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52020.07

1972년 7월 10일 7·4 남북공동성명 후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열린 제2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광경ⓒ 연합

특집 1

국제질서 변화와 남북합의

남북합의 역사
국제질서의 도전과
남북한 대응의 변주곡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여 년이 가까워지는 동안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국내외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남북한은 몇 번에 걸쳐 중요한 합의문을 만들어 냈다. 남북합의문은 크게 보면 정전체제를 극복하여 평화공존과 협력체제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남북합의들은 국제질서의 변화라는 도전을 한 축으로 하고, 남북한정권의 대응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 전개된 변주곡이다. 분단체제의 형성과 변화는 한편으로는 국제질서의 구속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응하려는 남북한의 치열한 노력이 맞물려진 결과다.

남북합의는 국제질서 변화와 관련하여 어떤 성격을 띠었을까? 남북합의는 때로는 국제질서의 변화에 순응했고, 어떤 때는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려 하기도 했다. 국제질서 변화의 성격에 따라 남북합의는 적응하기도 하고, 공세적으로 대응하기도 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절충적 성격을 띠기도 했다.

그렇다면 남북합의 가운데 어떤 것은 이행되고 어떤 것은 이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합의의 이행을 결정하는 요인은 남북한의 체제 보장과 경제문제로 집약된다. 남북한은 각각 체제 보장과 경제에 도움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합의 이행 여부를 결정했다. 남북한이 합의 이행을 통해서 공통이익을 발견하고 이를 키워나갈 수 있을 때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어느 한 측이라도 합의 이행이 체제를 위협하고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길 때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다.

미·중 데탕트와 7·4 남북공동성명
1970년대 초 냉전구조가 부분적으로 완화되는 조짐을 보였다. 미국과 소련은 1972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체결하고 평화공존을 모색했다. 미국과 중국은 1972년 2월 「상하이 성명」을 발표하고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었다. 미·소 데탕트와 미·중 화해는 냉전구조의 한 축이었던 한반도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냉전체제의 균열 조짐에 대응하여 남북한은 대화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였다.

1972년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대화가 이루어져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통일원칙, 군사적 충돌 방지, 교류협력, 이산가족문제, 직통전화 설치 등의 내용을 담았다.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한 당국이 합의한 최초의 공식 문건으로, 이후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한 남북합의문의 중요한 준거틀이 되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그 상징성과 의미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남북한이 공존과 협력을 제도화하기에는 세계적 냉전구조가 아직 공고하게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분단 이후 지속된 남북한 간 대립과 경쟁 구조는 남북관계 진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남북한은 1970년대 초 국제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대화를 시도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각각 내부의 체제를 강화하는 노선을 택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실질적인 남북협력이 시작됐다. 사진은 2000년 6월 15일 이북5도청에서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작성하는 실향민들 ⓒ연합
탈냉전과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1990년대 초 세계적으로 전개된 냉전체제의 해체는 한반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냉전체제에서 서방진영 대 공산진영 간 대립의 틀에 갇혀 있던 남북한은 공존과 통일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해 자신감을 얻은 남한은 공세적인 통일정책을 추진한 반면, 열세에 처한 북한은 방어적 입장에서 체제 생존에 역점을 두었다.

냉전체제의 해체, 남한의 선제적인 북방외교와 남북교류협력정책, 북한의 위기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1991년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이 이루어지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 냉전체제가 붕괴하고 남북한의 국력 격차가 드러난 상황에서 남북한이 공존전략을 택한 것이다.

1990년 9월 남북한의 총리를 대표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이 시작되었고, 1992년 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의 기본원칙,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등 분야별 추진과제를 총망라한 남북관계의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각 분야별 부속합의서가 채택되었으며, 분과위원회와 공동위원회가 구성되어 동시다발적으로 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1991년 12월 13일 ‘93팀스피리트훈련 재개 결정을 이유로 남북회담에 불참한다고 통보함으로써 남북대화는 전면 중단되었다. 더욱이 북한의 핵개발로 남북관계는 북핵문제라는 블랙홀로 빠져들었다.

냉전체제 해체라는 세계적 격변에 선제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한 결과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남북한이 탈냉전 상황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려는 적극적 시도였다. 그러나 체제 불안을 느낀 북한이 핵개발이라는 대안을 택하면서 남북한이 공존의 토대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다.

탈냉전 후 과도기와 6·15 공동선언, 10·4 선언
탈냉전 후 미국의 우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불확실성이 커진 과도기가 전개되었다. 동유럽의 체제전환이 진행되고 유럽연합의 지역주의가 부상하였으나,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는 냉전의 유산이 지속되는 가운데 북핵문제가 최대 불안요인으로 대두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적극적으로 평화협력정책을 추진하였다.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라는 외적 충격과 고난의 행군으로 일컫는 경제난으로 남북협력에서 출구를 찾고자 했다. 2000년 6월 15일 분단 반세기만에 최초로 이루어진 남북 정상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 이것은 통일원칙, 통일방안, 인도적 문제, 교류·협력, 남북대화라는 5가지 사항을 담았다. 6·15 공동선언은 민족 내부문제와 국제문제의 분리, 남북관계의 단기 과제와 중장기 과제 제시, 남북한 입장의 절충, 통일방안 협의, 후속 남북회담 제안 등의 특징을 지녔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서 2007년 10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10·4 정상선언이 채택되었다. 10·4 정상선언은 6·15 공동선언의 준수, 상호존중과 신뢰구축,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 경제협력, 사회문화분야 협력, 인도적 사업 추진 등의 내용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이후 남한에 보수정부가 등장하고 핵문제가 악화함에 따라 10·4 정상선언은 실천되지 못했다. 남북한은 탈냉전 후 과도기에서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중요한 문건에 합의하였으며, 이후 3대 경협사업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핵문제와 남한의 정부 교체라는 요인을 버텨낼 수 있는 공동이익을 공고화하지는 못했다.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합의했다. 사진은 2018년 5월 25일 폭파되는 함경남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연합
미·중 전략경쟁과 4·27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미·중 전략경쟁시대의 서막을 알렸으며, 무역, 군사, 과학기술, 4차 산업혁명, 사이버안보, 바이오산업, 우주개발 등 전방위에 걸쳐 미·중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한반도의 전략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을 계기로 역설적이게도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병행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북·미대화를 병행하며 새로운 평화시대를 열려는 구상을 실천했다. 국제질서의 변화에 능동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신한반도체제의 비전도 발표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4·27 판문점선언이 채택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남북관계의 발전,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해소, 평화체제 구축이었다.

그리고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하고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 남북교류협력 증대, 인도적 협력 강화,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교류 추진,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9·19 군사합의’가 채택되었다.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새로운 남북평화협력의 시대를 열기 위한 적극적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남북합의사항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국제도전에 대한 선제적 구상 필요
정전협정 이후 국제환경의 변화에 대해 남북한은 때로는 사후적으로, 때로는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남북평화협력의 장을 열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제 미·중 전략 경쟁시대와 북핵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선제적 구상이 필요하다.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와 협력의 장을 열고 새로운 동북아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북·미대화와 남북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국제환경의 구속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합의들이 지속적으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평화공존과 공동발전이라는 목표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남북한이 공동이익을 발굴하고 이를 공고화할 수 있어야 국제적 제약을 극복하고 평화와 협력이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박 종 철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