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92021.09

북한 포커스

인민 교양과 통제의 수단
북한의 음악 정치



최근 북한이 예술가들에게 공훈 칭호와 훈장을 수여했다.
북한 음악정치의 역사를 살펴보고, 최근의 행보를 진단한다.



  2012년 김정은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이후 우리에게 들려오는 북한 소식은 김정일 시대와는 성격이 달랐다. 젊음, 청년, 혁신 등의 단어는 젊은 지도자의 성향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모란봉악단의 등장은 외부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과시하듯 공개한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 영상이 북한에게는 혁신과 젊음이었을 것이나, 같은 언어를 쓰는 우리에게는 구태의연한 지도자 찬양과 1980년대식 촌스러움으로 다가왔다.

2021년 7월 2일 북한 국무위원회연주단이 삼지연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음악의 나라, 노래의 나라
  북한은 음악의 나라, 노래의 나라라고 불린다. 평양의 아침, 거리와 작업장, 학교 등 인민들의 삶의 공간 곳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체제 성립 초기부터 북한의 정치입안자들은 인민들을 사회주의 인민으로 교양하려 노력했고, 사람들의 생각을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콘텐츠가 노래임을 알고 있었다.

  20세기를 전후하여 새롭게 등장한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인 학교에서는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찬송가를 가르치는 한편 조선의 학생들을 계몽하기 위해 교육적인 가사를 담은 창가를 만들어 부르게 하였다. 서당과 향교에서는 배워보지 못한 새로운 노래를 사람들은 계속 흥얼거렸고 자연스럽게 노래가 담고 있는 사상을 흡수하였다. 동시에 음반에 담기거나 라디오를 통해 들리는 감성적이고 퇴폐적이며 향락적인 대중가요 역시 많은 사람들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항복 선언과 조선의 해방, 미소 군정기 이후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정전협정을 거치며 폐허가 된 북조선을 복구하는 과정에 죽거나 헤어진 가족을 생각하고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할 노래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인민들을 교양하며, 사회주의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노래 만들기 사업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이는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의 퇴폐성에 대한 경각심이었으며, 도덕적인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권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승리의 5월>(1947), <건설의 노래>(1953), <당의 기치따라>(1956), <복구건설의 노래>(1953), <우리는 천리마타고 달린다>(1958) 등 수많은 행진곡풍의 노래들이 창작, 보급되었으며, 지속적으로 부르주아적 성향과 활동을 비판하는 반부르주아 투쟁을 벌였다. 이러한 기조는 198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분단 초 남한을 압도했던 북한의 경제력은 1970년 대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그 후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했던 주체사상은 지도자의 위대성으로 교조화된 대신 인민들의 자발적인 혁신은 동력을 잃고 서서히 낙하하 였다.

인민을 교양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만들어진 북한 노래 ⓒ필자 제공                            

나라가 흥하면 노랫소리가 높기 마련이다
  북한에서 인민의 요구와 필요성, 그리고 당의 정책을 적당히 버무려 음악으로 보여주는 통치방식은 1980년대 김정일로부터 비롯되었다. 혁명가극, 불후의 고전적명작 등 수령의 역할을 찬양하는 콘텐츠들만 생산되면서 개인적 감성을 표현하는 노래에 대한 요구가 폭발할 무렵 북한의 수령은 마치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수장이 되어 새로운 밴드를 만들어냈다. 보천보전자악단과 왕재산경음악단은 넉넉해진 경제 상황과 인간의 사상적 자유에 대한 인민의 욕구가 만들어낸 북한식 대중음악 밴드였다. 이들은 그전에는 보급하지 않았던 인민들의 생활을 노래한 ‘생활가요’라 불리는 대중가요를 만들었다. 삼지연악단의 방남 공연 이후 남한 음악인들의 방북 공연 <봄이 온다>에서 가수 서현이 불렀던 <푸른 버드나무>도 보천보전자악단의 작품이다. 이때 만들어진 수많은 생활가요, 대중가요 중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담은 노래들도 많았다. 우리에게 알려진 노래로는 <휘파람>, <아직은 말못해>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악단의 음악은 철저하게 북한의 창작 시스템 속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개혁개방 등 국제사회의 고립화와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체제 안정을 노래할 뿐이었다.

북한은 음악의 나라, 노래의 나라라고 불린다.
평양의 아침, 거리와 작업장, 학교 등 인민들의
삶의 공간 곳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체제 성립 초기부터 북한의 정치입안자들은
인민들을 사회주의 인민으로 교양하려 노력했고,
사람들의 생각을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콘텐츠가
노래임을 알고 있었다.

