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832022.01.

김정은은 과학기술을 강조하였다. 사진은 2015년 완공된 북한의 과학기술전당 ⓒ연합

북한포커스

‘정상국가’ 보여주려 한 북한의 10년,
2022년은 상황 따라 ‘병진’

북한 김정은 정권이 집권 10년을 맞았다. 북한의 국가전략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2022년 북한이 나아갈 길을 전망한다.

선군에서 선민으로: 국가 전략노선의 전환 혹은 봉합
김정은 정권 10년의 국가전략은 한마디로 선군정치로부터 탈피하여, 경제와 인민생활 향상을 목표로 하는 선민정치로의 전환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4월 집권하자마자 태양절 100주년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피력하며, 기업소법과 농장법 등 경제 관련 법규들을 정비하고 경제개발구를 설치하는 등 개방정책을 가시화했다.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후견으로 시작된 김정은 정권의 경제개혁과 친중노선이 전면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노선은 즉각 군부로부터 반격을 받았다. 오랜 선군정치로 이권을 장악하고 있던 군부세력은 무역과 경제권을 내각으로 넘겨주어야 하는 경제개혁에 찬동할 수 없었다. 이에 불만을 드러낸 리영호 군 총참모장을 전격적으로 해임하며 군기를 잡았으나, 군부와 강경세력이 요구하는 안보강화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정책 전환을 주도하던 장성택을 국가전복 음모로 처형하고, 경제 대 안보 갈등을 ‘경제-핵 병진노선’으로 봉합했다. 한국전쟁 직후 김일성 주석이 그랬듯이 경제와 안보, 실용파와 강경파가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는 ‘병진’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길밖에 없었다. 핵개발 고도화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 강경파의 요구를 충족시킨 후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월 20일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노선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협상이 좌절됨으로써 국가전략노선 전환 선언이 무색해졌다.

그렇지만 황급히 봉합된 병진정책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애초에 구상했던 경제와 인민 중시 정책을 뒤엎지는 못했다. 집권 초기인 2013년 1월 제4차 세포비서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본질을 ‘인민대중제일주의’로 규정하며 ‘인민’을 기치로 내걸었다.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는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당규약에 명문화하며 인민을 앞세운 선민정치를 김정은 시대의 브랜드로 만들어가고 있다.

2020년 10월 당창건 75주년 기념 대집단체조. 김정은 시대의 브랜드인 ‘인민대중제일주의’ 글자가 적혀 있다. ⓒ연합
정상화, 현대화, 국제화
지난 10년 동안 김정은 정권은 극단적 폐쇄주의, 고립주의로 치닫던 북한의 시스템을 정상화하고 경제를 과학화·현대화하며, 교육과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체제의 변화를 추진했다. 2012년 4월 김정은 위원장이 퍼스트레이디 리설주를 대동하여 공개적인 현지 지도에 나서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물론, 신설 모란봉악단 공연 무대에 디즈니 만화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보란 듯이 이를 TV로 내보내는 등 북한이 여느 나라와 다르지 않다는 정상국가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다. 당비서 호칭을 복원하고 당대회를 5년 주기로 정례화하며 정치국 회의나 전원회의, 최고인민회의 등 각종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정상성을 회복했다. 군대를 앞세웠던 선군 비상체제를 당이 주도하는 당-국가체제, 인민이 혁명과 건설의 주체가 되는 사회주의 정상국가로 복구했다.

김정은 정권 특징(2012~현재)
• 선군(軍) → 선민(民)
• 인민대중제일주의
• 과학기술 중시
‘정상국가’를 향한 시스템 정비
• 경제 과학화·현대화, 교육 문화 등에서 체제 변화 추진
• 당비서 호칭 복원
• 당대회 5년 주기 정례화 등 각종 회의 정기적 개최
과거의 낡은 시설·제도 정비
• 시장개혁 기본틀(기업소법, 농장법) 마련
• 지배인과 기사장이 기업운영을 책임지도록 제도 변경
• 농업, 축산, 공업, 운송, 통신 등 모든 부분의 과학화·현대화
국제적 진출
• 한국전쟁 이후 첫 북·미 정상회담
• 한·중·러 등과 정상회담으로 외교 행보
• 국제기구 보고서 제출의무 이행
• 사회주의 국제연대 과시

