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평화의 돌파구, 어떻게 열까
대북정책 자율성 높이고,
3차 북·미 정상회담도 필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지속해서 우리 정부를 비난하며 남북 접촉을 거부해왔고, 그 결과 남북관계는 전면적인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북핵문제에 있어서도 작년 10월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후 북한은 미국의 협상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6월 초 대북전단 살포를 맹렬히 비난한 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가차없이 폭파했다. 비록 김정은 위원장이 추가 도발은 보류했지만 북한은 우리 정부와 담을 쌓고,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포기한다면 협상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단절한 이유를 분석한 뒤, 이를 정상화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하며 호혜적인 남북 경협을 개척해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북한의 불만이 표출된 이유
북한이 6월 초 남북관계 단절을 무릅쓰고 도발을 감행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것이다. 2018년 초부터 김정은 위원장은 대외정책 방향을 남북 화해와 북·미협상으로 전환했다. 그 후 2년 반 동안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핵과 중장거리미사일 시험을 자제하였으며, 미국인 인질과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등 나름의 성의를 보여 왔다. 그러나 그에 비해 얻은 것은 없이 대북제재는 더 강화되었고,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폐쇄로 경제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로부터 원망을 듣게 되는 상황이 오자 그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린 것이다.
사실 한국이 남북 간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은 UN등 국제제재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이 우리 정부를 원망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익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려면, 북한 당국이 우리에게 가진 불만을 파악해 대처가 가능한 부분은 해소하고, 불가능한 부분은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북한의 불만을 먼저 살펴본다.
첫째, 김정은 위원장은 재작년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에 따라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면 제재 완화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노이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새로운 요구를 내놓으며 망신을 당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가 당연히 미국을 비난해야 하는데, 계속 한미공조를 우선시하니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 입장에서 한국이 공정하게 중재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미국 편을 들고 있다고 생각해 손을 떼라는 것이다.
둘째, 북한은 남북 정상이 다양한 경협을 약속했는데, 그동안 한국 정부가 이를 위해 조사를 벌이고 각종 행사와 홍보를 했지만 자신들에게 실속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유엔 안보리 제재 사항도 아닌 것까지 한국이 실천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니 한국 정부와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과 합의해도 그 이행은 미국이 좌지우지하니 한국을 따돌리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셋째, 한미연합훈련이 계속되고 F-35 등 첨단무기가 도입되는 상황에서 군사력이 한국에 뒤지는 북한은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넷째, 북·미 정상이 신뢰 구축 조치로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했는데 미국이 성의를 보이지 않았고, 그러자 한국 정부가 추진한 종전선언 역시 결국 흐지부지됐다. 다섯째, 중국은 북한의 체면을 고려해 80만 톤의 식량을 비공식적으로 제공했는데, 동포인 한국은 5만 톤의 쌀을 지원하겠다고 공표했다. 여섯째, 한국이 용기를 내 북한 개별 관광 사업 추진을 발표했지만,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일곱째, 2년 전에는 북·미 간 소통로가 없어 한국에 중재나 의사전달 역할을 맡겼지만 북·미 정상 간에 서신이 오가면서 한국 정부를 거칠 이유가 사라졌다.
여덟째, 남북 정상이 상호 비방 중단을 약속했는데도 한국 당국이 김정은 위원장을 모욕하는 전단 살포를 막지 못했다. 아홉째, 직접적으로 미국을 비난하면 자칫 판이 깨질 것을 우려한 북한이 미국에 대한 불만을 한국에 퍼붓는 측면도 있다.
지난 7월 8일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8차 한미 외교차관 전략회의에서
거리두기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
간극 커진 미·중관계와 북·미관계
한반도 주변 환경인 미·중관계와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남북관계도 탄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주변 환경을 살펴본 뒤 대북 전략을 제안한다.
