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
2022년 한반도 평화전략을 모색한다
“오리무중의 남북관계
줄탁동시하며 강구연월로 나아가길”
2021년을 마무리하면서 2022년 한반도 평화전략을 모색하는 대담이 열렸다.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종전선언의 진전과 남북 보건·의료협력, 미국 대북정책의 지속 등 희망도 보인다. 2022년에는 오리무중의 남북관계에 강구연월의 빛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대담은 12월 20일 진행됐으며 고유환 통일연구원장과 이상현 세 종연구소장이 함께했다.
대담 |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이상현 세종연구소장
사회 | 왕선택 민주평통 상임위원(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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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반도 평화를 돌아본다
• 한반도 평화의 구조적 삼중고로 운신의 폭 좁아져
• 바이든 정부의 싱가포르 합의 계승은 의미 있는 진전
왕선택 민주평통 상임위원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이상현 세종연구소장
왕선택ㅣ2021년 한반도 평화 환경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유환ㅣ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의 정세가 이어진 한 해였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조율된 실용적 접근이라는 대북정책을 내놨지만 북한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코로나19로 대면 접촉도 어려웠습니다. 여기에 미·중의 전략경쟁 구도가 본격화하면서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상현ㅣ최근 북한의 상황을 설명할 때 삼중고라는 표현을 쓰는데, 한반도 평화 환경도 삼중고에 직면했다고 봅니다. 북·미대화의 단절과 그 여파로 인한 남북 대화의 단절, 여기에 코로나19로 북한이 문을 걸어 잠그고 일체의 대화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구조적으로 굉장히 어려워 한반도 평화당사자들의 운신의 폭이 제한된 해였습니다.
왕선택ㅣ아쉬웠던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이상현ㅣ지난해 7월 남북통신선이 오랜 경색 국면을 지나 연결됐지만 진척이 없었고, 바이든 행정부가 내놓은 대북정책도 사실은 전략적 인내와 큰 차이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한반도의 구조적인 어려움은 한두 번의 사건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고유환ㅣ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한과 미국은 주적이 아니라고 한 것에 주목합니다. 2020년 6월 북한이 대남관계를 대적관계로 바꾸겠다고 한 것을 뒤집고 원상회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합의한 북·미 공동성명을 바이든 행정부가 계승하겠다고 한 것은 중요한 진전입니다.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것인데, 미국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합의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미·중 전략경쟁 속 우리의 역할
• 미·중 격돌하는 핫스팟 vs 협력의 장
•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과 외교역량 중요
왕선택ㅣ최근 미·중관계는 ‘신냉전’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 상황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상현ㅣ트럼프 정부 때 무역 전쟁으로 시작된 미·중 경쟁은 이제 가치, 이념, 체제, 기술, 안보까지 전 방면에 걸친 경쟁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만약 미·중이 지금보다 더 심하게 격돌한다면 홍콩과 대만에 이어 한반도가 미·중이 충돌하는 핫스팟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는 미·중 전략경쟁의 진폭과 향배, 파급 효과를 잘 살피면서 한반도가 이들의 플래시포인트(인화점)가 되지 않도록 예방외교에 더 신경 써야 합니다.
고유환ㅣ현재의 미·중관계가 냉전시대 미·소의 경쟁과 다른 점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협력하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미·중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는 지점이 북핵 불용인데, 이 문제에 초점을 둔다면 협력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두 나라의 우선순위가 전략경쟁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가 어느 정도의 관심을 끌 수 있느냐는 겁니다. 결국 우리의 역량과 주도적 역할이 중요합니다.
김정은체제 10년, 북한의 길 진단
• 정치적 정당성은 확보, 경제적 효율성은 후퇴
• 대외관계 어려움 타개할 외부 자극 필요
왕선택ㅣ김정은 위원장 집권 10년이 되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과 북한체제를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고유환ㅣ김정은 위원장은 28세에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됐습니다. 집권 초기에는 선대가 만들어놓은 ‘수령체제’의 시스템에 올라타서 권력을 다졌고, 이후에는 권력에 도전할 만한 사람들을 정리하면서 친정체제를 굳혔습니다. 체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물리적 힘도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공고히 했고요. 그러나 정치적 정당성은 공고화 했지만 경제적 효율성은 이전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고, 관리 방식도 전통 사회주의로 후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는 취임일성의 공약을 어떻게 달성할 것이냐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상현ㅣ외교면에서 보면 얻은 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경제는 더욱 나빠졌고 대외관계, 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완전히 널뛰기를 했습니다. 북·미관계도 정상적으로 좋아진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효과가 컸죠.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불신이 있고 코로나19 이후로는 북·중교역도 엄청 줄었습니다. 북한이 스스로 대외관계의 어려움을 타개할 만한 이니셔티브를 제공해 줘야 하는데,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니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외부보다는 내부를 다지는 시기라고 평가합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먼저 과감하게 나올 것 같지는 않기에 외부의 자극이 필요합니다. 바람직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조금 더 유연하게 나오는 것인데, 지금은 바이든 행정부도 뭔가를 창의적으로 할 만한 여력이 없어 보입니다.