2015년 5월 14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모란봉악단 공연이 열렸다. ⓒ연합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북한의 지도자는 피폐해진 사회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인민들을 독려해야 했다.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세력들을 비판하면서 인민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한 지도자의 결심은 선군정치로 나타났다. 국가의 기반시설을 보강하기 위해 군대가 나서서 힘든 일을 하도록 하였고, 김정일은 ‘지도자’에서 ‘장군님’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지도부의 이러한 노력만으로 국가와 당이 인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힘들던 시기, 김정일은 인민을 다독이기 위해 끊임없이 ‘현지지도’라는 명목으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민심을 다잡았다. 동시에 따뜻한 지도자의 품성과 그것에 감동하는 인민의 정서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인 노래를 만들어 보급하였다. 이것을 ‘음악정치’라 불렀다. 그는 “혁명적인 노래는 투쟁의 대오에 높이 울리는 진군가이며 시대의 행진곡이다”라고 하면서 선군 정치의 나팔수로 조선인민군협주단 합창단을 따로 독립 시켜 조선인민군공훈합창단이라 명하였다. 이들은 서곡 <조선은 말한다>, 1악장 <선군의 닻은 올랐다>, 2악장 <장군님의 전선길이여>, 제3악장 <승리의 력사로 영원하리라>, 제4악장 <장군님께 영광을>, 종곡 <빛나라 선군 장정의 길이여>로 이루어진 합창조곡 <선군장정의 길>을 힘차게 불렀다.

  지도자는 선군음악정치를 통해 ‘험난한 일들이 예상되나 군대와 함께 강성대국 건설’을 인민들에게 약속하였고, 충분히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민족임을 강조하면서 <강성부흥아리랑>을 퍼트렸다. 인민들은 맑은 목소리의 여성 가수들이 흥겹게 부르는 <강성부흥아리랑>을 따라 부르며 지도자를 따랐다.

북한은 음악을 인민 교양과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사진은 2016년 8월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청소년들의 대합창공연 <백두산과 청년강국>ⓒ연합   

음악에 ‘진심’인 북한 그러나 요원한 사회주의 지상낙원
  2012년 김정일에 이어 젊은 지도자 김정은 체제가 시작되었다. 김정은 집권 초기는 10여 년의 경제 회복 노력이 성과로 나타나던 시기였다. 평양의 거리가 전변되었으며, 인민들의 생활문화 향상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젊은 지도자는 젊음, 청년, 그리고 서구 사회에 대한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신감을 표출하기 위해 새로운 악단인 모란봉악단을 창립하였다. 『조선신보』는 이를 제2의 음악정치라 표현하였다. 또한 “당이 준 과업을 밤을 새워서라도 최상의 수준에서 완전무결하게 실천하는 결사 관철의 정신, 기성 형식과 틀에서 벗어나 혁신적 안목에서 끊임없이 새것을 만들어 내는 참신하고 진취적인 창조열풍, 서로 돕고 이끌며 실력전을 벌이는 집단주의적 경쟁열풍”으로 요약되는 모란봉악단의 창조기풍을 본받아 문화예술계에서 “명작폭포”를 만들어내고 좀 더 발전하는 사회를 만들어내자고 하였다.

  모란봉악단은 <단숨에> 우주강국으로 올라서자는 노래부터 전변하는 나라를 찬양하는 <조국찬가>까지 국가주의적인 노래들을 만들어 불렀다. 그러나 모란봉악단의 활발한 공연 소식과 함께 들려온 은하수관현악단의 해체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이어 창립된 청봉악단의 부상과 모란봉악단의 쇠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성사된 남북한 음악 공연과 이를 위해 삼지연악단을 확대·개편한 삼지연관현악단의 방남, 그리고 모란봉악단과 청봉악단, 삼지연악단의 연주자들이 이합집산한 것으로 보이는 국무위원회연주단까지. 요새 젊은 사람들의 말로 하자면 ‘음악에 진심’인 행보를 보인다. 그리고 이들 악단의 단원들에게 국가수훈을 안겨주면서 스타급 대우를 해주고 있다. 우리에게 K-POP 아이돌이 있다면 북한에는 공훈예술가가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음악정치를 정치적 구호로 내세우지 않았던 김일성 시대부터 음악, 특히 노래를 인민교양과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북한 음악의 ‘바이블’인 김정일의 『음악예술론』에는 음악은 인간학이고 조선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조선 사람의 생활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음악과 노래가 흘러넘친다고 했다.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는 북한이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며, 낙원에는 항상 음악이 흘러넘쳐야 하기 때문이다. 당과 수령은 인민들에게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안겨주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인민은 당과 수령의 지도를 따라 즐겁게 노래 부르며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만들어 간다는 논리이다. 또한 김정일은 한 나라, 한 민족의 예술의 높이는 그 나라, 그 민족의 정치와 경제, 사상과 도덕의 높이를 잴 수 있는 중요한 척도라고도 하였다. 이를 보면 김정일과 김정은에게 음악은 발전한 사회주의국가의 위상을 보여주며 북한의 문화적 자긍심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당과 지도자는 인민들을 교양하고 독려하기 위한 노래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으나 그 노래를 동력으로 하여 끌어낼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크지 않아 보인다. 외부인의 눈에 사회주의 지상낙원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기 때문이다.

배인교 경인교육대학교
한국공연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