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대립과 갈등의 75년,
진지한 화해로 새로운 평화를
한반도 분단의 중층성
해방 75년, 분단 75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광복 100년이 되는 그날에는 통일을 이루어 진정한 광복을 맞을 수 있을까?
돌아보면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수백만을 살육한 전쟁의 아픔과 상실을 딛고 세계의 중견국으로 성장한 것은 실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며 경제발전의 모델을 보여주었고, 정치민주화의 가능성을 열었으며, 교육과 음악, 예술, 스포츠 등 문화분야에서 세계적 한류를 창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동족상잔과 체제대결로 치열하게 싸웠던 북한과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 그리고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화해와 협력의 큰 진전을 이룩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안팎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평가가 무색하리만큼 난제가 산적해 있다. 나라 밖으로는 중국과 러시아, 일본, 미국 등 강대국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미국과 중국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하라며 한국 정부를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핵협상을 중단하고 ‘정면돌파’를 선언하며 거칠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을 향해 ‘비핵화는 개소리’라며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개성공단 안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나라 안으로는 진보-보수의 분열로 이념갈등이 증폭되고 있어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분단과 갈등이 중층적, 복합적으로 쌓여 있는 한반도에 과연 평화는 올 것인가?
평화유지 넘어 평화조성과 평화구축 단계로...
한반도는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난 75년 동안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않았지만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를 비교적 안정된 체제로 관리하고 있어서 평화유지(Peace-keeping)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분단관리에 성공적이라는 점에서 ‘분단평화’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평화는 힘으로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지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많고 깨지기도 쉽다. 따라서 평화를 더 안정되고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평화를 지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상대와의 관계를 회복하여 평화를 공고하게 만들어가는 평화조성(Peace-making)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평화협정 체결은 바로 평화조성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조치이다.
지난 6월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들의 유해가 봉환되고 있다. ⓒ연합
평화협정은 일반적으로 전쟁의 법적 종결 및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평화협정체결은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하고, 상호 적대적 관계를 초래했던 긴장 요인을 해소함으로써 항구적 평화정착을 실현함을 의미한다. 평화협정을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질적 이행, 종전선언 등을 포함하여 협정의 주체와 체결 방식, 기본내용, 이행 방법, 평화협정 관리기구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사실은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해도 그것이 평화를 곧바로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 차원에서 평화협정 체결이 이루어질 수 있으나, 사회 내의 구성원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시민사회는 분열될 수도 있다. 일례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을 보면,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평화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19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나 이듬해 유대인 우파 청년에 의해 암살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최근 30여 년 동안 세계적으로 50여 차례의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으나 협정이 제대로 이행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평화협정이 휴지 조각이 되지 않도록 이행을 담보하는 노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단순한 정치적, 외교적 약속이 아니라 삶의 여러 영역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 즉 평화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공고히 세워나가는 평화구축(Peace-building)의 단계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경제 협력과 문화교류를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신뢰 관계를 더 돈독하게 구축해야 한다.
남북의 진지한 화해와 이념갈등 해결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화해의 문제다. 남북 간에는 전쟁을 통해 남한 85만 명, 북한 123만 명 등 200만 명이 살육당한 깊은 상처와 악감정이 남아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2019년 7월 현재 북한 주민 29%가 남한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고, 남한 주민도 10%가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형성된 상처와 증오는 남북협력과 교류를 저해하는 심각한 장애물이다.
남과 북에 깊이 파인 상처를 치유하고 분단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진지하게 화해를 추진해야 한다. 화해는 과거의 부정적 경험인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은 사과로부터 시작해 추모-진실 확인-법적 과정과 사면, 배상 등을 거쳐 용서와 참여로 마무리된다.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 기나긴 과정이다.
기나긴 화해의 첫 시작은 남과 북이 지난 75년 동안 서로에게 끼친 피해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공감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일이다. 특히 한국전쟁에 대해 서로 사과의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남과 북의 국립현충원과 애국렬사릉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며, 존재 의미를 규정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나, 분단극복과 민족화해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사회 안에 구조화된 이념갈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진보-보수의 극단적 대치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 분단이 만들어낸 오늘날 한반도 남쪽의 실상이다. 반공을 이념화한 보수세력과 반독재 민주화를 신념화한 진보세력은 각자 논리와 정당성을 갖고 있어서 타협과 합의를 쉽게 만들어내기 어렵다. 두 세력의 관점 차이는 북한을 배제한 흡수통일과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통한 통일 추구라는 차이를 만들어내며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에 심각한 마찰과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 이 문제 역시 진보와 보수가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화해의 과정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광복 100년에는 기필코 통일과 평화의 민족적 과업을 완수해야 할 것이다.
사진은 지난 7월 27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발족 기자회견 ⓒ연합
한반도 통일실험과 평화의 미래
분단 75년을 지나는 현시점에 남과 북의 불균형은 여러 면에서 심각해졌다. 정치민주화의 수준도 다르고 문화적 차이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경제 불균형이 더욱 심각하다. 남북의 경제력 격차는 50배에 이르러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 GDP의 98%가 남쪽에서 생산되는 반면 북쪽에서는 2%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균형을 타개하고 미래의 통합한반도를 구상하려면 지금부터 한반도 통합 경제전략을 구사하여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평화경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통합 한반도 구상을 실행하려면 평화의 복합적 사유와 전략이 필요하다. 즉 평화유지와 평화조성, 평화구축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것이다. 평화가 실현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군사안보 쏠림 현상 때문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물리적 힘이 필요하지만, 군사적 균형을 유지하는 동안 지체하지 말고 관계개선을 위한 대화와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 나아가 경제협력과 여러 사회문화 및 인도주의교류를 추진하면서 호혜적 공간을 만들고 이렇게 형성된 평화의 공간을 활용하여 남북화해와 평화구축을 위한 기회의 창을 열어가야 한다.
이러한 어려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여 분단과 광복 100년에는 기필코 통일과 평화의 민족적 과업을 완수해야 할 것이다. 그 구체적 해법은 한반도형 통일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최적점을 찾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중층적으로 쌓인 분단과 대립을 풀기 위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척박한 상황이지만, 기발하고 창의력 넘치는 새로운 세대가 자라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준다.
코로나19로 한반도와 온 세계가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대응이 ‘방역 한국’으로 갈채를 받듯, 우리의 분단갈등과 통일실험이 한반도에서 세계로 발신하는 평화와 희망으로 전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남과 북에 깊이 파인 상처를 치유하고 분단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진지하게 화해를 추진해야 한다. 화해는 과거의 부정적 경험인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은 사과로부터 시작하여 추모-진실 확인-법적 과정과 사면, 배상 등을 거쳐 용서와 참여로 마무리된다.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 기나긴 과정이다.”
김 병 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