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52020.07

6·15 주역과 2030 청년의 대화

화해협력 시대 연 2000년 6·15,
2020년의 한반도에 말하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6월 11일 6·15 공동선언의 주역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2030 세대 청년자문위원의 특별한 만남이 진행됐다. 민주평통 주최로 열린 ‘6·15 주역과 2030 청년의 대화’에서 임 전 장관은 2030 세대에게 미래 통일시대의 주역으로서 열심히 평화통일을 탐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날 전해진 6·15의 기억이 청년들이 다시 시작할 평화통일의 여정을 비추는 등대가 되길 기대한다.

“대통령께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평양에 오셨습니다. 전방에서는 군인이 총부리를 맞대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날아갈 판인데, 대통령께서는 인민군 명예의장대의 사열도 받으셨습니다. 이건 보통 모순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20년 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김일성 국방위원장이 건넨 첫 인사였다. 임 전 장관은 “이 말이야말로 당시의 만남이 얼마나 큰 결단이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며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우리 민족이 지난 반세기 동안 겪어온 두 가지 모순, 즉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이라는 모순과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한반도는 냉전을 지속하고 있다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심장부를 찾아간 모험이었다”고 회고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분단 후 한반도에 팽배했던 불신과 대결을 종식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연 전환점이었다. 당시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한 총사령관이었던 임동원 전 장관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햇볕정책,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금강산 관광 사업이라는 세 가지 요인을 통한 남북 간 신뢰 조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긴장된 현 시점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시사했다.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 밝혀준 6·15 공동선언
20년이 흐른 지금 그는 6·15 공동선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임 전 장관은 ‘우리 민족이 나아갈 평화통일의 길을 밝혀 주었다는 것’을 6·15 공동선언의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통일문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통일문제에 공통인식을 갖지 않는 한 남북관계 개선이나 한반도 평화 정착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임 전 장관은 “정상 간 논의에서 가장 큰 고비는 남과 북이 생각하는 통일방안의 차이”였다고 회상했다. 장시간 논의 끝에 두 정상은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 자주적으로 이룩해야 한다는 것과, 통일의 과정은 점진적, 단계적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구현하기 위해 ‘남북연합’을 구성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두 번째 평가는 “6·15 공동선언은 즉각 실천으로 이어진 ‘실천 선언’이자,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연 선언”이라는 것이었다. 6·15 공동선언 후 5가지 중점사항(철도·도로 연결, 이산가족 상봉, 사회·문화·체육·보건 분야 교류협력,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면서 시민참여의 공간이 넓어졌고, 상호 신뢰가 생기며 민족공동체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미국이 대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임 전장관은 “한반도 냉전 구조는 남북 불신, 북·미 적대관계, 군비경쟁, 군사정전체제 등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북·미가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6·15 공동선언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관계를 개선하도록 이끌었고, 이는 이후 북·미관계가 급진전하는 계기가 됐다.

마지막 평가는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주도한다는 민족자존을 드높인 것”이었다. 임 전 장관은 “남과 북이 민족문제를 주도하면 국제세력도 지지와 협조를 할 수 밖에 없다”며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노력을 경주하느냐에 따라 한반도는 전쟁의 먹구름에 휩싸일 수도, 평화의 햇살 속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6·15 공동선언이 보여주었다”고 강조했다.


전진과 후퇴 반복해 온 남북관계
인내심, 일관성, 신속성 유지하며 기회 잡아야
우여곡절 끝에 민족의 뜻을 하나로 모아 탄생한 6·15공동선언은 이후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2018년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 남북공동선언으로 계승·발전됐다. 중단되는 듯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다시 시작됐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특사 교환과 소통 채널 복원,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이루어졌다.

지난해 2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최근까지 다시 경색과 긴장을 반복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해 임 전 장관은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영향을 받으며 전진과 후퇴, 성취와 좌절을 반복해 왔다”며 “결코 실망하지 말고 인내심, 일관성, 신속성을 유지하면서 기회를 포착하거나, 기회를 만들어서 다시 전진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설명했다.

