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62020.08

북한포커스

‘정면돌파’ 선언 7개월
가중되는 경제난으로 흔들리는 개혁조치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2019.12.28.~31)에서 ‘정면돌파전’을 선포한 지 만 7개월이 경과하고 있다. 전원회의 결정서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정면돌파를 선언한 대상은 경제제재였고, 핵심수단은 자력갱생이었다. 즉 제재로 인해 위기에 처한 경제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 내지는 완화하는 것이 북한당국이 선언한 정면돌파전의 핵심과제(기본전선)였다.

아울러 북·미 정상 간 센토사 합의(2018.6.12.)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공약 파기를 위협함과 동시에 ‘새로운 전략무기’, ‘충격적 실제행동’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제재 해제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의 선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행동 변화를 적극적으로 강제해 나가겠다는 의도도 표출했다.

그러나 정면돌파전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간고하고도 장구한 투쟁’)이며, 정면돌파전의 정치군사적 과제에서 외교전선을 가장 먼저 언급하는 등 당분간 ‘선을 넘는’ 전략적 도발은 자제할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둠과 동시에 중국·러시아의 경제적 지원과 그들과의 외교적 공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의 여파
문제는 정면돌파전 선언 이후 북한 당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변수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글로벌 팬데믹이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은 북한의 정면돌파전에 매우 심대한 장애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경제난 심화를 촉진시켰다. 북한 당국이 대북제재에 맞서 경제적으로 자력갱생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자원과 인력을 총동원하는 동시에, 외부적으로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수혈이 필요하다. 하지만 바이러스 확산 우려로 인해 내부 자원·인력 동원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었고, 북·중 국경폐쇄로 인해 밀무역은 물론 정상적인 교역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중국의 지원은 식량과 같은 인도주의적 지원에 국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식량난 완화에는 도움이되지만, 자력갱생의 근간인 산업 정상화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 대북제재하에서 유일한 외화유입 창구로 기대되었던 외국인 관광은 올해 들어 전면 중단된 이후 재개 여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원산갈마 등 외국인 관광 활성화를 전제로 진행되던 대형 건설사업은 잠정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 중국 정부의 어젠다에서 북한문제가 가지는 중요도를 크게 하락시켰다. 미국의 경우 대선 국면에서 한반도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트럼프 재선을 전제로 설계한 ‘정면돌파전’ 기조 자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중국 역시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홍콩 사태로 인해 외교보다는 내정에 치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들 사태로 미·중갈등이 격화됨에 따라 중국에게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가 더 상승했다는 추론도 존재하지만 중국은 아직 미·중분쟁에서 약자이기 때문에 미국에 대항해 ‘북한 카드’를 사용할 여력이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후자의 추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도발 등 북한의 대외 행보는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28일 북한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연합

조급함의 발로로 이어진 대남 행보
정면돌파의 기본수단인 자력갱생의 동력이 떨어지고, 정면돌파의 대상인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이 멀어졌으며, 정면돌파의 핵심 공조국인 중국마저 미국의 눈치를 보고 내정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선택은 ‘한국 때리기’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전후한 일련의 도발이 그것이다.

주지하듯이 애초 한국은 정면돌파전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대상이었다. 하지만 모든 수단이 막히자 북한은 한국 때리기를 통해 어수선한 민심을 다잡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관심을 유도하는 전략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켜 내부 민심을 안정시키고 주변국의 관여를 이끌어 내는 것은 북한이 전통적으로 써온 전략이다.

그러나 전략의 실행과정은 그간 북한이 보여준 고도의 치밀함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대북전단을 문제 삼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른바 ‘2인자’ 김여정이 실명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선을 넘는 발언을 쏟아낸 것이나, 남북 정상 간 신뢰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여 되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끊어버린 것이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려다 취소한 것이나, 무엇보다 미리 군사행동을 예고해놓고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라는 전례 없는 형식을 빌려 갑작스럽게 취소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본적으로 조급함의 발로라고 판단된다.

“정면돌파의 기본수단인 자력갱생의 동력이 떨어지고, 정면돌파의 대상인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이 멀어졌으며, 정면돌파의 핵심 공조국인 중국마저 미국의 눈치를 보고 내정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선택은 ‘한국 때리기’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전후한 일련의 도발이 그것이다.”


