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52020.07

소이산에서 바라본 DMZ와 북녘땅

우리고장 평화 ROAD

‘38선과 휴전선에 갇힌 섬’
강원도 철원 평화여행

해마다 6월이면 가장 많이 주목받는 곳이 철원이다. 철원은 한반도 중심부에서 평야지대와 산악지대가 만나는 요충지에 위치해 외적의 침입이나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철원은 삼국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가 100년을 주기로 번갈아가며 차지했던 곳이고,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북진로였으며, 병자호란 때는 청군의 남진로였다. 6·25전쟁 때는 철원에 주둔하던 인민군들이 43번 국도를 따라 남침해 포천과 의정부를 거쳐 3일 만에 서울로 진격했다. 철원은 이미 개전 초기에 집중포화를 맞았고, 설상가상으로 1·4후퇴 때 미군들이 퇴각하면서 마을에 불을 질러 모두 없애버리기도 했다.

도시는 사라졌고 그곳에 살던 주민들의 80%는 북으로 올라갔다. 남으로도 북으로도 가지 못하고 1년간 숨어지내던 주민들은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가며 부역자를 색출하고 처단해 이데올로기 피해가 극심했다. 수복지구 철원의 어르신들은 어쩔 수 없이 인민군에 나가야 했지만 평생을 숨기고 말 못하며 살다가 세상을 떴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의 아픈 기억에 몸서리치는 주민들이 많다. 백마고지전투와 저격능선전투는 6·25전쟁 당시 철원지역 최대의 격전지였고, 남에는 불리하고 북에는 유리한 지형 때문에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라고 불렸다. 작년 가을부터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올봄에 번진 코로나19로 인해 민통선 안 출입이 금지되고 있는 관계로 여기서는 민통선 밖 관광지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Course. 1 철원의 과거·현재·미래가 보이는 소이산
소이산(所以山)은 노동당사 정면에 위치한 해발 362m의 야트막한 산이다. 철원지역 기본표고가 200m 이니 실제로는 160m 정도의 동산이기에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족히 오른다. 낮은 산임에도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저 멀리 북쪽으로 40km 정도까지 시야에 들어오고 좌우로도 30km가 족히 한눈에 보인다. 54만년 전 신생대 화산폭발로 형성된 용암대지인 철원평야 한가운데 위치한 스텝토(Steptoe)1)이고, 고려시대부터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라 야트막하지만 전방 시계가 아주 좋다. 그래서 6·25전쟁 때 백마고지와 함께 중요한 고지전 장소였고, 최근까지 군부대가 주둔했던 군사적 요새이다.

소이산 전망대에 올라서면 1,100여년 전 후삼국시대 때 궁예왕이 풍천원 벌판에 세웠던 태봉국 도성 터가 정면 DMZ에 보인다. 그리고 100년 전 일제강점기 때 번성했던 철원읍 시가지의 흔적도 볼 수 있다. 1905년 건설된 경원선의 중심역인 철원역 5만 평 부지를 비롯해 철원제2금융조합, 얼음창고, 농산물검사소, 제사공장, 철원보통학교, 철원군청 등 근대문화유적이 남북으로 뻗은 길가에 연이어 늘어서 있다.

