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52023.01.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1월 11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처음으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선보였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모두발언하는 모습 ⓒ연합

분석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다자외교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 강화위해
치밀한 전략 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11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새로운 대아세안 정책인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발표했다. 한국판 인태 전략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보고 향후 정책방향을 제안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1월 11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아세안 지도자들 앞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 이하 ‘인태 전략’)을 선보였다. 한·아세안 관계를 보다 공고화하는 ‘한·아세안 연대 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 KASI)’도 제시했다. 이번 동남아 순방 외교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국제사회에 한국의 외교정책 목표인 책임 있는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비전 제시
지난 수십 년 사이 한국의 국력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고 국제적 지위와 위상 역시 높아졌다. 세계 10위의 경제력, 아시아 1위의 글로벌 혁신 역량, K-문화의 소프트 파워, 급성장하는 방산 역량 등 국가 역량이 광범위하게 성장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책임 있는 중견국의 역할과 기여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과 기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에 맞는 관여와 역할 수행은 국제질서의 아젠다 설정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등 한국의 국익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전임 한국 정부는 외교 및 경제 다변화의 일환으로 아세안, 인도 등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신남방정책을 추진해 경제 및 사회문화 등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글로벌 안보 및 경제 질서의 대전환이 일어났음에도 이에 대응할 전략적 비전과 구상이 부재했다는 한계점을 가진다.

윤석열 정부는 변화하는 인태지역 정세에 대응해 한국의 독자적인 인태 전략과 신 아세안 연대 구상을 제시해 인태지역 정세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국제 현안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명확히 했다. 이는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 도약을 위해 실질적인 역할과 기여를 하겠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표명한 것이다. 한국이 추구하는 인태 전략의 핵심 목표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토대로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강화를 위해 한국이 역내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 평화, 번영(freedom, peace and prosperity)의 3대 비전을 바탕으로 포용, 신뢰, 호혜(inclusivity, trust and reciprocity)의 3대 협력 원칙에 기반한 인태 전략을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대화를 통한 분쟁과 무력충돌 방지 및 평화적 해결 원칙을 강조하고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변경을 반대한다는 한국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러한 입장은 특정 국가를 겨냥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호혜적인 접근법을 기반으로 역내 자유, 평화와 번영 증진에 한국이 기여할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을 목표로 협력해 나가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또한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대체할 한·아세안 연대 구상(KASI)도 제시했다. 오는 2024년 한·아세안 관계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 제안 외에도 한·아세안 외교당국 전략대화 활성화, 한·아세안 국방장관회의 개최, 아세안 연합훈련 적극 참여,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업그레이드 등 안보·통상·기후 및 환경을 비롯한 전방위 분야의 협력 강화를 통해 단순한 기능적 협력 파트너를 넘어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헤쳐 나갈 실질적, 전략적 파트너로 발전시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우리 정부는 2022 G20 정상회의에서 청정에너지 기술 개발과 보급 확대 등 국제사회가 직면한 도전과 위기에 대처하는 데 책임 있는 기술 강국으로 역할을
다하겠다는 점을 명시했다. 사진은 2022년 5월 24일 외교부와 베트남 자원환경부가 공동 개최한 ‘아태지역 탄소중립 협력’에 관한 행사 ⓒ외교부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 위한 다자외교 강화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미국의 유력 외교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를 통해 글로벌 중추국가에 대한 비전과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정부 출범과 함께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 건설을 목표로 함께 번영하는 지역별 협력 네트워크 구축, 능동적 경제안보 외교 추진과 국격에 걸맞은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 강화, 첨단전략 건설과 방산 수출 확대의 선순환 구조 마련 등 중점 국정과제를 설정했다. 이는 한국이 더이상 국제질서 변화를 단순히 따르는 소극적 중견국이 아닌 국제질서의 방향 설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적극적·중추적 중견국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동남아시아 순방을 통한 다자외교 강화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만에 한·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 G20 정상회의 등 여러 다자무대에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적극적 역할과 기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미국, 일본, 중국, 아세안 등 주요국들과 연쇄적으로 정상외교를 이어갔다.

