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가 간다Ⅰ
독일 파독광부기념회관
한·독 현대사 오롯이 깃든
‘7936 파독광부’의 흔적을 돌아보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보내졌습니다. 1963년 12월을 시작으로 1977년까지 독일 땅을 밟은 파독광부는 모두 7936명. 이들의 역사와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독일 에센시 ‘파독광부기념회관’에 다녀왔습니다.
독일은 이탈리아와 함께 세계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로 꼽힙니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에센(Essen)시의‘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Industriekomplex Zeche Zollverein)’와 자를란트주 클링겐시의 ‘푈클링겐 제철소(Vlklingen Htte)’는 독일의 산업화와 기술 발달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세계유산인데요. 건축물로서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독일이 왜 철강 산업의 대표적 국가로 명성을 떨쳤는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자동차와 가전제품, 군수품 생산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사례입니다.
400여 년의 독일 철강 산업 역사도 세계 전쟁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1939~45) 당시 히틀러 방문 이후 트럭공장에서 군용차량을 생산하고, 일부 공장은 총알과 군모는 물론 전차, 대포, 잠수함 등 주요 군수품을 개발해 생산할 수 있도록 재설계가 이루어지자 연합군은 이 지역에 공습을 퍼부었습니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인근 도시에 모형공장을 세워 공습을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독일군은 공장 이전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전쟁포로와 강제수용소 수감자까지 노동력으로 동원했습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이후 이 지역 공장들 대부분이 폐쇄되거나 해체되고, 뉘른베르크재판(국제군사전범재판)에 따라 배상금 명목으로 일부 공장은 해외로 반출되기도 했습니다.
서로 격려하며 나눈 인사 “글뤽 아우프!”
분단된 독일의 서쪽에 있던 에센시를 비롯한 루르(Ruhr)지역에서는 다시금 철강 산업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으나 주원료인 무연탄 광산에서 일할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훗날 세계유산에도 등재될 만큼 탄광·철강 산업기술을 보유한 작업장에 파견될 건강하고 똑똑하고 성실한 젊은이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시절, 6·25전쟁 이후 외화가 부족했던 대한민국은 청년들을 파독광부로 진출시키기로 합니다. 임금과 작업조건, 노동안전 등 독일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국과 독일 간 협정이 맺어지고, 1963년 12월 21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247명의 대한민국 국적의 광부가 독일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그때부터 1977년까지 모두 7936명의 대한민국 청년들이 한·독 양국의 근현대사를 맨주먹으로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기념회관 곳곳에 남아 있는 과거 탄광의 흔적들과 한국인 파독광부의 당시 사진.
“글뤽 아우프!(, 행운을 갖고 위로 올라오라는 뜻).” 위험한 갱도로 가는 광부들이 아무 사고 없이 올라오자는 의미로 서로를 격려하며 나누던 인사입니다. ‘재독한인글뤽아우프(이하 글뤽아우프)’라는 파독광부들의 모임 이름도 이 인사말에서 따온 것입니다. 2009년 12월에 개관한 파독광부기념회관에는 당시 한국 파독광부들의 역사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검은 탄가루 범벅이 된 이국의 사진 속 청년들이 세월이 흘러 지금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얼굴엔 주름이 깊게 패었습니다. 기념회관을 안내해주던 한 파독광부의 회상입니다.
“지하광산에 내려가면 그 시커먼 곳에서 끼니도 해결하며 약간의 휴식도 갖게 됩니다. 크고 작은 사고가 종종 발생하거나 건강이 나빠지는 동료들이 늘 주변에 있다 보니, ‘글뤽 아우프’라는 인사를 나누는 것 외에도 자기 구역에 성모마리아상을 두고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파독광부 출신의 고창원 민주평통 북유럽협의회장과 유상근 파독광부기념회관 실장과 기념회관을 둘러보는 내내 유럽에서도 유독 궂기로 유명한 독일 날씨답게 빗살이 연신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기념회관 한 관계자는 “곧 봄이 오면 유리창도 닦고 페인트칠도 새로 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언제, 누가 하는지 묻는 청년기자에게 “이번에는 젊은 사람이 해야지”라며 누군가를 가리킵니다. 그 ‘젊은 사람’이란 60대 어르신으로, ‘젊다’는 말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만큼 파독광부기념회관에 청년들의 좀 더 높은 관심과 방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배를 지켜주는 ‘닻’의 정신 깃든 곳
재독한인문화회관을 겸하는 파독광부기념회관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우리 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북유럽협의회 출범식을 이곳에서 치르며 많은 이들이 찾아와 파독광부 기념관을 둘러보았습니다. 4월에는 독일과 룩셈부르크로 입양된 한국 입양동포들과 함께 의미 있는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고, 영화에서 다뤄진 현대사의 흐름을 짚어보며 파독광부와 간호사는 물론 해외 입양동포 역시 대한민국 역사의 구성원이자 한 뿌리임을 되짚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고국의 평화통일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북한 인권강사를 초청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독일에서 동·서 분단과 통일을 목도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청년들이 이곳을 찾아 통일독일을 경험한 많은 분들과 의견을 나누는 장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조금은 막연한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독일의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동포로서 우리 한반도의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함께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기념회관 앞에는 ‘닻(Anker)’이 놓여 있습니다. 물밑에 잠겨 흔들리는 배를 지켜주는 닻 같은 정신이 바로 이곳에 깃들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정은비 제21기 청년자문위원 기자(북유럽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