한편 서쪽 10시 방향에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약 1만 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백마고지가 선명하게 보이고, 12시 방향으로는 김일성고지(고암산)와 피의 능선, 오른쪽 1시 방향에 낙타고지가 보인다. 이 고지들은 6·25전쟁 때 치열한 고지전과 백병전이 치러졌던 현장이다. 소이산을 찾은 관광객들이 남북분단의 직접적인 현장에서 광활한 DMZ와 북녘 땅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한다. 특히 한겨울에 남과 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천연기념물 두루미를 보고 있노라면 분단의 아쉬움이 더한다.
1) 용암지대 위에 섬과 같이 돌출한 언덕이나 산
Course. 2 공산치하와 수복지구의 상징 노동당사
소이산에서 동쪽으로 500m 거리에 노동당사가 있다. 정확한 명칭은 노동당 철원군지부 건물로써 해방 직후 철원이 공산치하에 있었던 수복지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46년 성금이란 구실로 1개리당 백미(白米) 200가마씩을 착취하여 건설된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은 철원을 위시하여 연천, 포천, 이동 등지를 관할하는 당시 북한의 최전방 중심 통치기관이었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건물 지붕이 부서졌고 지금은 외벽골조만이 앙상하다. 공산치하에서 많은 반공인사들이 끌려가 고문과 죽음을 당했다고 전한다.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앨범 <발해를 꿈꾸며> 뮤직 비디오를 노동당사 건물에서 촬영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현재는 분단의 상징물로써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각종 평화집회와 행사가 이 광장에서 열린다. 최근에는 주말에 철원의 농특산물을 생산자들이 직접 파는 ‘DMZ 마켓’이 열려 인기가 좋다. 노동당사와 소이산 사이 3만 평 정도 되는 부지에는 현재 ‘철원군 역사공원’이 조성 중에 있는데, 향후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한층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노동당사
Course. 3 철원의 관광일번지 고석정(孤石亭)
철원군 관광은 크게 세 가지 테마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분단의 현장을 둘러보는 DMZ평화관광으로 철원군에서 정한 코스를 정해진 시간에 인솔자와 함께 하는 형식이다. 두 번째는 한탄강 일대 직탕·송대소·고석정·순담 등 주상절리 기암절벽을 둘러보는 명승지 관광으로 주변 둘레길을 걷거나 여름에는 강에 직접 내려가 래프팅을, 겨울에는 얼음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세 번째 는 겨울철새인 두루미 탐조여행이다. 이 세 가지 관광 모두 고석정에서 시작된다.

고석정은 원래 신라시대 진평왕이 지은 정자라고 하나 지금은 그 일대 관광지 전체를 뜻하는 지명이 되었다. 한탄강은 용암대지 위에 새로 물길이 생기면서 형성된 강으로, 철원평야보다 20~30m 아래에 형성되어 잘 보이지 않고 강 양 옆이 기암절벽 주상절리로 형성되어 있다. 고석정은 강 한가운데 우뚝 솟은 20m 화강암 바위 위에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자생하고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세종대왕이 인근 철원평야에 강무행차를 왔다가 고석정에서 자주 연회를 베풀었다고 전해지고, 명종 때 활약했던 의적 임꺽정이 관군에 쫓겨 고석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화살을 피해 강물에 뛰어들어 물고기 꺽지로 변신했다는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

승일교
Course. 4 남과 북이 반반 놓은 다리 승일교
승일교(承日橋)는 노동당사와 함께 철원의 대표적인 분단과 전쟁의 상징물이다. 승일교를 유심히 보면 다리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측과 우측의 모양이 확연히 다르다. 이는 다리를 놓은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승일교는 1948년 공산정권이 남침을 위해 공사를 시작했으나 6·25전쟁이 발발해 완성하지 못한 채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2년 여름 미군 공병대가 공사를 진행해 완성했다. 철원사람들은 이러한 사연, 즉 남과 북이 반반 놓았다고 해서 이승만 대통령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승일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6·25전쟁 당시 북진하던 중 행방불명된 박승일(朴昇日) 대령을 기리기 위해 정부에서 승일교(昇日橋)라고 공식 명명했다. 한자는 다르지만 한글로는 같은 승일교였다. 이 또한 수복지구 철원의 가슴 아픈 현대사를 말해주고 있다.

한탄강
+ Information
소이산 :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노동당사 : 강원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265 *소이산과 노동당사는 백마고지역에서 3~4㎞, 차량으로 약 3~5분 소요
고석정 : 강원 철원군 동송읍 태봉로 1825
승일교 : 강원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 산 61-1
김 영 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진 중 섭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