그런가 하면 과거의 낡은 시설과 제도를 과학화·현대화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춘 체제로 발돋움하고자 했다. 기업소법과 농장법 등 시장개혁의 기본틀을 마련했다. 또한 과거 공장·당위원회가 행사하던 권한을 비상설기구로 전환하는 대신 지배인과 기사장(지배인 아래에서 공장의 기술적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이 기업운영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제도로 바꾸었다. 농업과 축산, 공업과 운송, 통신 등 경제의 모든 부분에서 과학화·현대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비록 성과는 크지 않았으나 경제개혁의 방향과 목표는 분명했다.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는 구호가 함축하듯 과학기술은 김정은 시대의 핵심 키워드로 작동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국제적 진출이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역사적인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한국, 중국, 러시아와도 정상회담을 진행하여, 외교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적 위상을 한층 높였다. 국제기구의 보고서 제출의무를 이행하고 대외관문인 순안국제공항에 걸려 있던 김일성 초상화를 없애며 당 전원회의와 당대회 단상에서도 김 부자의 초상화를 제거하였다. 청년동맹 명칭에서도 김일성·김정일 이름을 떼고 사회주의권의 애국가로 불리는 ‘인터내쇼날가’를 소환하여 사회주의 국제연대를 과시하며 국제적 위상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시장화가 가져온 이익 갈등
김정은 정권의 경제노선과 선민정책을 대중적으로 실현한 공간은 다름 아닌 시장이다. 20년 전 300개로 시작한 종합시장이 490여 개로 늘어났고, 시장은 주민의 생존과 뗄 수 없는 생활공간이 되었다. 상품뿐 아니라 금융, 노동, 주택 등 여러 부문에서 시장화가 진행되었으며, 주민들은 식량과 소비재의 60% 이상을 시장에서 구입하고 70% 이상의 주민이 시장에서 소득을 얻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제조업 인구는 37.5%에서 28.0%로 줄어든 반면, 농업과 서비스업 인구는 36.0%에서 41.9%로, 26.5%에서 31.3%로 각각 늘었다. 즉 산업이 침체된 상황에서 120만 명의 노동자가 제조업을 떠나 농업과 서비스업으로 각각 60만 명씩 이동한 것이다.1
1) DPRK, 2008 Population Census(2009), p. 193-195; DPRK, Socio-Economic, Demographic and Health Survey 2014(2015), p. 46; DPRK, Voluntary National Review(2021), p. 33.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주민생활은 향상되었으나, 수많은 문제가 동시에 불거졌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상 황이 겹쳐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빈민층의 삶은 심각하게 붕괴되었다. 게다가 중산층에서 성장한 시장 상인이 100만 명을 넘어서고 신흥자본가인 ‘돈주’도 10만 명으로 증가하여 기존 상류층과 첨예한 이익갈등을 빚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상류층을 구성하는 전사자·피살자 성분 가족에게 새로 건설하는 주택을 최우선 순위로 배정하는 방책도 제시했다. 하지만 시장의 이익분배를 둘러싼 계층 갈등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잠복해 있다. 또한 한류의 문화적 확산을 경계하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나, 이미 40% 이상의 주민이 남한의 음악과 영화, 드라마에 노출되어 있어서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주의 관행과 정치적 경직성이다. 오랜 기간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해 있고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북한 사회가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권력기관일수록 기득권에 매달려 시장체제로의 적응을 미적댄다. 김정은 위원장이 당 전원회의에서 그러한 기관과 간부를 “쳐갈겨야 한다”고 매섭게 질타했으나, 관행과 구조를 타파하기는 쉽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유지해 온 시·군 단위 지역발전 전략을 도단위로 확대하지 못하고 「시·군발전법」 채택으로 다시 회귀하는 북한의 현실은 관행과 구조를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2019년 11월 13일 제30차 전국 인민 소비품 전시회가 평양제1백화점에서 개막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2022년 전망: 만지작거리는 ‘병진’의 칼
2022년 북한의 전망은 다분히 경제회복 여부에 좌우될 것이다. 경공업과 농업 분야는 시장개혁이 그런 대로 작동하여 인민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나, 고강도 대북제재와 장기간의 코로나19 국경봉쇄로 시장이 위축되었고 소비재가 턱없이 부족하다. 거대한 중앙기업과 국가기관이 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고, 시장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상류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계급 갈등을 초래하며 심각한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2011~2020년 주체사상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북한 주민의 비율이 평균 59.4%였고 김정은 위원장 지지도도 평균 63.7%를 기록하여2 그나마 아직까지는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김학재·김병로·문인철 외, 『북한주민 통일의식 2020』(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21), pp. 102-109

북한이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변수는 코로나19 상황의 호전이다. 코로나19가 호전되면 중국의 협력을 받아 관광객이 늘고, 관광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회복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호전에 따른 경제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북한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지금까지 북한은 경제노선을 추구하면서 군사적 모험을 자제했으나,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미국으로부터 받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크다. 따라서 향후 종전선언, 제재 완화, 평화 문제에 대한 북·미협상의 진척 여부나 한국의 대선 결과 및 이후 진행 상황에 따라 ‘병진’의 칼을 꺼내들 여지는 충분하다.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북한은 미국의 인권 압박 등에 대해서는 외교적 비난 정도로 대응하겠지만, 한미연합훈련 등 군사행동에 대해서는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으로 맞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그 과정에서 전력난 해소를 위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면 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있다.

김 병 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