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흔들리는 남북합의와 6월의 한반도
불만과 불안 녹아든 대남비난,
남북합의 원칙 강조해야
6월 4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담화를 시작으로 북한의 대남 비난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단순한 비난에 그치지 않고, 대남관계를 대적관계로 전환한다며 대남전략 변환을 예고하였으며,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과도 같았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기에 이른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 총참모부는 금강산과 개성지구에 군부대 전개, DMZ 내 초소 복귀, 전방 경계근무 1호전투근무체계로의 전환, 대남삐라 살포 등을 공언하며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예고했다.
6월 4일 김여정 부부장이 대북전단을 문제 삼은 이후 우리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에도 북한의 비난 성명과 행동이 빠르게 이어진 것으로 보건대, 이번 북한의 행동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렇게 거칠게 나오는 것일까? 북한이 문제 삼는 대북전단이 남북관계 경색의 본질일까?
북한을 조급하게 만드는 국내외 요인
일부 단체들이 대북전단을 살포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최근 보낸 전단의 내용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겨냥한 선정적·자극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북한체제 특성상 발끈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대북전단 내용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겨냥한 것 자체도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또한 남북관계 현실을 고려할 때, 전단 살포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전단 살포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전단 살포 문제에 대한 북한 측의 인식을 고려할 때, 당분간 이 문제 해결 없이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전단 살포 문제는 남북관계 개선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 되었다. 전단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부분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누적된 북한의 불만이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부터 한국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에 불만을 제기하고 한국 역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임을 강조해왔다. 6월 들어서도 북한은 한국이 대북제재와 한미동맹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북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계속해오고 있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과 F-35 등 첨단무기 수입을 두고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실제 올해 3월 3일 김여정 부부장은 담화를 발표하여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을 직접 제기하기도 했다. 북한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성과로 한국의 집권세력이 총선 과반승리를 얻었으며 G7 확대정상회담에 초대도 받았으면서, 자신들은 여전히 빈손인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올 11월에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까지는 이런 구조가 바뀔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을 더 조급하게 만드는 것은 북한 내부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2016년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심화되면서 북한 경제는 2017년 –3.5%, 2018년 –4.1% 성장을 보였다. 북한의 대중국 수출은 2016년 연간 최대 26억 달러 수준에 달했으나, 2017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19년에는 2억 달러 남짓한 정도로 2016년 대비 1/10 수준까지 위축됐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수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나, 같은 기간 33억 달러에서 26억 달러로 약 1/5정도 감소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6월 16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사진은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왼쪽)와 부서진 개성공단지원센터(오른쪽) ⓒ연합
자신들의 보건의료체계가 허약하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북한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매우 빠르게 국경통제를 실시했다. 북한은 1월 22일부터 모든 외국 관광객에 대해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통보했으며, 1월 31일부터는 중국을 오가는 항공기와 열차의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문제는 북·중 국경 차단이 가져오는 경제적 파급효과이다. 중국 해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0년 1~2월 북·중무역은 수출은 71%, 수입은 23% 감소했다. 이러한 경향은 3월에 더 커져서 대중국 수출은 96%, 수입은 90% 하락했다. 이미 대북제재로 부정적 경제효과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심각한 무역감소의 충격이 발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6월 7일 개최된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회의의 의제가 의미심장하다. 당시 정치국회의의 의제 가운데 하나는 ‘평양시민들의 생활보장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평양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지방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추정이 맞다면 2019년 말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제재 정면돌파전’ 수행을 위한 북한 경제의 내구력에 장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수년간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3대 핵심사업이었던 삼지연, 원산-갈마, 양덕온천 등 건설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 이 사업들은 모두 관광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관광사업 추진에 커다란 장애가 될 수밖에 없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북한은 코로나19 통제에 큰 자신감을 보이고 있으며, 실제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이 사안이 해결되기 전까지 관광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어려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의 형편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나아질 전망도 불투명한 것이다. 이처럼 부정적 장기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는 다소 도발적일지라도 변화를 모색하려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북한 내부를 고려했을 때, 현재와 같은 상황을 주민들에게 이해시킬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이후 한반도 상황의 극적인 변화를 자신이 주도하고 있다고 선전해왔다. 자신의 과감한 전략적 결단에 의해 한반도 정세를 변화시켰으며,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2년이 지났음에도 대북제재는 해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단기적으로 문제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현재 상황을 초래한 이유를 한국의 소극적이고 외세의존적인 태도와 미국의 배신 등으로 돌릴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남북합의 성과 제거하는 북한
여하튼 북한은 여러 가지 이유로 대남전략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북한은 ‘대가 없이는 치적 선전물을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공언하고, 남북합의의 성과로 인정받았던 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4·27 판문점선언 성과의 상징물 제거 작업이었다면, 이제는 공언한 대로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아가 북한이 남북관계를 넘어 북·미관계에서의 조치를 취할 것인지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6월 4일 김여정 부부장 담화는 『로동신문』 2면에 배치되었는데, 이 담화와 같은 지면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대변인 담화가 실렸다는 점은 대남, 대미 전략의 동시 변화를 예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코로나19 여파로 2019년 대비 2020년 북·중 무역이 급감했다. 사진은 지난해 북한 신의주에서 중국 단둥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관광버스 ⓒ연합
하지만 북한이 지금 ICBM 발사나 핵실험 등으로 미국을 자극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과거 북한은 협상이 교착에 빠지면 새로운 문제를 일으켜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다음, 상대의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을 취해오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다음 선택이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난폭하게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어서 파국을 초래할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북한은 아직까지 모든 행동을 예고하고, 그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하노이 이후 북한이 북·중, 북·러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에 대응하려는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이 심화되면서 이른바 신냉전질서가 형성되는 국면에서 북한이 중국 편에 설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신냉전질서에 편승하여 대미전략을 구사한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미·중갈등이 심화될수록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북제재는 중국도 동의한 것이며, 미·중갈등 국면에서 중국이 자국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북한을 도와줄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평화적·제도적 해결로 관계의 지속성 이어가야
어쨌든 현재 국면을 이끌고 있는 것은 김여정 부부장이다. 이른바 백두혈통이자 김정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은 가장 강력한 스피커로서, ‘김여정의 메시지는 김정은의 발언’이라 할 정도의 무게를 가진 인물이다. 김여정 부부장이 직접 나서서 대남 비난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통일전선부를 포함한 북한의 하부단위가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북한이 이례적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하여 한국 국민들의 여론을 돌아서게 만든 것도 이러한 구조에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어쨌든 현재 국면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김정은 위원장 본인이다. 다행히 김정은 위원장이 6월 23일 당중앙 군사위원회의 예비회담에서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북한이 계획적으로 현재 국면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이라면, 한동안 남북관계의 냉각기는 불가피할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한국 정부의 빠른 대응과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마치 계획한 것처럼 비난을 쏟아내면서 상황을 빠르게 악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대응에 대해 북한이 즉각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국면에서는 한편으로 예상되는 도발에 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남북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준의 원론적·원칙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든 국가든 관계의 기본은 합의의 준수이다. 물론 합의의 이행에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문제를 얼마나 평화적·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관계의 성숙성과 지속가능성을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최 용 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