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
위기의 한반도, 돌아보고 내다본다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지난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온전히 평온했던 한 해를 찾기가 어렵지만 2022년은 유난히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가 요동친 한 해였다. 신년의 설렘이 가시기도 전에 들려온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은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고,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이 연일 거론될 정도로 한반도에도 긴장감이 조성됐다. 지난 2022년 12월 14일, 2022년을 마무리하며 한반도 정세를 평가하고 2023년을 전망하는 대담이 열렸다. 기관지 기획편집위원들은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댔다.
대담 |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 박영자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전영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최은주 세종연구원 연구위원
사회 | 김영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2022년 한반도를 돌아본다
• 정체 국면 지속된 2022년 남북관계
• 전략적 가치와 협상력 높이기 위한 북한의 도발 지속
김영수ㅣ2022년 한반도 안보상황이 그 어느 때 보다 엄중했습니다. 2022년의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수석ㅣ2022년 한 해는 남북관계 정체 국면이 오래 지속됐습니다. 북한은 지난 1년 동안 체제 내부결속을 위해 핵무력 강화와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며 한반도 정세를 위태롭게 했습니다. 방역협력, 이산가족 상봉 제의 등 우리의 대북 제안에 대해서도 북한은 무시와 무반응으로 일관했습니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위기국면이 조성됐지만 다행히도 우리의 물적·인적 손실을 초래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북한도 남북관계의 완전한 파국을 원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한권ㅣ국제질서 측면에서는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의 심화가 한반도 정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동맹 강화, 한일관계 개선,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등의 정책적 방향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북한도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고 전통적 우호관계를 재확인하며 한·미·일 협력체제 강화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대미관계, 남북관계, 북중관계에서 자신들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미사일 기술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진행했습니다.
박영자ㅣ2022년 북한 정치를 살펴보면 대외부문과 대내부문이 통합되는 흐름이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북한은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첨단전략무기 개발, 자력갱생 전략을 2022년에도 이어가면서 대미·대남전략에 있어 ‘대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대화와 대결’을 동시에 준비하겠다고 언급한 2021년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미 장기전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북한 내부 차원의 특징을 몇 가지 확인할 수 있는데요. △집단주의 강화 △자력갱생 노선 △인민대중우선주의 △수령 호칭을 통한 김정은 우상화 본격화 △핵무력 정책 법제화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신년대담의 사회를 맡은 김영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김영수ㅣ경제와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북한의 상황에 대한 진단도 부탁합니다.
최은주ㅣ2022년 북한은 대북제재 장기화, 코로나19, 자연재해 등의 어려운 상황을 맞아 이에 대한 대응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북한은 주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농업, 경공업, 건설 분야에 주력하는 한편 영유아 영양 공급, 학령기 청소년 무상 교복·가방 공급 등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을 구체화시키는 데 방점을 두었습니다.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북한 주민의 주거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전까지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도시 건설에 주력했다면 2022년에는 리 단위까지 살림집 건설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북한은 2023년에도 주어진 자원을 활용해 주민 생활에 부정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상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어 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영선ㅣ북한의 대내외적인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뚜렷한 돌파구는 없는 상황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지도자에 대한 신뢰 위기와 국방·보건·식량 등 국가 운영 시스템 위기 극복 등에 집중하면서 위기 극복 담론으로 우리국가제일주의,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생활양식, 2023년 입법예고된 문화어보호법, 국가상징 등도 이러한 측면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가를 중심으로 애국과 애민을 연결하는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기조는 적어도 제9차 당대회 전까지 유지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박영자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영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
• 비핵화 중심의 대북정책 vs 새로운 의제 개발
• 한·미·일 협력 강화와 함께 한중 간 협력 공간 찾아야
김영수ㅣ한반도 안보위기 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과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수석ㅣ일각에서는 북핵 위기 30년이 지났는데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다고 이야기할 만큼 비핵화 문제는 과정도 매우 복잡하고 시간을 요하는 문제입니다. 정부가 북한 비핵화와 경제·정치·군사적 상응조치를 단계적으로 이행해 나가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평가됩니다. ‘담대한 구상’은 북핵문제가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 하에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을 비핵화와 대화로 유도하는 종합적 계획입니다. 지금은 비핵화를 앞세운 대북정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박영자ㅣ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북한 입장에서 가장 핵심적 문제는 핵문제와 대북제재입니다. 그리고 이 두 문제의 협상 파트너는 첫째가 미국, 둘째가 중국, 그리고 한국은 후순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에만 초점을 맞춘 대북정책을 추진한다면 의도치 않게 행위자로서 한국의 역할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핵문제나 대북제재는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갖기 어려운 의제입니다. 이제라도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를 재편할 수 있는 새로운 의제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단이 장기화되고 세대가 전환되며 이제는 민족적 측면에서만 남북관계를 바라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세대·지역·성별 간 공론화를 통해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재설정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한권ㅣ증가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 한·미·일 지역 안보 협력 체제 강화를 통해 억제력을 증가시키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중 간에도 한반도 정세의 안정에 대한 이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협력 또한 균형 있게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지양해야 하지만 북한 핵·미사일 강화는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로 이어져 중국에게도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한중 간의 협력 공간도 찾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최은주 세종연구원 연구위원
2023년 한반도를 내다본다
• 北 정권수립 75주년, 정전 70주년 맞아 내부 기강 다지기 집중
• 미중경쟁 심화 속 현안별 대응 필요
•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 통해 남북관계 풀어나가야
김영수ㅣ이번에는 2022년 평가를 토대로 2023년 전망을 해보고자 합니다. 각 분야별 전망을 부탁합니다.