이와 함께 “지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3대 핵심과제(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함께 이루어나간다면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와 번영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오랜 기간이 걸리겠지만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과정이며,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앞으로 전진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청년이 묻고, 6·15가 답하다

통일은 만들어 가는 것...
우리의 선택과 역할이 중요

임동원 전 장관의 연설 후 2030 세대 청년들과의 문답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이제 막 20살이 된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6·15와 함께 자란 다양한 연령의 청년자문위원들이 참석했다. 질의응답에는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도 함께 참여하여 청년들의 물음에 답했다.

김영재(직장인, 서대문구)ㅣ 6·15 남북공동선언과 4·27 판문점선언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김영재 -

임동원ㅣ 4·27 판문점선언은 과거의 합의를 확인하면서 남북관계 전반에서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했어요. 특징적인 것은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9·19 군사합의가 채택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군비감축, 비핵화, 남북 주도의 4자 평화회담 개최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방안들을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 임동원 -

이강백(직장인, 성동구)ㅣ 북한의 세 지도자를 모두 만나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 이강백 -

임동원ㅣ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오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임무를 받고 북에 갔습니다. 제가 만난 김정일 위원장은 두뇌가 명석하고 판단력이 빨랐습니다. 또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아주 논리적이진 않지만 주제의 핵심을 잃지 않고 반드시 결론을 내는, 대화하기 좋은 상대였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1992년 만났는데, 남북경제협력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북한의 경제 발전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고, 남측 기업인들이 하는 여러 제안을 환영하는 듯 했습니다. 2018년 만난 김정은 위원장도 경제 발전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지원(성신여대 학생)ㅣ 6·15처럼 민족공조와 국제공조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 김지원 -

임동원ㅣ 한반도문제는 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입니다. 한반도 냉전구조를 만든 4대 핵심 요소(남북불신, 북·미 적대관계, 군비경쟁, 정전체제)는 어느 하나를 분리해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포괄적으로,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남북 간 추진하는 것이 있으면 그 내용을 한반도문제에 깊이 개입된 미국에게도 알려주고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6·15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한 것입니다.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황지은(청년자문위원 기자)ㅣ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임동원ㅣ 우리는 미국과 안보동맹을 유지하는 한편, 중국과는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우리 경제 교역량의 4분의 1 정도는 중국과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일부 강경론자는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지만, 선택이 아니라 양자관계 속에서 우리의 입장을 잘 조율하면서 국가의 이익을 도모해야 합니다.

최진유(서울시립대 학생)ㅣ 과거와 달리 지금은 통일에 대한 인식이나 조건이 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통일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까?
임동원ㅣ 각자 통일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통일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입니다. 통일은 우리가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우리 노력에 따라 빨리 될 수도 있고 늦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완전한 법적·정치적 통일만 통일이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적인 통일도 통일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일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나빠지고,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고,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남북이 교류하고 돕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김지윤(숙명여대 학생)ㅣ 연일 북한이 대남 비난을 하는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 김지윤 -

정세현ㅣ 북한의 대남 비난과 비방은 처음이 아닙니다. 북한이 최근 보이는 언동 하나를 가지고 “북한과 대화할 수없다”, “저런 사람들을 뭘 보고 대화하느냐”는 식의 분단이데올로기에 휩쓸리지 마십시오.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포기하면 막상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명감으로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키우십시오. 현미경이 아닌 망원경적 시야로 남북관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 정세현 -

이기승(직장인, 중랑구)ㅣ 통일문제와 남북관계에서 청년의역할은 무엇입니까?
- 이기승 -

임동원ㅣ 먼저 청년 세대가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는 데 격려의 말을 전합니다. 우리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단계 화해협력, 2단계 남북연합, 3단계 완전통일이라는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1단계인 화해협력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이 2단계인 남북연합 단계를 만드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주인으로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탐구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태도로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를 연구해서 남북연합 단계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청년의 다짐
“2000년생으로 6·15선언과 나이가 같아요. 남북이 일군 역사를 배울 수 있었어요” - 김지원 대학생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음으로 통일의 마음가짐을 길러가겠습니다” - 김지윤 대학생
“젊은 세대가 통일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이창민 SNS작가
6·15 주역의 바람
“현미경이 아닌 망원경적 시야로 남북관계를 봐야 합니다” - 정세현
“여러분이 남북연합 단계의 주인공이길 바랍니다” - 임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