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42020.06

지난 5월 15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방역원들이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모스크바 기차역에 소독제를 뿌리고 있다. ⓒ연합

국제

인류사 대전환의 시기

국제적 연대와 협력으로
다시 인류의 위대함을...

코로나19는 인류사(人類史)의 대전환이다. 개인의 일상도 국가의 역할도 세계의 질서도 이미 근본적으로 변했다. 일부는 코로나19의 ‘종식 선언’을 기다리며 2019년 12월 이전으로의 복귀와 회복을 희망한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르는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 혹은 코로나19 ‘종식’ 이후(After COVID-19, A.C.)는 코로나19 이전(Before COVID-19, B.C.)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회복될 개인의 일상도, 요구될 국가의 역할도, 인류사를 구성해나갈 세계 질서도 코로나19 이전의 그것이 아니다. 이를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해야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제대로 보이고, 미래를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국제질서의 변화, 반세계화와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다양한 이유로 변한다. 기술의 발전, 이념의 등장, 신무기의 개발, 국가의 탄생, 개인의 활동 등 국제질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수히 많다. 이 중 학문적으로 이론화되지 못한 한 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충격(Shock)이다. 충격은 대부분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예상할 수도 없고, 혹시나 일반적인 경향은 예측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 사건의 모습이나 시간을 전혀 특정할 수 없다. 세계 정치에서 구(舊)소련의 붕괴, 9·11 사태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설명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긴 했지만, 이는 사후적 설명일 뿐이다. 코로나19의 대유행도 국제질서에 있어 이런 충격 중 하나이고, 상당히 큰 충격이다. 세계 질서 변화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가장 눈에 잘 보이고 자주 언급되는 변화 방향은 기존에 이미 진행 중이던 경향이 급격히 가속하는 것이다. 2010년 이후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미·중관계이고 2010년대를 특징짓는 것 또한 미·중 갈등이다.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과 미국의 항행의 자유 작전, 미(美)구축함 디케이터와 초계기 P-8에 대한 중국의 위협, 통상 분쟁과 계속된 협상, 화웨이 사건, 홍콩 시위와 천안문 30주년을 둘러싼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설전 등 트럼프와 시진핑 시기 두 국가의 관계는 상당히 나빠졌다. 바이러스의 기원, 정보 공개 투명성 문제, 이와 관련한 책임론, 국가 배상에 관한 논의, 세계보건기구 분담금 문제 등으로 코로나19는 이미 나빠진 양국 갈등을 급속히 증폭하고 있다. 이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둘째, 미·중관계 악화와 함께 이들 국가로부터 일부 파생, 증폭됐거나 혹은 독립적으로 진행되던 국제정치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이 변화는 2020년 5월 중순 현시점에 특정한 방향성을 보이진 않는다. 이 변화의 가시적인 모습은 탈냉전 이후 진행된 세계화(Globalization)와 그 기초가 된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에 대한 거부와 반발이다. 탈세계화, 반세계화, 분절화 등으로 불리는 이 변화는 자국중심주의, 보호무역주의, 문화상대주의, 권위주의의 부활, 대중영합주의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 나타나던 이 경향은 2016년 브렉시트와 2017년 트럼프의 당선으로 영국과 미국에까지 등장해 국제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 3월 31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아자디 타워에 전 세계 코로나19 피해국 들의 국기가 투사되고 있다. ⓒ연합
하지만 구조적 변화의 큰 흐름에서 이 가시적 변화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 흐름은 새롭고 자극적이고 뉴스거리가 되기 때문에 실체보다 더 크게 인식되고 주목받았다. 이 경향은 미·중 갈등의 악화와 맞물리기도 하고, 코로나19로 나타나는 미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의 일방적인 국경 폐쇄조치, 방역 관련 물자 및 생필품 등 일부 산업의 전략적 국산화, 해외 진출 기업의 복귀 논의 등으로 이어지며 상당한 주목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반세계화의 흐름이 등장했다고 해서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는 세계화와 자유주의 흐름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그것이 천명하는 가치인 인권, 민주주의, 평화, 연대, 협력, 공존, 상호의존 등이 완전히 그 의미를 상실한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두 흐름은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작용할 것이다. 두 흐름 중 가시적이고 주목받는 것은 당연히 이벤트성이 큰 반세계화 경향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보다 일상적이고, 비교적 주목을 덜 받는 자유주의의 강한 흐름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자유무역을 주창하던 미국이 트럼프 등장 이후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자, 중국의 시진핑이 다보스포럼 등 국제무대에서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청한 사실은 두 경향 중 어느 하나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일반적으로, 코로나19 상황에 중국산 마스크를 둘러싼 미국과 프랑스 수입업자 간의 갈등이 수많은 국가와 국가, 국가와 국제기구, 시민사회 간의 협력보다도 더 이슈화 되고 강하게 각인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둘 중 어느 흐름이 국제질서를 지배할 것인가는 인류사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집합적 인간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다. 그리고 그 집합적 선택의 핵심에 국제법과 국제기구가 있다.