이번 G20 정상회의는 ‘함께 하는 회복, 보다 강한 회복’이란 주제 아래 식량 및 에너지 안보, 보건, 디지털 전환 등 3개 의제에 대한 논의로 구성됐다. 이 세 가지 의제 중 한국은 식량 및 에너지 안보, 보건 등 2개 세션에 참가해 한국의 비전과 역할을 강조했다.

첫째, 식량 및 에너지 안보 세션에서는 글로벌 식량, 에너지 위기 상황, 과도한 보호주의 지양을 위한 연대와 협력 강화를 제안했다. 특히 글로벌 및 개발도상국 식량 위기 대응, 에너지 가격 안정을 저해하는 불리한 수출 및 생산 조치가 없도록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한국의 강점 분야에 대한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의 스마트 농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그 예로 제시했는데, 이는 이미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기술 전수를 추진 중인 사항이다. 이외에도 한국의 원자력 발전 역량의 적극 활용, 재생에너지, 수소 등 청정에너지 기술 개발과 보급 확대 등 국제사회가 직면한 도전과 위기에 대처하는 데 한국이 책임 있는 기술 강국으로 역할을 다하겠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져 한국 기업의 높은 기술 역량을 공유하고 향후 한국 기업에 경제적 기회를 창출해줄 가능성이 높다. 보건세션에서는 강력한 보건 연대를 통해 팬데믹을 극복하고 자유를 되찾고 있음을 강조하며 팬데믹에 잘 대처해 온 한국이 ‘국제 보건 연대의 촉진자’로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다자외교를 통해 주요국들과의 양자협력 강화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했다. 특히 그동안 약화됐던 한·미·일 공조 강화와 중국, 일본과의 협력 활성화를 위한 물꼬를 텄다.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인도·태평양에서 한·미·일 3국 파트너십을 확대·강화하기로 합의했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공동 대응 강화, 인태지역 안정과 번영을 위한 파트너십, 경제·기술 안보 분야 및 기후 위기 대응과 같은 글로벌 차원에서의 협력 확대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3년 만에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상 간 소통의 문을 열고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긴장 완화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중국의 건설적 역할과 국제사회에서의 협조를 당부했다. 향후 구체적인 협의 소통 채널을 마련하기 위한 양국 고위급 대화 정례화 추진과 한중 FTA 2단계 협상의 조속한 마무리, 1.5 트랙의 민관 대화 채널 구축 등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지난 2022년 11월 15일 3년 만에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고위급 대화 정례화, 1.5트랙 민관 대화 채널 구축 등을 논의했다.
사진은 2022년12월 12일 ‘제3회 한중 기업인 및 전직 정부 고위 인사 대화’ 행사 모습 ⓒ연합
한국형 인태 전략 추진 방향
이제까지 한국은 급변하는 국제질서 변화 속에 진행되는 전략적 담론으로부터 떨어져 주변부에 맴돌았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라도 인태 전략 발표를 통해 국제질서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비전을 제시한 것은 다행이다. 앞으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과 기여를 강화하고 글로벌 아젠다 설정에 한국의 사활적 이익을 반영하기 위해 치밀하고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한국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 남중국해 등에서 발생하는 힘에 의한 현상변경이나 국제법원칙 위배와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중국이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웃국가라는 지정학적 현실을 고려해 한중 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중국은 이번 한국의 인태 전략 추진을 한국의 대미 경사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이며 현재 한국뿐 아니라 유럽국가, 호주, 일본, 캐나다 등 다수의 주요국들도 인도·태평양에 대한 자국의 전략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옹호하는 국가임을 명확히 하고 한국의 인태 전략은 포용적이고 특정국을 배제하거나 겨냥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중국 측에 충분히 이해시켜야 한다. 즉 미국과의 협력 강화가 반드시 중국과의 관계 훼손을 의미하는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동시에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한·미·일 간 협력 강화를 통해 대북 억제를 강화하는 것과 북한의 비핵화 및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의 건설적인 지원과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중심지가 동남아시아와 인도양 지역임을 감안할 때 한국이 중점적으로 협력해야 할 대상은 아세안과 인도 및 주변 남아시아 국가일 것이다. 특히 공급망 다변화, 첨단 기술 협력, 기후 변화 및 팬데믹 대응 등 경제 및 비전통 안보 연대 강화를 위해 지역별로 특화된 포용적 소다자 협력 네트워크를 확충해야 할 것이다.
조 원 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