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62020.08

진단

남북교류협력 법제,
공존과 평화, 통일 과정의 버팀목 돼야

분단 두 세대, 교류협력 한 세대
한반도는 올해로 분단 75년, 6·25전쟁 발발 70년, 정전체제 67년을 맞았다. 두 세대를 훌쩍 넘는 기간 동안 대립과 갈등의 상흔이 깊게 패었다. 물론 반목의 역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한은 분단 이래 오랫동안 반국가적 불법단체 또는 미수복 지역의 지위에 있었지만, 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7·7선언)」과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로지 겨루고 맞서는 관계에서 협력과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동반자로서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열어두기까지 4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그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1989년 대통령 특별명령 형식으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기본지침」이 마련된 데 이어 1990년에는 남북교류협력의 기본법 성격을 갖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남북교류협력법)」과 「남북협력기금법」이 제정되었다. 남북교류협력을 법제도의 차원에서 끌어안은 지 30년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남북교류협력 법제의 기본 틀이 크게 바뀌지 않은 사이 남북관계는 부침(浮沈)과 완급(緩急)을 거듭하면서 인적·물적교류의 폭과 깊이를 더해왔다. 남북교류협력 법제가 한 세대를 지나온 시점에서 관련 법제도의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에 맞춰 현행 「남북교류협력법」과 최근 정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같은 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함께 검토한다.

안보·규제 프레임의 극복
당연한 말이지만 남북교류협력 법제는 교류협력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고 그 절차를 정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안보 중심의 대북관과 정부의 규제 프레임이 짙게 깔려있다. 「남북교류협력법」은 “(남북 간)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제1조). 이에 비해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엄연히 목적과 적용 영역을 달리하는 법이라 하겠다.

헌법재판소는 같은 맥락에서 “평화적 통일정책의 수립, 추진을 위해서는 「남북교류협력법」 등의 시행으로 대처하고,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의 시행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1993. 7. 29. 선고 92헌바48 전원재판부 결정). 대법원 역시 「남북교류협력법」이 우선하여 적용되는 ‘다른 법률’에는 국가보안법도 포함된다며 “남북교류협력법의 목적 범위 안에 있다고 인정되는” 행위로서 같은 법이 적용되기 위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대법원 2012. 10. 25 선고 2010도6310 판결 등).

지난 5월 27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남북교류협력법 온라인 공청회가 열렸다. ⓒ연합
그럼에도 「남북교류협력법」은 국가보안법 중심의 법체제에서 예외적인 위치에 있다는, 제정 당시의 낡은 인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교류협력의 주체와 활동을 언제라도 반국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보는 것이다. 「남북교류협력법」에서 접촉은 「국가보안법」에서 회합·통신으로, 방문은 잠입·탈출로, 교역은 지원·금품 수수로 일탈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남북교류협력법」은 정부로 하여금 적극적인 촉진자의 역할보다 소극적인 규제자의 역할을 부여해왔다. 남북한 방문의 승인(제9조), 주민 접촉 시 사전 신고(제9조의2), 물품 등 반출·반입의 승인(제13조), 협력사업의 승인(제17조)과 조정명령(제18조), 수송장비 운행의 승인(제20조),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 취소하는 것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

물론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정부의 관리와 규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에 부합하려면, 규제의 합리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원칙적인 허용과 예외적인 금지’로 프레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현행법에 따르면 남북교류협력에 나선 주체는 접촉, 방문, 반출·입, 협력사업 추진이라는 개별행위마다 통일부 장관의 승인(또는 수리)을 받아야 하며 사후 보고를 해야 하는 등 일정한 제약에 놓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별 규제는 정부에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하여 민간의 교류협력을 위축시킬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모든 행위를 병렬적으로 관리하기보다 협력사업 검토 시 충분히 예상되는 접촉, 방문, 반출·입 등에 대하여 포괄적인 승인을 함으로써 번거롭거나 불필요한 절차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정부가 최근 개정 법률안을 통해 ‘접촉’의 정의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면서 접촉 신고 제도에 대해 “사업 추진 과정에서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보는 관점에서 ‘사전 신고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교류협력을 모색하는 행위인 접촉 단계에서부터 개입하여 민간에 자기검열을 강요하기보다, ‘사후 신고의 원칙’으로 전환하는 것이 교류협력을 촉진한다는 법취지에 더욱 부합하는 동시에 다양한 양태의 접촉 행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법제도가 아닐까 사료된다.

