리적 발달 단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또 가족 구성원끼리 어떻게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침에 자녀와 일상적으로 나눴던 인사가 이 세상의 마지막 인사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자녀가 내 속을 썩이더라도 따뜻한 인사 한마디 ‘잘 놀고 와, 잘 다녀와!’, ‘안전하게 들어와’라는 말을 꼭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녀를 비난하고 통제하려 들고 억압하면 자녀는 마음을 닫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따스한 말 한마디, 진정 어린 배려를 꾸준히 축적하면서 감정적 지지를 받으면 자녀들은 부적응이나 문제 행동이 줄어들 겁니다.”
여 박사는 참석자들이 이날 행사에 자리한 것만으로도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이라고 말하고,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 치유’에서 비롯된다고 설파했다. 자녀의 불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녀가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느껴볼 수 있도록 지켜봐줄 것을 주문했다. 참석자들은 강연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자녀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특강을 맡은 여순화 박사가 탈북민 가정의 자녀 소통 방법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진주시협의회는 청년층부터 노년층을 아우르는 다양한 연령의 구성원들이 활동하고 있고, 신구세대의 고른 조화가 돋보인다. 지역대표(도·시의원) 27명, 직능위원 113명 등 140명으로 조직돼 있고 그중 45세 이하가 46명이다. 원호영 회장은 “앞으로 진주시협의회가 펼칠 여러 활동을 하는 데 연륜과 경험을 갖춘 분들, 열정과 행동력을 갖춘 분들이 원팀(One Team)이 돼 움직일 것”이라고 말한다.
“탈북민 멘토링 사업은 진주시협의회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활동입니다. 탈북민이 대한민국에서 정착하는 데에는 금전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밝고 건강한 가정을 이뤄 당당한 사회인으로 자리매김하게끔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멘토링 사업은 탈북민과 자녀들을 대상으로 멘토 자문위원과의 결연을 통해 진로 설계, 정서적 지지, 취업 연계 등을 지원합니다. 오늘 진행된 감정코칭 강연도 멘토링 사업의 일환인데, 탈북민 부모가 자녀와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심리 발달 단계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통찰하는 데에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본래 멘토링 사업은 원 회장이 예전에 진주시협의회 회장으로 재임하던 당시 시작한 사업이다. 2009년부터 2017년 7월까지 약 8년간 회장으로서 애정을 갖고 추진하던 사업이었다. 원 회장은 “40대 중반과 50대 초반에 민주평통과 함께하면서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인 사업”이라며 “6년 만에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재정비하고 교육과 활동, 강연과 상담 등 맞춤형 사업의 골격을 갖춰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특강에 자리한 탈북민 참가자들도 진주시협의회의 멘토링 사업에 큰 고마움을 전했다.
“대한민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아이 둘까지 키운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내 딴에는 쉬지 않고 일하며 계속 뭔가를 하는데, 아이는 금세 자라 사춘기가 되고 솔직히 벅차고 겁도 났죠. 그때 멘토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손을 내밀어주셨는데 너무 고마웠어요. 10년 동안 멘토분들이 두 아이와 함께해 주셔서 번듯하게 잘 자랄 수 있었지요. 성적이 오르면 다 같이 좋아해주고, 놀러 가고 싶다면 어디든 데려다주며 마음속 빈 공간을 채워주셨죠. 이제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엄마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말해요. 이게 바로 행복이지 다른 게 행복인가요?(웃음)” - 함경애
“아이가 셋인데, 막내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큰 아이들 둘은 중국에서 온 터라 한국말을 잘 모르니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멘토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학원을 가게 되고 상담과 코칭도 해주셔서 놀랄 정도로 빨리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어요. 첫째 아이는 해병대를 다녀와 복학했고 둘째 아이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죠. 막내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 의젓하고 생각이 깊어요. 한번은 멘토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부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닮아간다’고요. 하하. 저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받은 것만큼 이 사회에 보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사회생활 잘하고 열심히 일하고 재능기부도 하면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요.” - 박소영
“우리가 했던 일 헛되지 않았구나”
박상원 탈북민지원분과위원회 위원장은 탈북민 대상 사업을 진행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탈북민들이 외부 관계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막상 행사에 참여해도 노출을 기피하고 대화도 꺼리는 등 마음 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아직 탈북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쌀쌀한 것도 현실이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지켜보고 도움을 준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고 취업에 성공한 이야기를 들으며 보람을 느낀다.
“웅걸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삼촌들이 있어서 제가 공부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용기 있게 자립도 할 수 있었다’며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더라고요. 마음이 찡하면서 ‘우리가 했던 일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탈북민 멘토링 특강에 참가한 함경애(왼쪽) 씨와 박소영 씨.
진주시협의회 탈북민지원분과위원회는 탈북민 대상 사업들이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전력할 계획이다. 우선 그동안 진행해온 사업들을 살펴보면서 운영체계를 정비하는 데에 힘쓸 예정인데, 그 첫 단추가 탈북청소년 대상 멘토링 사업의 고도화다.
박 위원장은 “부모와 함께 사선을 넘어온 탈북청소년들이 멘토링 품 안에서 안심하고 자기 계발에 힘쓸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탈북민지원분과위원과 멘토 자문위원들도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 내실 있고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운영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밀착 사업 추진
작년에 다시 회장 임기를 시작한 원 회장은 “6년 전 다 이루지 못한 사업들이 많다. 다시 일하면서 우리의 활동이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진주시협의회는 오는 5월에 열릴 제21기 자문위원 역량강화 통일워크숍을 준비하고 있으며, 5~6월에 개최될 청소년 통일골든벨과 7월로 예정된 시민과 함께하는 나라사랑 통일체험, 11월에 시행할 청소년과 함께하는 통일체험교육에 만전을 다할 계획이다. 그리고 탈북청소년 대상 멘토링 사업을 연중 진행하면서 탈북민과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생각이다.
원호영 민주평통 진주시협의회 회장은 “멘토링 사업을 중심으로 탈북민과의 접점을 넓혀나가겠다”고 말했다.
“탈북민의 사회취업과 멘토링 등 지원 사업을 더욱 강화하고, 미래세대인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통일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탈북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앞장서면서 민주평통이 우리 지역사회에서 사랑과 지지를 받는 기관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겠습니다.”
글·사진 이 종 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