먼저 미·중관계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 국민과 공화당·민주당 모두가 지지하는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른바 ‘신냉전’이 발발했다고 평가되는 상황이다. 트럼프가 중국을 계속 압박하는 상황에서 미·중관계가 파국을 맞으면 트럼프의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미 증시도 폭락할 것이다. 중국이 대두와 돼지고기, 옥수수 매입을 줄이면 부동층인 팜벨트에서 트럼프가 승리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적어도 9월 중순 이전에는 어느 정도 갈등이 통제될 것이다.
한편 북·미 양측은 비건 대북특별대표의 방한 이후에도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양측 모두 11월로 예정된 미대선 이전에는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행사 수준을 넘는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진다면 정상회담 개최도 가능하다고 운을 떼고 있다. 문제는 서로가 필수라고 이야기하는 요구사항이 종전보다 더 커졌다는 데 있다. 그간 미국 내에 대북 불신이 더 커졌는데,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의회나 언론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정도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김여정 부부장의 발언을 통해 본 북한의 입장은 이전의 ‘비핵화 조치 대 제재해제’에서 ‘적대시 철회 대 북·미협상 재개’로 바뀌었다. 또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행동과 병행해 미국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 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미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간극이 더 커진 북·미의 입장차가 극복되고 접점이 확인돼야만 한다.
1) 미국 중서부의 농업 지대
평화를 위한 남북관계의 돌파구
앞서 북한이 우리에게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다양한 불만과 요구사항을 살펴봤다.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려면 이들 중 가능한 한 많은 사안을 해소해야 한다. 우리의 국익을 고려해 취사선택한 뒤, 수용이 불가능한 사안은 소통을 통해 상호 이해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미연합훈련의 경우,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위반하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우리의 안보 딜레마가 발생했으므로 그 필요성이 더 커졌으며,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이면 규모를 줄일 것이고 비핵화를 완성해 검증까지 받으면 중단할 수도 있다고 당당하게 설명해야 한다.
일단 시급한 사안부터 해결하는 것이 좋다. 북한의 지도자는 절대 권력자이므로 그의 체면을 손상시키면서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를 모욕하는 전단을 북한에 살포하는 것은 남북 평화를 파괴하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좋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라 남북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단 살포는 있어서는 안 된다. 군경과 당국자들이 전단 살포를 24시간 감시하고 방지하기는 불가능하므로, 국회가 빠른 시일 내에 「대북전단 살포통제법(가칭)」을 제정해 남북 평화 파괴행위를 불법화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유엔제재에 어긋나지 않는 인도주의 지원이나 환경 지원, 개별 관광 같은 부문에서 보다 과감하고 능동적으로 나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특히 의료기기처럼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인도주의적 물품은 과감히 전달하고, 만일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부가 당당하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경기도의 위험구역 설정 및 행위금지 명령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연합
8월 말로 다가오는 한미연합훈련은 코로나19 예방이라는 합리적인 명분을 들어 유예하고, 남북, 북·미 간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 대북 특사를 파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여정 부부장이 언급한 미 독립기념일 행사 DVD 전달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신임하는 고위 인사를 평양에 보내거나 김여정 부부장을 워싱턴에 초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북한이 주장하듯 우리가 남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이 미국과 제재관련 사안을 사전에 조율하려는 데 일부 원인이 있다면, 향후에는 우리가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대북정책은 우선 집행한 뒤 미국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끝으로 남북관계 정상화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정상 가동되려면 북핵문제 해결에 진전을 이루고 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미국에 시간이 우리 편인 것만은 아니며 제재는 징벌보다 나쁜 행동을 개선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또 지금은 제재를 유연하게 완화해주면서 단계적으로라도 북한의 비핵화를 얻어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설득해야 한다.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플러스 알파’를 거론했는데 ‘알파’를 북한 핵과 장거리미사일 개발 동결로 설정하고, 이에 대해 종전선언과 연락대표부 설치 및 제재의 일부 완화를 제공하는 것으로 북·미협상 타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영변 외에 위치한 기존 핵과 미사일은 일단 동결만 보장받고 2차 협상의 대상으로 넘김으로써 1차 협상 타결을 도모한다면 10월 이전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도 가능할 것이다.
홍 현 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