가중되는 경제난과 개혁후퇴
정면돌파전을 기본 경제전선으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개월간 북한의 경제난은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출은 사실상 ‘제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반면, 국내 산업가동을 위한 수입은 축소폭이 상대적으로 작아 외화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수입 중 생산재는 대부분 대북제재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어 외화가 있어도 수입이 원활하지 않은 실정이다. 이는 경제적 자력갱생의 동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행히 아직 식량난은 크게 악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최근 식량 생산량이 줄지 않았고, 중국, 러시아 등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비재의 시장물가 역시 크게 오르지 않고 있다. 휘발유의 경우, 시기별로 큰 폭의 등락이 있기는 하지만 연단위로 보면 과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는 대북 쿼터제재에도 불구하고 밀수 등의 방식으로 휘발유를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 역시 큰 변화가 없다. 기본적으로 국내 외화보유고가 줄어들면 내화 가치가 하락하는 환율상승이 일어나야 하지만, 아직 북한에서는 그러한 추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는 아직 북한의 외화보유액이 환율상승을 일으킬 정도로 떨어지지 않았거나, 무역이 대폭 감소함에 따라 외화 수요 자체가 감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의 제재가 지속되면 외화보유액은 머지않아 고갈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 연동하여 환율 불안정이 초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코로나19 여파로 북·중 간 국경 봉쇄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3월 양국의 공식 교역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4월 19일 북·중 접경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 세관 ⓒ연합

한편, 경제난은 개혁후퇴를 강제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 들어 일관되게 경제개혁을 추진해왔다. 한편으로는 국가투자에서 군수부문 투자 비중을 동결하거나 줄이고 민수부문 투자 비중을 늘리는 ‘자원배분 우선순위 개혁’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운영에서 계획 대비 시장의 비중을 높이는 ‘자원배분 메커니즘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온 것이다.

그런데 경제난, 특히 제재에 따른 재정난과 생산재 부족에 직면하여 북한 당국은 이 두 가지 개혁 추세를 모두 뒤집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당 중앙위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유지하면서도 과도기적으로 병진노선의 성격을 가미하는 ‘전술적 병진노선’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즉 김일성 시대의 ‘경제-국방 병진노선’이나 김정일 시대의 ‘선군경제노선’, 김정은 시대의 ‘경제-핵 병진노선’과 같은 장기적, 전략적, 의도적 병진노선이라기보다는 과도기적, 전술적, 결과론적 병진노선, 즉 경제난으로 국가의 투자규모가 줄어듦에 따라 국가투자에서 군수와 민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자연스럽게 재조정되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한 전술적 병진노선이 장기화되면서 결국 과거의 병진노선으로 회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처럼 기업운영에서 시장원리를 반영한 개혁 조치들이 후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개별 기업에 재정적, 운영적 자율권을 확대하는 조치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북한은 재정과 자재의 중앙집중화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 무역의 경우에도 김정은 시대 부여했던 기업 자율성을 다시 거둬들이고 있다. 이는 제재로 재정과 생산재가 부족해지자 국가적으로 필요한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이러한 반개혁 조치가 정면돌파전을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 보이지만, 경제난이 장기화될 경우 반개혁 조치가 정책기조로 굳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은 북한의 정면돌파전에 매우 심대한 장애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7월 20일 촬영된 북한 평양종합병원 건설현장 ⓒ연합/조선중앙통신

경제난으로 흔들리는 리더십
북한 당국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김정은 리더십이 취약해질 가능성이다. 물론 북한에서 경제난이 정치적 불안정 등 이른바 ‘급변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김정은 리더십이 취약해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다시는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자기 집권의 정당성으로 삼아왔다. 즉 혈통과 함께 경제적 성과를 권력 정당성의 기반으로 삼아온 것이다. 하지만 대북제재가 장기화되는 데다가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친 현 상황에서 더 이상 이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특히 권력의 핵심 지지층이 몰려 있는 평양에서조차 주민, 특히 엘리트 계층의 생활이 곤란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민심 이반, 리더십 취약화의 핵심 징후로 볼 수 있다. 최근 북한이 평양 주민의 생활 안정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임 수 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