전영선ㅣ2023년에도 남북 대화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북한이 제8차 당대회에서 결정된 전략을 이행하는 데 모든 역량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남 부문에 역량을 쏟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2023년은 특별한 국제적 이벤트도 없고 정전협정 70주년, 정권 수립 75주년이 되는 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기강 다지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은주ㅣ현 국제질서는 미중경쟁이 심화되는 한편,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다극질서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담판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다극질서 하에서는 대미협상보다 우호적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우선순위에 둘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우선시하면서 이들과의 경제관계 강화에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영자ㅣ2023년은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3년 차가 되는 해입니다. 5개년 계획에 있어 3년 차는 목표 달성에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경제성과 도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핵·미사일 문제에 있어서는 핵무기 소형화와 함께 정찰위성 등 미사일 기술력의 향상을 통해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한권ㅣ국제질서 차원에서 본다면 미중 전략적 경쟁 심화와 진영화 구도가 지속되면서 한반도에도 긴장이 유지될 것으로 봅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의 공고화를 바탕으로 한중 협력의 발전 및 확대를 추구해 나간다는 기존 대미, 대중관계의 기본 틀을 재확인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미중경쟁 구도 하에서 한국은 양자택일보다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현안별 대응을 착실히 준비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수석ㅣ그동안 남북관계는 북핵문제 진전과 남북관계 개선이 함께 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2023년에 북핵문제에서 조그마한 진전이 있다면 남북관계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북핵문제의 진전을 떠나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사회문화, 인도적 지원 등 소프트한 부분에서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할 필요도 있습니다. 북한은 2023년에도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하며 한국과 미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도발을 멈추도록 꾸준히 설득하면서 남북 간 접촉이 시작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위한 역할
• 대북 정보역량 강화 위한 민관협력체제 구축
• 민주평통, 풀뿌리조직 강점 살려 지역 현장의 목소리 반영
김영수ㅣ남북관계 차원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영선ㅣ통일·대북정책이 변화하더라도 그 정책의 성과들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과거 ‘통일준비위원회’와 같은 민관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칭)한반도 미래위원회’와 같은 민관협력 조직을 통해 통일, 북한에 대한 각 분야 정보를 축적·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안정적인 교류협력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김한권ㅣ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서의 대중국 견제를 위해 한일관계의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활용해 한국은 역사문제와 경제·군사·안보 분야를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으로 한일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남북교류와 북일대화를 촉진하고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최은주ㅣ대학생들에게 강의하다 보면 통일의 개념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이 변화하고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다양성의 에너지를 활용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 보수와 같은 이분법적 방식이 아닌 ‘사회적 대화’ 등과 같은 틀을 통해 평화통일 이슈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 내고 통일 담론의 지평을 넓혀가는 시도들이 필요합니다.
이수석ㅣ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정체 국면일수록 우리가 내실 있게 통일 역량을 강화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통일에 대한 생각이 희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의 중요성과 의미, 방법 등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관련 교육을 확대해야 합니다.
김영수ㅣ민주평통은 어떤 역할을 해 나가야 할까요?
최은주ㅣ민주평통의 강점이자 타 기관과의 차이점은 풀뿌리 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책을 잘 다듬고 제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지역 현장의 생생한 의견들을 종합해 정책제안에 반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영자ㅣ민주평통은 구성에서부터 보수와 진보, 여야를 가리지 않는 다양성을 갖춘 조직입니다. 통일문제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 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기회를 자주 마련해야 합니다.
김한권ㅣ민주평통 중국 지역조직의 역할과 활동이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중국은 북한과의 교류와 대화에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민주평통 중국지역 협의회가 한중관계 개선뿐 아니라 남북 간 대화의 교류의 창구를 여는 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이수석ㅣ북한이탈주민 지원 활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민주평통도 이 부분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지만 좀 더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TF 팀이나 특별위원회 등을 구성해 소외된 북한이탈주민들을 지원하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