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평화
평화를 품은 아트호텔
리 메이커(Re:maker)
동강 나 끊어지고 갈라진 역사를 증명하는 ‘통제의 선’이자 전쟁 및 분단의 한반도 70년을 상징하는 DMZ와 인접한 동해안 최북단 마을에 한국 최초의 접경지역 호텔이 들어섰다. 바로 이념의 장벽에 가로막힌 채 여전히 대치 중인 한반도의 현실과 화합·평화에 대한 바람을 버무린 아트호텔(ART HOTEL) ‘리 메이커 (Re:maker)’다.
호텔입구에 설치된 육효진 작가의 사운드 키네틱아트, 바람, 2021  
* 사진 필자 제공  
평화·생태·미래를 말하는 8개의 공간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에 자리 잡은 ‘리 메이커’는 영국 작가 뱅크시(Banksy)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세운 ‘벽에 가로막힌 호텔(Walled Off Hotel)’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접경지역 예술호텔이다. 뱅크시는 2017년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호텔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지난 6월 1일 문을 연 ‘리 메이커’는 2층짜리 2개의 건축물에 모두 8개의 아트룸(객실)과 레스토랑, 다목적실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실제 머물 수 있는 아트룸은 그 자체로 평화·생태·미래를 주제로 한 고유 작품이다. 거실 및 침실마다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등의 다양한 예술작품이 들어섰고, 사용 가능한 일상 소품 하나까지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쳤다. 지난해 10월부터 모두 8명의 작가(팀)가 참여해 약 반년에 걸쳐 완성했다.
  DMZ라는 특유의 장소성에 동시대 미술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오묘초 작가는 ‘불편함’을 키워드로 한 아트룸 [Weird tension]을 선보였다. 분단 상황에 익숙해진 채 섬나라처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한 작업이다. 신예진 작가는 ‘생태’에 집중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DMZ의 특성을 반영한 아트룸 [산수설계 홈 프로젝트]를 통해 일상 속 자연과 예술의 조화를 다뤘다.
로비에서 볼 수 있는 김종량 작가의 신몽유도원-나전, 2021  
* 사진 필자 제공  
  한국과 인도인으로 구성된 아티스트 팀 스포라_스포라의 아트룸에는 조응과 포용이 담겼다. 색과 선을 중심으로 한 추상벽화인 <스펙트룸>은 보도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Kuwabara Shisei)의 사진을 재해석한 것이며, 설치 작품 <레이>는 무기가 되는 다양한 금속(황동, 구리)을 이용한 빛의 시간을 상징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철책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차단된 명파해변과 고성 앞바다에 뜬 무지개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외에도 ‘리 메이커’에서는 실향민이자 허구의 인물인 ‘김 작가’를 내세워 현실과의 정서적 왕복을 보여주는 박경 작가의 아트룸을 비롯해, 남북의 근원을 전통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홍지은 작가의 아트룸 등 저마다 특색 있는 8개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방을 만든 후 장식적인 작품을 설치하는 일반적인 부티크호텔과 달리 ‘리 메이커’의 아트룸은 처음부터 작품으로 방을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오묘초 작가의 아트룸 Weird tension, 2021  
* 사진 필자 제공  
방치되고 버려진 공간에 새겨넣은 희망
  호텔 ‘리 메이커’는 작은 미술관이기도 하다. 아트룸 외에도 공용 공간마다 장르를 넘나드는 미술작품들이 들어차 있다. 그중에서도 호텔 로비에 자리 잡은 김종량 작가의 <신(新) 몽유도원도-나전>은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함 속에 디스토피아적 현실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유토피아적 이상향이 대비를 이루는 걸작이다. 조선시대 화가인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나전으로 재구성했는데 제작기간만 4년이 걸렸다.
  이 밖에도 인간 내면과 실제의 풍경을 그로테스크하게 풀어낸 김나리 작가의 조각, 고성의 바람을 특유의 조형으로 치환한 해련 작가의 회화, 자연 생태적이면서도 몽환적 여운이 물씬한 전경선의 부조, 평화를 싣고 내달리는 바람을 무형의 이미지로 다룬 육효진 작가의 사운드 아트 등도 만날 수 있다. 모두 분단의 역사와 자유, 평화, 생태, 미래를 키워드로 한 작품들이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단어임에도 19명의 예술가들은 변별력 있는 개성과 독창성 아래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인 ‘희망’을 새겨 넣었다는 게 공통점이다.
호텔 레스토랑에 설치된 주연 작가의 Plamodel DMZ, 2021  
* 사진 필자 제공  
  역사적·정치적으로 비극이 녹아 있는 장소이지만 아름다운 실제 풍경으로 인한 모순이 부유하는 이 호텔은 오랜 기간 버려져 방치된 공간 이었던 ‘(옛)명파DMZ비치하우스’를 무대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 고성군이 주최하는 한반도 생태평화벨트 광역연계사업의 일환인 ‘DMZ문화예술삼매경’의 연장선에서 진행된 것이다. ‘문화예술삼매경’은 DMZ 일원을 문화예술지구로 조성하여 기존의 군사적 이미지를 평화적 이미지로 탈바꿈시킨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금강산 비로봉과 해금강을 보기 위한 실향민과 관광객이 잠시 머물던 곳이자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상징으로 기억되는 공간에 둥지를 튼 아트호텔 ‘리 메이커’는 현재 고성군이 운영을 맡고 있다. 여느 일반 호텔과 다름없이 쉼과 휴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굳이 숙박하지 않더라도 호텔 내 놓인 작품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