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사랑채
통일 문제를 국민투표로
결정한다면?
통일이 모두에게 당연한 시기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통일을 찬성하시나요?”라고 묻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던 시기. 그러나 남북이 대화와 단절을 반복하는 동안 통일이 당연하지 않은 세대가 등 장했다. 북한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고, 북한과 과거 혹은 미래에 한 국가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으며, 일관성 없는 남북관계에 고개를 가로젓는 세대. 통일이 당연했던 세대들은 ‘왜 젊은 세대는 통일에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지만, 이 질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들에게 통일이 당연한 것만큼 새로운 세대에게는 통일이 당연하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는 통일이 자신이 속한 국가의 형태를 결정하는 아주 거대한 규모의 정치적 결정이기 때문이다.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르게 살아온 두 국가의 정치적 통합은 우리의 일상에도 상당 부분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문제는 자신이 어떤 국가에 살게 될지, 어떤 정치체제를 겪게 될지, 어떤 사람과 이웃으로 살게 될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포함한다. 물론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 안보와 평화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즉, 통일은 우리가 향해야 하는 지향점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미래와 닿아 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정치적 선택’이다. 아무도 겪어 보지 않은 미래이기에 그곳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지는 함께 결정해야 한다.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통일,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통일을 전제로 하는 교육과 대화의 한계
그러나 시민들이 이를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와 다양한 의견을 담은 도구는 부족하다. 기존의 북한 및 통일에 관한 책은 학술서적이어서 접근이 어렵거나, 한쪽의 주장이 강하게 담긴 책이 대부분이다. 힐데와소피가 기획하고 출간한 『나는 통일을 OO합니다』는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통일교육 현장과 통일에 관한 대화모임을 운영하면서 나왔다.
통일교육에 민주시민교육과 평화교육의 관점이 포함되는 새로운 변화도 있었지만, 통일교육은 기본적으로 ‘통일’이라는 ‘미래’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힐데와소피는 통일교육이 이러한 전제를 넘어서 ‘통일의 형태를 포함한 남북관계의 형태에 자신의 입장을 갖는 것이 시민의 권리이자 역할임을 알려주고, 시민 개개인이 미래의 남북관계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기획한 것이 바로 『나는 통일을 OO합니다』이다.
공감과 이해가 만드는 올바른 결정
2016년 영국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투표에 참여한 72.2%의 국민들 중 51.9%가 유럽연합을 떠나는 것에 찬성하면서 영국은 아주 근소한 차이로 브렉시트를 승인했다. 그런데 영국의 온라인 설문조사기관인 ‘YouGov’에서 다년간 추적해온 여론조사를 보면 2017년 중반 이후 ‘브렉시트는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만일 지금 다시 국민투표를 한다면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지 않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들이 국민투표로 결정한 사안을 후회한다면 다가올 미래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편향된 정보가 아닌 다양한 입장과 배경지식을 이해하고,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
“통일을 찬/반, 흑백논리로만 생각하던
선택지를 더 넓혀야 한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같은 단어를 쓰지만 모두 다른 상상을 한다. 통일된 한반도의 체제는 무엇일지, 현재 북한 정부나 관료들을 어느 정도 수용할지에 따라 바라는 국가의 모습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다양한 형태의 남북관계를 상상한다. 그래서 『나는 통일을 OO합니다』는 통일이라는 단어를 ‘미래 남북관계 형태’라는 명칭으로 대체하고 선택지를 확장했다. 통일의 형태를 흡수통일, 연방제, 합의통일 세 가지로 나누고, 통일이 아닌 형태를 현상유지, 연합제, 평화체제 세 가지로 나눈다.
독자는 질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하나씩 선택하다보면 여섯 가지 형태 중 한 가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 후 일곱 가지 근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선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입장을 다루다보면 나와 다른 입장의 사람과도 동일한 의견이 있다는 것과, 근본적으로 입장이 나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대화가 가능해진다.
힐데와소피는 시민들이 서로 공감하고 차이를 이해하고 영향을 주고받을 때 중요한 결정을 올바르게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비단 통일 문제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이번 기획을 시작으로 우리는 내가 사는 곳과 관련하여 시민적 합의가 필요한 다양한 정치적·평화적 문제를 다루는, 민주사회를 위한 책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오 주 연
힐데와소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