왕선택ㅣ우리 정부가 종전선언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에 비해 북한이나 미국의 반응은 미온적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고유환ㅣ현재의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내놓은 것이 종전선언입니다. 종전선언으로 비핵화 협상의 입구로 들어가고 평화프로세스의 동력을 다시 불러오자는 겁니다.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는 종전선언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에 대한 상응 조치 중 하나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교착되면서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한 하나의 촉매로서 종전선언이 등장했습니다. 이는 정세의 안정적 관리라는 측면도 내포돼 있다고 봅니다. 지금 당장 된다 안 된다를 떠나 한미가 문안 협의 등의 노력을 하면서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프로세스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종전선언은 평화프로세스가 다음 정부에 이어지도록 하는 징검다리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상현ㅣ종전선언 논의는 입구론과 출구론이라는 과정상의 차이, 종전선언의 조건과 그 이후 따라올 정치적 부담 등 여러 가지 이슈가 겹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의 입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입구로 들어갔는데 무사히 출구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입구로 들어갔는데 길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희망 사항만 외치다 끝나버리게 됩니다. 종전선언이 실효성 있고 주변국에게 매력적인 카드가 되려면 경로를 더 구체화·세련화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2022년 한반도 평화 전략을 제안한다
• 평화프로세스 지속을 위한 징검다리로 ‘종전선언’ 필요
• 인도적 차원의 남북 보건·의료협력 우선 추진
• 대북정책 지속성을 확보하는 초당적 대화기구 준비
왕선택ㅣ코로나19의 경험이 앞으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상현ㅣ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보면 탄력성이 있는 나라들은 빨리 회복하고 비교적 적응을 잘 했습니다. 북한도 이것이 21세기의 속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을 잠그면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코로나19 이후 전통 안보뿐 아니라 비전통 안보가 중요해졌습니다. 경제에 있어서도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탄소가 얼마나 나오는지도 봐야 합니다. 에너지와 함께 환경을 생각하고 생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체제의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고유환ㅣ비전통 안보 위협에 대처하는 데에는 남북과 세계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일시적 위협이면 소나기처럼 피하면 되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상황이 수년은 지속될 거라고 말합니다. 이제 북한도 국제사회가 지원하는 백신을 받아야 하고, 국제사회도 이를 위한 논의를 우선해야 합니다. 인도적차원의 남북 보건·의료협력은 대북제재와 관계없이 신속히 추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왕선택ㅣ어떤 분들은 남북이 독자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데, 왜 다른 나라의 눈치를 봐야 하느냐고 합니다.
고유환ㅣ1990년대 초 북방정책,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유엔 동시가입,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등이 이뤄질 때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남북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이후 우리는 한반도 문제를 너무 외부 지향적으로, 특히 한미동맹의 틀에서 해결하려고 해왔어요. 1994년에 제네바 합의가 만들어졌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핵 문제는 해결이 안 됐습니다. 그동안 자기중심적, 자아준거적 시각에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약했고, 우리 스스로의 역량을 과소평가한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해법을 찾지 않으면 해결은 어려울 겁니다.
이상현ㅣ우리가 독자적으로 문제를 풀려면 독자적인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5년마다 정부가 바뀌고 정부 내에서도 대북정책에 대한 비일관성이 심하다 보니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면 보수정부와 진보정부의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해 봤고 선택지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제는 대북정책에 대한 초당적인 협의기구를 통해 일관성을 확보해 나갔으면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독자적인 의지와 능력, 자원이 있는지도 봐야 합니다. 우리가 과학기술 등 전략적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너무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야 합니다. 지나친 대북 일변도 정책도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고유환ㅣ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한 만큼, 2022년 새롭게 출범하는 한국의 정부도 그 방향으로 맞춰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권 교체기이긴 하지만 한미가 발맞춰 평화-비핵 교환프로세스를 바로 재가동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은 조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왕선택ㅣ어려움이 많지만 힘을 내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겠습니다. 2022년 한반도 평화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다면 어떤 사자성어가 어울리겠습니까?
고유환ㅣ그동안 해오던 노력에 비추어서 교착된 상태를 푸는 게 새해의 가장 큰 과제라고 본다면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하겠습니다. 외부 세계와 북한이 안팎으로 함께 노력해야겠죠.
이상현ㅣ오리무중(五里霧中)의 상황이지만, 오 리나 되는 남북관계의 짙은 안개가 걷히고 해가 밝게 나서 강구연월(康衢煙月)로 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