“국제적 연대와 협력은 중요한 가치이다. 일시적으로 또한 일부 국가들에 의해 그 가치가 부분적으로 부인되고 훼손될 수 있어도, 그것이 보편적이고 장기적인 추세가 되기는 어렵고 그렇게 되어도 안 된다. 코로나19는 이미 우리에게 국가 간 협력과 공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양한 글로벌 연결망과 자국중심주의
국제법과 국제기구는 국제정치의 근간이다. 국제정치는 흔히 특정 국가의 행위에 초점을 두고 기술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행위는 법과 제도가 촘촘히 연결된 구조망 안에서 작동한다. 인류사에서 중요한 법과 제도 의 형성은 세계 정치에 큰 충격이 있을 때 가능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는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을 만들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Holocaust)이라는 충격에 직면해 인류는 집단살해죄(Genocide)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만들었고, 세계 인권선언을 천명했다. 세계 정치에 큰 충격이 있을 때 획기적인 법과 기구가 만들어졌고, 충격이 약할 때는 기존 법이나 기구의 임무와 역할이 조정됐다. 코로나19도 어떤 형태로든 국제법과 기구에 지문을 남길 것이다.

일부는 코로나19 이후 세계화 이전의 자국중심주의로 회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세계화는 위축되고, 교류는 줄어들고, 국가 중심의 경제 및 사회 시스템 운영이 주를 이룰 것으로 예측한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국제 법과 국제기구는 점차 약해지고 결국에는 인류와 무관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와 경향은 앞으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미 이런 주장은 국민의 표와 지지를 수월하게 모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정치적 효용이 입증 됐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려는 국내외 정치세력은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내부 통제가 중요한 권위주의 정권이나 선거를 앞둔 민주주의 정부 내의 다양한 정당에 이는 너무나 매력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자국중심주의로의 회귀를 전망하는 이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탈냉전 이후 진행된 세계화와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이미 가져온 구조적이고 의식인 변화이다. 구조적으로 우리는 이미 수많은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연결망 안에서 살고 있다. 국내 제도와 산업, 문화 구조까지도 이러한 국제질서와 맞물려 형성되고 발전해왔다. 국제기구와 법은 무역, 항공, 금융, 통신, 물류, 기술, 군사, 인권, 보건, 문화, 환경 전 분야에 걸쳐 국가와 함께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져 왔다. 2016년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가 4년 넘게 지루한 논란과 협상을 이어가며 영국과 유럽연합에 큰 파장을 남긴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의식적으로 인류는 일국 중심의 사고가 아닌 ‘글로벌’한 사고를 하고 있다. 인권, 민주주의, 환경, 빈곤퇴치, 기업의 사회적 책임, 보호책임 등에 대한 세계시민주의적 의식은 분명히 이전의 인류 의식과는 다르다. 또한, 통신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외국 정보에 대한 수요, 전문가집단의 밀접한 상호교류, 세계문화의 소비, 온라인 협력과 공론장 형성, 초국가적 사회운동의 급속한 전파 등 인류의 의식구조는 세계화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일부 국가에서 자국중심주의로의 회귀가 일어나더라도 이는 이전의 자국중심주의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지난 4월 22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주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글로벌 협력 방안 온라인 국제 포럼’이 진행됐다. ⓒ연합
더 중요해진 국제 연대와 협력
국제적 연대와 협력은 중요한 가치이다. 일시적으로 또한 일부 국가들에 의해 그 가치가 부분적으로 부인되고 훼손될 수 있어도, 그것이 보편적이고 장기적인 추세가 되기는 어렵고 그렇게 되어도 안 된다. 코로나19는 이미 우리에게 국가 간 협력과 공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느 국제정치학자는 진정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 혹은 세계정부의 출현은 인류에게 적대적이고 가공할 위협이 되는 외계생명체가 등장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전망했다. 즉, 진정한 협력이란 외부의 위협이 없이, 인류 공통의 위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제까지 핵전쟁,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유전자조작, 소행성충돌 등 인류를 위협하는 다양한 후보 군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이 현실적이고, 체감할 만큼 가깝고, 전 세계적인 도전은 아니었다.

위기 상황은 인간의 위대함(the Best)과 저열함(the Worst)을 모두 이끌어낸다. 이미 우리는 국내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외국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았다. 미·중 갈등의 양상을 보면 암담하긴 하지만, 전반적인 국제정치의 법과 제도 영역에서 볼 국가들의 모습은 저열함이 아니라 위대함이길 소망한다.

김 헌 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