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평화
영화 ‘로기완’
낯선 땅에서 시작되는
남북 이방인의 만남과 사랑
영화는 비행기에서 “아이 돈 스피크 잉글리시”를 외우고 또 외우는 로기완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어머니를 잃고 새 삶을 찾아 벨기에로 날아온 탈북민 로기완은 말조차 통하지 않는 유럽의 낯선 땅 벨기에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도, 국적도 증명해낼 수 없는 그에게 현실은 냉혹하고 차갑기만 하다.
2차 난민 인터뷰의 날짜가 내년 2월이라는 것을 알게 된 로기완이 당혹스러워하며 “그러면 저 그때까지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라고 묻지만, 통역사는 그에게 “잘 버티셔야죠”라는 말만 남기고 단호하게 등을 돌린다. 그렇게 로기완은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는 머나먼 타지에 홀로 내던져지지만,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우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냉혹한 현실 속 이방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
넷플릭스가 지난 3월 1일 공개한 송중기, 최성은 주연의 영화 ‘로기완’이 화제다. 영화가 공개되자마자 아시아, 중남미 등 21개 국가의 넷플릭스 ‘오늘의 TOP 10’에 올라가며 큰 주목을 받았다. 또한 영화를 시청한 관객들은 탈북자 로기완 역을 맡은 송중기를 비롯해 사격선수 출신 마리 역의 최성은뿐만 아니라 조한철, 김성령, 이일화, 와엘 세르숩, 이상희, 서현우 등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이 영화는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각색한 작품으로, 단편 영화 ‘수학여행’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등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김희진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 높은 평가를 받아왔던 김희진 감독의 연출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낯선 언어, 추위, 언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놓인 사람들이 느낄 막막함과 불안함, 그리고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들의 쓸쓸함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김 감독. 그녀는 이 영화를 위해 유럽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자 애쓰는 실제 탈북민을 취재하고, 수많은 자료 조사 과정을 통해 이방인의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까지 영화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냉혹한 현실 속 이방인이 끝까지 놓지 않는 희망과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온기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성적인 이야기로 보여준다.
원작과 비교하며 보는 잔잔한 재미
김 감독은 주인공 로기완에 대해서 “진흙탕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고고한 느낌으로, 타협하지 않는 캐릭터”라고 표현하며 냉혹한 현실에서 감당하기 힘든 상황들을 마주하면서도 살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그의 모습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오랜 시간 벨기에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마리는 로기완과는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 채 삶을 포기하고 자신을 계속 망가뜨리는 중이다.
마리가 로기완의 어머니 유품인 지갑과 그의 전 재산을 훔쳐내며 시작된 두 사람의 악연은 어느새 인연이 되어간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그들이지만, 극과 극이 끌리듯 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이끌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원작 소설이 전해주는 강렬함은 유지하면서도 로기완 주변 인물을 새로 구축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방인이라는 심리적 불안감을 가진 채 각자의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등장인물들이 서로 부딪히며 진행되는 스토리텔링은 관객들을 더욱 캐릭터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새 낯선 땅에서 막연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간직한 채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로기완을 응원하게 한다.
원작과는 다른 구성으로 진행되는 만큼, 원작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크기 때문에 영화 공개 후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삶의 끝에 선 이방인의 여정을 통해 진한 여운과 가슴 따뜻한 온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끝까지 희망을 놓치지 않는 로기완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글·이종철 기자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