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42020.06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했다는 허위정보로 시작됐다. 사진은 이라크전 당시 연기에 휩싸인 바그다드 ⓒ 연합

북한 포커스

북한 정보의 허와 실

왜곡된 정보 끊어낼
강력한 수단 필요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언론매체에서 모습을 감춘 20일간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적지 않은 서방세계의 언론들이 그의 안위와 관련된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증폭하면서 민망한 민낯을 드러냈다.

이번 가짜뉴스의 불씨를 지핀 것은 한국의 인터넷 언론이었지만 이를 들불로 확산시킨 매체는 미국 CNN이었다. CNN 뉴스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CNN은 3년 전에도 김 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전 경공업부장이 독살됐다는 오보를 낸 적이 있다.

과거부터 이어진 확인되지 않은 뉴스의 생산
과거 북한 관련 가짜뉴스의 주 진원지는 한국이었다. 때로는 한국 정부가 가짜뉴스 생산에 개입하기도 했다. 이 시기 서방의 언론들은 오히려 이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곤 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가짜뉴스는 1986년 11월 ‘김일성 사망’ 기사다. 조선일보가 세계적 특종이라면서 호외까지 냈고 한국 국방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김일성 유고설을 확인해주었다. DMZ 북한 확성기에서 김일성 사망 소식과 장송곡이 방송되고 있고, 예정된 몽골 국가원수의 방북이 취소됐다는 근거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즉시 UPI 통신이 김일성 주석이 평양공항에서 몽골 국가원수를 영접했다는 뉴스를 전했고, 유엔사가 DMZ에서 북한의 특이동향이 관찰되지 않는다고 확인하면서 한국의 부끄러운 관-언 합동 오보소동은 정리되었다.

김일성 주석이 진짜로 사망한 직후인 1994년 7월, 한국 정부는 북한 총리의 사위였다는 강OO 씨의 귀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 씨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이미 핵무기 5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음해부터는 대량생산까지도 가능할 거라고 증언했다. 근거는 없었다. 당시 북한은 무기화하지 못한 소량의 핵물질을 확보했을 뿐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을 그 상태로 동결하는 선에서 핵확산을 막기로 하고 북한과 고위급 회담을 재개하려 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그 기자회견을 ‘한국 정부가 북·미 대화를 방해하기 위해 연출한 미묘한 기자회견’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강 씨의 핵무기 5개 보유 발언이 한국 정보당국의 사주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하던 2016년 2월에는 정부가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의 처형설을 흘렸다. 죽었다던 리영길은 석 달 뒤 모습을 드러냈는데, 정부가 설익은 정보를 서둘러 흘린 배경에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대한 비판 여론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혹까지 샀다.

2004년 영국 BBC가 북한의 화학무기 생체실험의 증거로 제시한 북한 보위부 예하조직의 직인이 찍힌 엉터리 ‘이관서’ ⓒ연합
인포데믹 확산 불러온 국내외 환경의 변화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인포데믹이 전염병만큼 무섭다는 말이 나올 만큼 가짜정보나 뉴스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을 둘러싼 가짜뉴스는 단지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잘못된 정보나 악성루머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주류 언론들이 메인 뉴스에서 진지하게 가짜뉴스를 다루고 있다. 이번 김정은 위중-사망설 가짜뉴스 소동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언론들, 한국의 정치인들이 다양하게 개입했다. 청와대와 통일부 등 한국 정부가 매우 이례적으로 김정은의 신변에 특이 동향이 없음을 확인하며 오보를 강력히 부인했지만 이마저 무시됐다. 과거에는 일부 언론이 오보를 생산하더라도 외신 등 다른 언론사들이 침묵하거나 비판함으로써 확산이 저지됐지만, 이번에는 자정 기능도 제한적으로만 작동되었다.

그 바탕에는 정보통신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정보의 상당 부분을 독점했고, 고급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정치인이나 소수 탈북민의 증언을 신문, 통신, 방송 등 전통 매체들이 다루는 구조였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정보와 뉴스 시장의 플레이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시장도 커졌다.

검증되지 않은 인터넷 매체나 개인 유튜버들도 손쉽게 구독자(시청자)에게 도달할 수 있게 됐다. 그중에는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수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통 언론 매체들은 라이벌 언론사 뿐 아니라 다양한 뉴스 생산자들과 클릭수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로 북한에 대한 해외 언론들의 관심이 커진 것도 하나의 변수이다. 21세기 들어 미국 의 골칫거리이던 지도자들-오사마 빈 라덴, 후세인, 카다피, 카스트로-은 차례로 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체제의 뉴스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기 고모부를 처형하고, 미국을 상대로 미사일과 핵실험을 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북한에는 서방 상주 특파원도 없고 취재도 쉽지 않다. 그래서 북한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거의 유일한 뉴스 시장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이다.