“교류협력 법제는 상대방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정권의 정책 기조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존과 평화, 나아가 통일로 가는 과정을 지지하는 버팀목이자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동력으로써 소임을 다해야 한다.”


교류협력 법제가 출범한 지 30년이 된 만큼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진은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에서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 북한으로 가는 소떼 ⓒ연합

민간교류협력의 자율성과 독립성 필요
교류협력의 법제도적 과제로 민간 영역의 자율성과 독립성 제고를 꼽을 수 있다. 지난 30년 간 교류협력의 주체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 단체, 개인으로 다양해졌고 협력사업 역시 단순한 인도지원 사업을 넘어 개발협력, 경협, 사회문화교류 등의 분야에서 성과를 냈다. 남북 간 왕래는 1989~2003년 15년 동안 5만 8,866명이던 것이 2008년 한 해에만 18만 6,443명으로 늘었고, 교역액은 2003년 7억 2,400만 달러(반입 2억 8,900만 달러, 반출 4억 3,500만 달러) 수준에서 2015년 27억 1,400만 달러(반입 14억 5,200만 달러, 반출 12억 6,200만 달러)로 급증했다. 대북 관광, 개성공단과 같은 대규모 사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의 교류협력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교류협력이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군사적 대립과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따라 진퇴의 기로에 놓이기 일쑤였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2010년 5·24 조치와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같은 ‘초법적 조치’는 그동안 쌓아올린 교류협력의 동력을 크게 위축시켰다. 이 시기 인도적 대북지원도 크게 줄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정부 주도의 정책은 민간교류 활성화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선관후민(先官後民)’의 정책 기조에 민간교류가 발목을 잡히면서 교류 재개의 적기를 놓치고 말았다는 탄식까지 나오고 있다.

남북교류협력 생태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도가 그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민간교류협력이 평화와 통일을 추동하는 동력이자 안전판으로서 지니는 독자적인 가치, 당국 간 협상에 포획되지 않는 독립변수로서 역할을 간과해온 측면이 있다. 지난 2017년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이전 정부에서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교류협력의 중단을 비판하면서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법치주의 강화와 함께 민간교류협력의 자율성 보장을 주문했다. 통일정책은 법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향후 법제화의 방향은 정부의 통제와 관여가 아니라 민간교류협력의 자율성과 지속성,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정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교류협력의 안정성, 지속성 보장과 자율성, 개방성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내세웠지만 과연 그와 같은 방향이 충실한 내용의 개정인지는 의문이다. 대북지원과 교류 협력분야에서 정부의 통제와 관여 최소화,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의 보장, 인도적 대북지원과 경협사업을 결합하는 개발협력사업 모델 지원, 손실보상 제도의 도입, 단기적 인도지원과 중장기 개발협력사업 방식의 통합 추진 등을 아우르는 실질적인 법제의 변화는 아직 미흡하다.

교류협력 법제는 공존과 공영, 통일로 가는 과정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사진은 북한 개성공단 입주 주방기기업체에서 북측 근로자들이 ‘통일냄비’를 생산하는 모습 ⓒ연합

지난 2018년 국회에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의안번호 2024268)이 제출되었는데 여기에는 일정한 경우 통일부 장관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교류협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안 제24조의2). 이 개정안은 ‘법치주의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교류협력 제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치중하였을 뿐 민간 영역의 자율성과 지속가능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남북교류협력의 제한·금지 조치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 제도를 구축’한다는 개정 이유와는 상반된 방향인 셈이다.

결국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인 규제를 예방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한 또는 금지의 사유 구체화 및 명확화, 사업 외적인 사유로 인한 제한의 최소화를 통한 교류협력의 예측가능성 제고, 협력사업 일반에 대한 손실보상 규정 마련, 민간 전문가와 단체 관계자들의 정책 심의·의결권 강화 등의 내용을 포함한 법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공존과 평화를 위한 법제 정비
남북관계는 단기적으로 교착 국면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공동의 이익과 가치를 모색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류협력 법제는 상대방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정권의 정책 기조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존과 평화, 나아가 통일로 가는 과정을 지지하는 버팀목이자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동력으로써 소임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류협력의 과정 자체에 주목하면서 법치주의와 자율성을 강화하고, 남북 간 다양한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기후변화와 팬데믹 등 글로벌 이슈까지 탄력적으로 규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남북교류협력 법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한 지 30년을 맞아 그 본연의 역할과 방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함 보 현 법률사무소 생명 대표변호사,
평화법제포럼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