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공공외교
평화통일원정대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4월 23일 토요일 오전, 25명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일본중부협의회 자문위원과 현지 동포들이 JR 나고야역에 모였다. 400여 년 전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다. 학교에서 조선통신사에 대해 얼핏 배우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몰랐는데 이번 ‘평화통일원정대’는 조선통신사의 여정과 의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조선통신사는 조선 후기인 1607년, 에도 막부의 국교 회복 요청과 조선 조정의 수락으로 국교가 재개 된 이후부터 1811년까지 총 12차례 파견됐다. 조선통신사는 한 번 파견되면 300~500여 명의 인원이 1년 여에 걸쳐 왕복 4,000km에 이르는 거리를 이동했는데, 떠나기 전 유서까지 써 놓을 정도로 굉장히 멀고 위험한 여정이었다. 평화통일원정대는 이들의 대장정 중 시가현 나가하마시에 있는 아메노모리 호슈암(東アジア交流ハウス雨森芳洲庵) 기념관과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에 있는 비사이 역사민속자료관(一宮市尾西歴史民俗資料館)을 방문했다.
아메노모리 호슈암 기념관이 있는 마을은
누구나 매료될 만한 운치를 품은 조용한 마을이다.
비사이 역사민속자료관에는 조선통신사가 거쳐갔던 에도시대의 가도 중
하나인 미노지 관련 유적들이 전시돼 있다.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따라 한일관계의 미래를 찾다
가장 먼저 방문한 아메노모리 호슈암 기념관은 매우 운치 있고 조용한 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길가와 집뜰에 피어 있는 온갖 꽃들과 파란 하늘 등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기 위해 팀원 모두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히라이 시게히코 전 관장은 우리 팀을 반갑게 맞아 주며 조선통신사와 아메노모리 호슈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는 일본 에도시대 중기의 의사이자 유학자로 당시 조선과 일본의 우호를 위해 생애를 바친 인물이다.
그는 조선과 일본의 교류창구였던 대마도의 쓰시마번에 유학자로 취임해 조선과의 외교 실무를 담당했고, 조선어를 배우기 위해 3년간 동래(부산)에 머무르며 우삼동(雨森東)이라는 조선식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조선통신사를 전담 보좌하면서 통역뿐 아니라 조선에서 온 유학자들과 깊은 교류를 맺었고, 일본 최초의 조선어 교과서인 ‘교린수지(交隣須知)’를 집필하는 등 한일 양국의 우호 증진에 큰 역할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편찬한 대조선 외교지침서 ‘교린제성(交隣提醒)’이었다. “서로 속이지 말고 다투지 말고 진실로써 사귀어야 한다”는 원칙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에도시대 중기의 의사이자 유학자로 조선과 일본의 우호를 위해 생애를 바친 아메노모리 호슈
아메노모리 호슈암을 나서 요로(養老)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비사이 역사민속자료관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에도시대의 가도(街道, 교통상 중요한 도로) 중 하나이며 조선통신사가 거쳐 갔던 ‘미노지(美濃路)’에 관련된 유적들이 전시돼 있었다. 미노지는 현재의 기후현 타루이(垂井)에서 아이치현 나고야(名古屋)의 아쓰타(熱田)를 잇는 가도이며, 7개의 역참(宿場, 가도 사이에 존재했던 거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다이묘(大名, 지방정권의 수장)를 포함한 일반인들은 하천을 건너기 위해 나룻배를 이용했지만 조선통신사는 규모가 컸을 뿐 아니라 나룻배를 타고 가는 것이 외교적 결례로 여겨질 수 있었기에 다른 방법으로 하천을 건넜다고 한다. 약 300척의 선박을 900m 길이로 연결해 고정한 후 그 위에 튼튼한 판자를 깔아 다리처럼 만든 ‘후나바시(船橋)’라는 임시 교량을 만든 것이다. 후나바시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에도 막부의 이동 제한 정책상 사용 후 바로 철거됐기 때문에 당시 쇼군(將軍, 일본 국왕)과 조선통신사가 지나갈 때에 한해서만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일 역사에 조예가 깊은 한기덕 전 일본중부협의회장은 “일본 에도시대에 후나바시를 조선통신사에게 특별히 제공했다는 사실을 통해 통신사 일행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원정대는 후나바시 선착장의 비석 탐방을 끝으로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종착지인 나고야역으로 이동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 평화통일 원정대 행사는 한일 양국의 평화에 기여했던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 일본지역 자문위원들이 ‘21세기의 조선통신사’가 되어 한일관계에 기여하는 민간 외교사절단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동 우 석
민주평통 청년자문위원 기자
(일본중부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