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창
북한도 ‘공장 김치’가 대세
“김치 맛 참 좋시다!”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김치냉장고는 어느새 장독 대신 우리 생활공간 한 편에 자리했다. 가가호호 직접 담가 먹던 김치는 특별한 체험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고, 고향의 손맛 대신 대기업의 맛이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풍경도 더는 어색하지 않다.
북한 김치공장의 본보기 ‘류경김치공장’
예로부터 ‘나무는 물을 먹으며 살고 사람은 김치를 먹으며 산다’라는 말이 전해지는 북한은 어떨까. 북한도 직접 담가 먹는 김치보다 ‘사 먹는 김치’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 중심에는 선대의 유훈에 의해 2016년 평양시에 건설된 류경김치공장이 있다. 류경김치공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두 차례 현지 지도 후 현대적인 공장으로 전변해 ‘김치공장의 본보기, 표준 공장’으로 지정됐다. 김 위원장은 류경김치공장의 건설 경험을 토대로 북한의 각 도(道)에 김치 공장을 세울 것을 지시했고, 2019년 1월 평안북도 신의주김치공장 준공을 시작으로 2021년 10월 양강도 혜산김치공장 설립에 이르기까지 총 9개의 도(道)와 남포시에 새로운 김치공장이 들어서게 됐다.
근래 북한의 김치 생산 공업화, 과학화 추진에는 눈에 띄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먼저 북한은 교육과 과학연구, 생산의 일체화를 내세우며 생산 단위와 과학연구기관의 협력을 통해 이를 달성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 언론을 통해 평천김치공장에서 생산되는 ‘푸른들’ 김치가 평양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는 것은 한덕수경공업대학 측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가공법과 생산법을 과학화한 결과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연구사업을 통해 김치의 맛과 보관 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김치용 정향복합균을 개발하거나 김치 생산 도구를 기능성 건강제품으로 바꾸는 등 각종 발명, 특허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국내외 공식 품질 인증 제도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국가품질감독위원회는 2017년부터 식료품, 의약품, 화장품 등에 대해 품질관리체계 실시를 의무사항으로 지시했다. 북한은 국내 품질인증제도 중 우수한 제품에 부여하는 ‘2월 2일 제품’, ‘12월 15일 품질메달’ 대상 제품을 매년 국가적으로 선정하고 있다. 류경김치공장의 석박김치, 어린이 영양김치, 백김치, 통배추김치가 2월 2일 제품으로 인증됐으며, 이 중 통배추김치는 2019년 국내 최우수제품으로 선정돼 ‘12월 15일 품질메달’을 받았다. 통배추김치는 해썹(HACCP)과 유사한 국제표준화기구(ISO)의 ‘ISO 22000(식품 안전에 관한 표준)’ 국제 인증도 획득해 김치 포장에 ‘ISO 22000 식품안전관리체계 인증을 받았습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류경김치공장에서 생산한 포장김치 제품들 ⓒ연합
인민의 수요를 반영한 김치 생산과 포장
흥미로운 점은 북한 김치 생산과 판매과정에서 ‘인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치공장의 경영전략 중 하나는 ‘인민의 수요를 반영한 편의봉사활동의 전개’이다. 김치공장은 어린이부터 연로자에 이르기까지 김치 맛에 대한 요구를 청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맛의 수준을 높이고자 한다. 포장에서도 인민 수요의 반영이 나타난다. 노동신문에서는 포장이 제품을 보호하는 기능을 넘어 유통과 사용상의 편리성 보장, 소비의 자극과 판매 촉진, 상품의 가치를 제고하는 등 사람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류경김치공장에서는 소비자가 필요에 따라 구매할 수 있도록 단위별(150g, 200g, 500g, 5kg) 포장김치를 판매하고 있으며, 김치 종류마다 포장 색상을 다르게 해 수요자가 어떤 종류의 김치인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산업미술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관련 대회와 행사, 인재 육성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구미(口味)뿐 아니라 ‘눈맛’을 중시하는 북한에서는 포장과 상표 디자인에도 미적인 고려를 담기 시작했다. 북한의 상표도안 트렌드 중 하나는 만화적 수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상품의 개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소비자의 예술적 정서와 흥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류경김치공장은 상표에 배추와 무를 캐릭터화해 2017년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등록하기도 했다. 조선신보는 국가산업미술전시회 상표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치제품은 상표부터 ‘맛 참 좋시다’로 표기했고 김치 실물을 그림으로 형상화했다며 종전과 달라진 변화를 전하기도 했다.
남북한 고유의 김장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각각 등재될 만큼 역사성과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김장 풍경의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을 남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장 문화 변화가 향후 남북 교류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언젠가 김치의 쩡한 맛을 남북이 함께 느끼며 ‘김치 맛 참 좋시다!’라고 외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임 사 라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