그래서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한 소식통을 발원지로한 소문이 정보로 둔갑하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뉴스가 되면서 내신과 외신을 거쳐 또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와 정쟁과 뉴스로 무한반복되는 가짜뉴스의 고리가 형성된다. 때로는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뉴스가 북한으로 들어간 뒤 북한발 뉴스로 둔갑해 나오기도 한다.

“서구의 언론인들 가운데 일부는 유독 북한 뉴스에 대해서는 팩트 체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지만, 북한이 수많은 정치범을 수용소에 구금하고,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그 증거를 은폐하는 것이 분명한데 무슨 사실 확인이 필요하냐는 이유에서이다. 언론이 이럴진대 일반인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선한 목적, 신념으로 위장한 가짜뉴스
가짜뉴스가 계속 확산되는 이유는 검증되지 않은 ‘북한 소식통’에게 과도한 권위를 주고 검증 책임도 건너뛴다는 점 때문이다. 2004년 2월, 영국의 BBC는 ‘악으로의 접근(Access to Evil)’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북한의 화학무기 생체실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뉴스였다. 1년 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인 핵과 화학무기에 대한 정보를 근거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BBC가 화학무기 생체실험의 증거로 제시한 것은 북한 보위부 예하조직의 직인이 찍힌 ‘이관서’였다. 그 서류에는 정치범을 “화학무기 액체가스 생체실험에 필요한 대상으로 2.8비날론연합기업소 보위부로 이관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우리 정보당국은 그 서류가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관서의 형식이나 발급 주체도 엉터리였지만 잠깐만 생각해보아도 ‘생체실험’이라는 1급 기밀을 문자로 써서 호송담당 하급 관리의 손에 쥐어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목격자 K씨는 정치범 수용소 감시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서구의 언론인들 가운데 일부는 유독 북한 뉴스에 대해서는 팩트 체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지만, 북한이 수많은 정치범을 수용소에 구금하고,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그 증거를 은폐하는 것이 분명한데 무슨 사실 확인이 필요하냐는 이유에서다. 언론이 이럴진대 일반인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보수단체나 개인으로까지 확장된 다 양한 뉴스 생산 유통의 주체들은 가짜뉴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체제를 붕괴시키고 주민들을 해방시키려는 선(善)한 목적의 전쟁을 치른다는 신념과 목적의식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일 사망설이 돌았던 김정은 위원장이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사진은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 활동 소식을 시청하는 시민들 ⓒ연합
하지만 목적성과 신념, 고정관념이 거짓정보와 결합하면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2003년 봄 이라크 전쟁이 그것이다. 미국은 이라크가 핵과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는 정보를 근거로 전쟁을 개시했지만 그 정보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정보원 찰라비(Ahmed Chalabi)는 군사 쿠데타로 축출된 왕실의 측근 귀족 출신으로 미국에 망명한 뒤 후세인에 반대하는 이라크 내 지하조직을 운영하며 CIA로부터 매달 33만 달러가 넘는 정보비를 받아왔다. 그가 거짓 정보를 제공한 목적은 정보비 외에도 자신의 영향력 확장과 정치적 야심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 다른 정보원 ‘커브볼’은 독일에 망명한 이라크 화학자로, 그의 정보는 미국 정보기관의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부실한 것이었다. 미국 상원정보위원회는 2008년 보고서에서 이라크 전쟁은 심각한 정보실패로 인한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시인했다. 네오콘의 강경한 신념과 그 입맛에 맞춘 망명자들의 거짓정보가 미국의 국가정보를 오염시켰다는 말이다. 개전의 명분을 제공한 찰라비는 전쟁이 나자마자 미군 수송기편으로 이라크로 화려하게 귀향해 과도정부 구성을 주도했다. 그러나 곧 미국과 이해관계가 틀어지면서 미국과 이라크 모두로부터 외면당하고 말았다.

CNN이 김정은 위원장 위독설을 보도한 당일 한국의 주가는 한때 3% 가까이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도 급등했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김정은 위독설을 부인한 배경은 가짜뉴스가 위기 요인이 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북한의 이상 징후는 그대로 코리아 리스크가 되고, 이는 무역국가인 대한민국에는 치명 적이다. 잘못된 정보원과 가짜뉴스는 여론과 정치를 왜곡시킨다. 이렇게 왜곡된 여론과 정치는 안보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 양극화가 정보의 왜곡과 양극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묘수가 시급하다. 또 가짜뉴스로 경제적 이득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제재 수단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북한발 가짜 뉴스는 계속해서 우리의 주식시장과 사회, 국내외 언론과 정치를 춤추게 할 것이다.

김 현 경 MBC 통일방송연구소 소장, 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