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52020.07

평화 LIFE

일상의 평화
유네스코 학교의 평화실천

유네스코가 「평화의 문화와 비폭력을 위한 선언 2000」을 채택한 것은 1999년의 일이지만, 그 정신은 「유네스코헌장」에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정부의 정치적, 경제적 조정에만 기초를 둔 평화는 세계 국민들의 일치되고 영속적이며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평화가 아니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세력 균형이나 나라 사이의 경제적 상호연계만으로는 평화 실현에 한계가 있다는 뜻인데,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진정한 평화는 일상의 평화 또는 평화의 문화를 요구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의 평화란 여전히 낯설다. 일상의 평화란무엇이고 언제, 어떻게 맛볼 수 있는 것일까? 평화를 종착지나 완결된 상태가 아닌 과정이나 절차로 이해한다면 일상의 평화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평화가 항구적이고 진정한 평화의 기반이자 요체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일상의 평화와 관련한 논의에 좀 더 보완됐으면 하는 사항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평화가 맥락 없이 모호하며 억지스럽고 사변적인 상태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일상의 평화 마주하기
먼저, 평화는 관계론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러 관계 속에서 평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감히 말하지만 평화는 의존명사다. 이 낱말은 홀로서기를 할 수 없다. 문법적으로는 허용되겠지만 단독으로 사용된 ‘평화’는 구체적 의미를 전달하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미흡하다. 그렇다고 평화 앞에 저명한 학자들이 주장하듯 적극적 평화, 안정적 평화, 공정한 평화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평화라는 낱말은 자신과 함께 평화를 만드는 파트너를 늘 호명하고 앞세워야 한다. 이웃과의 평화, 다른 성(性) 과의 평화, 자연과의 평화, 자기와의 평화 그리고 동물과의 평화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네스코 21세기 국제교육위원회 보고서(일명 들로르 보고서)」가 교육의 네 기둥 중 하나로 제시한 ‘더불어 살기 위한 학습(Learning to live together)’은, 파트너를 생략하기는 했지만 평화교육의 나침반으로써 지금도 적절하고 유효하다. 게다가 여태 그래왔듯 ‘OO’의 범위는 점점 더 넓혀질 가능성이 높다. 그 자리에 ‘AI’가 들어설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가 간직하고 있는 이른바 평화 문화 자산을 적극적으로 재발견하여 평가할 필요가 있다. 작가 권정생의 『빌뱅이 언덕』은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 한 분을 소개하고 있다. 근처 밭에서 구 해 온 배추나 무, 파 등을 한 단씩 팔아 살아가는 이 분에 게 세상은 여러 의미에서 ‘서로 뜯어먹는 세상’이다. 여기서 ‘뜯어먹다’는 각자 자신의 필요와 이익을 위해서 제한된 자원을 이용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아주머니 같은 분들은 서로 적당히 뜯어먹는 선에서 균형을 유지하지만, 한꺼번에 무더기로 뜯어먹는 장사꾼이 나타나 평형을 깨뜨리는 일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처럼 이탈한 평형을 걱정한다. 그에게 평화란 적당히 고루고루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련된 개념 규정 못지않게 평화의 핵심, 즉 적정 수준의 이익을 서로 나누는 자기조절의 태도와 마음을 우리 사회가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아울러 일상의 평화는 의도적으로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우러나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는 열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른 사소한 일에 그다지 예민하지 않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탓인지 마음이 넉넉해지면서 타인에 대한 따뜻함과 관용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내장된다. 조만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시받은 작업에 따른 현재의 고단함이나 피곤함도 완화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긍정적 후방 효과는 이처럼 만만치 않다.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는 불만과 권태가 앞선다. 일에 대한 건설적인 제안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고, 일이 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미움이나 원망이 생기기도 한다. 「유네스코헌장」의 표현대로라면 전쟁의 싹이 돋아나는 것이다. 요컨대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는 존중, 관용 등 평화의 문화가 요구하는 덕목들을 자연스럽게 갖추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증오 등 전쟁의 문화를 떠받치는 감정에 내면과 생활이 지배당한다.

평화는 전쟁의 부재 상태에서 법이나 제도, 관습 등 사회 체제 내의 억압적·구조적 폭력의 부재로까지 그 의미를 적극적이고 폭넓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경제 사정이나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은 학업이나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당한 이유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구조적 폭력과 얼마나 다를까. 학업이나 생업이 일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상의 평화를 위해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학업이나 생업을 가로막는 법적,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 구조를 바꾸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시급하고 절실하다.

지난해 유네스코학교인 전북 완산여고 학생들이 학교 자율동아리 활동 한마당 행사에서 평화와 인권 퀴즈에 참여하고 있다.
관계 속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평화 말하는 유네스코학교
평화를 관계 속에서,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가운데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유네스코학교’다. 유네스코의 평화 이념을 학교에서 구현하기 위해 1953년에 만들어진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에는 2020년 현재 전 세계 약 1만 1,800개 학교, 국내 600여 개 학교가 회원교로 활동하고 있다. 유네스코학교 학생들은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 70주년이 되는 올해도 교과수업, 동아리 활동 등에서 문화유산, 인권, 바다, 기후변화, 지속가능발전, 성평등, 생물다양성 등 각자 좋아하는 주제를 골라 배우며 그것들과 평화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일상의 평화를 위해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 종 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유네스코학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