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후협상 30년과 제27차 당사국총회
기후 재앙 막는 세계적 차원의
대응 마련해야
전 세계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머리를 맞댄 지 30여 년이 흘렀다. 지난 2022년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당사국총회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 성과와 한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설립 30주년인 2022년 11월 6일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가 2주 간 이집트의 샤름엘셰이크에서 개최됐다. 이번 총회의 최대 관심사이자 폐회 날짜를 이틀이나 연장하게 한 아젠다는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의 설립이었다. 이 아젠다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개도국들의 계속된 요구에도 지금껏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던 이슈였는데 이번 당사국총회를 통해 이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의장국인 이집트를 포함해 다수의 기후변화 취약국들이 기금 설립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성과였다.
기후변화의 ‘손실과 피해’란 지금까지 누적된 대기 중 온실가스로 인해 발생하는 온난화와 이상기후 때문에 입게 되는 손해를 가리킨다. 예컨대 2022년 여름 파키스탄은 사상 최대의 집중호우로 국토의 1/3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기상이변의 이유가 기후변화 때문이라면 파키스탄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도 결국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배출한 국가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손실과 피해’는 과거의 행동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묻는 문제와 직결돼있다. 파리기후협약에 기초한 기후위기 대응의 두 축인 ‘감축(mitigation)’과 ‘적응(adaptation)’이 미래를 위한 행동인 데 반해 ‘손실과 피해’는 과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기후위기 대응의 세 번째 축(Third Pillar)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제27차 당사국총회의 최대 성과로 ‘손실과 피해’ 기금 설립 합의가 꼽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번 당사국총회의 산출물인 ‘샤름엘세이크 이행계획’에는 이 기금을 어떻게 만들고 어디에 사용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돼 있지 않다. 단지 기금 설립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한다는 내용만 포함됐다. 이 기금의 잠재적 수혜국인 기후변화에 취약한 개도국들과 이 기금에 재원을 갹출해야 할 선진국들 사이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번 당사국총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인 탄소배출 감축과 관련해서도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적 재원에 대한 논의도 미미했다. 2010년 당사국총회(COP16)에서 합의한 매년 1,000억 달러 기후기금 조달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인류가 직면한 절박한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협력이 절실하지만 우리가 처한 국제정치의 현실은 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2022년 11월 6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에서 사메 쇼크리 의장이 연설하고 있다. Ⓒ연합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적 공동대응이 어려운 이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위기의 절박함과 국제적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섬뜩한 표현을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2018년 9월 유엔총회 개막연설에서 기후위기가 지구에서의 인류의 생존 자체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2022년 7월에는 인류가 기후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해 살아남든지 아니면 ‘집단자살’을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경고했다. 샤름엘셰이크에서는 제27차 당사국총회의 당초 폐막일을 하루 앞두고도 협상 타결이 어려워 보이자 “비난 게임은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MAD)를 위한 처방”이라고 경고했다. 핵전쟁과 관련된 개념을 빌어 기후위기가 핵전쟁처럼 인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이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적 공동 대응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무임승차의 유혹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공공재 공급 문제와 유사하다. 기후위기는 인류 전체에 대한 위협이고 이의 극복은 인류 전체를 위한 이익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면 비용 부담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공공재 공급은 비용은 부담하지 않고 혜택만 누리려는 무임승차의 유혹이 존재한다.
둘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화석연료에 기초한 경제와 문명의 많은 것을 바꾸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기득권의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산업이나 국가의 반대는 물론이고 화석연료에 기초한 문명과 삶의 패턴에 익숙한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기후위기를 둘러싼 사실관계와 이론적 논란도 전환을 향한 걸음을 가로막거나 더디게 한다.
셋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상은 책임과 행동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두고 종종 난관에 봉착한다. 현재 기준으로 탄소배출 상황을 보면 세계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압도적 1위이고 그 뒤를 미국(13.5%), 인도(7.0%), 러시아 등이 따르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 누적기준으로 보면 미국이 22.6%로 1위이고, 중국(16.6%), 러시아, 일본, 독일 등이 뒤따른다. 국민 1인당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보면 사우디, 미국, 캐나다, 한국 등이 가장 높고, 중국(7.0톤)은 세계 평균(4.8톤)보다 좀 더 높은 수준, 인도(2.0톤)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감축의 책임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개도국들은 선진국들이 지금껏 많이 배출했으니 선진국부터 대폭 감축하라고 요구하고 선진국들은 일부 개도국들이 대규모 배출국이니 지금 당장이라도 감축 행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축 의무를 국가별 탄소배출 총량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 1인당 탄소배출량 기준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감축 의무가 크게 달라진다. 기후협상이 종종 상이한 위치에 있는 서로를 비난하는 ‘비난 게임(Blame Game)’으로 끝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2018년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 기준
2022년 11월 11일 샤름엘셰이크에서 ‘손실과 피해’를 배상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선 우간다인 ©연합
새로운 국제협력 방안의 모색
기후위기에 대한 전 세계적 차원의 효과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면 파리기후협약이 목표로 하는 1.5℃ 이내로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없게 되고 기후변화는 인류가 어찌할 수 없는 속도와 방향으로 가속될 것이다. 이에 따른 기후재앙은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갈등과 분쟁을 격화시킬 것이다. 인류가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안을 시급히 마련하고 실행해 가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껏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지만 효과적인 기후위기 대응방안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토빈세(Tobin Tax)이다. 국제적 외환거래에 낮은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이 제안은 애초 국제금융시장의 안정과 통화정책 자율성 확보를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1990년대 이후 유엔 재원 확보, 개도국 개발 지원 등 다양한 목표를 위한 재원조달 수단으로 거론됐다. 세계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이 7.5조 달러에 이르는 점을 고려할 때 0.01%의 세금만 부과해도 연간 1,000억 달러 정도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연간 거래일 250일, 세금부과에 따른 거래량 감소 50%로 가정). 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조세정의에도 부합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세계적 재원 확보 수단으로도 훌륭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안이다.
둘째, 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기후위기 대응기금으로 할당하는 방안이다. IMF는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차원에서 6,500억 달러에 달하는 특별 인출권을 새로 할당했다. 기존 방식의 특별인출권 할당은 각국의 IMF 쿼터에 비례해 배정되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 큰 혜택이 돌아간다. 기후위기에 인류의 생존이 걸려있는 현실에서 1조 달러 규모의 특별인출권을 세계적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기금으로 할당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글로벌 탄소세의 도입이다. 기후위기의 주범이 이산화탄소의 배출인 점을 고려할 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은 탄소배출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탄소배출을 많이 할수록 탄소세를 누진적으로 많이 부담하도록 하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고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도 있다. 세계 이산화탄소배출량이 연간 400억 톤에 이르는 점을 고려할 때 누진적 탄소세 구조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물론 이러한 방안들 모두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토빈세 도입은 금융부문과 금융강국의 반대가 심할 것이고 대규모 특별인출권 할당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우려하는 미국이 반대할 것이다. 탄소세 도입은 화석연료 생산국과 산업은 물론이고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들도 반대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결국 정치의 문제이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절규처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모두 갖고 있지만 국내·국제적 정치 문제로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정 진 영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