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칼럼
통일 여론의
오독을 경계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남북 민족통일에 대한 지지 여론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통일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조사에서 민족통일에 대한 지지 응답은 19.6%였으나, 올해는 약간 반등하여 23%로 나타났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1년 ‘통일의식조사’에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응답은 44.6%가 긍정하고 있는데, 이는 2007년에 비해 19.5%포인트 줄어든 것이다. 그중 청년층의 지지도가 크게 줄어든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통일이 개인에게 줄 이익과 국가에게 줄 이익 사이의 격차를 크게 인식하고, 그 격차에 대한 인식이 줄어들지 않은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여론 변화에는 북한의 3대 권력 세습과 핵무력 강화, 남북 간 불신의 지속, 전반적인 경제 침체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여론으로 볼 때 통일은 선이므로 누구나 지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버렸음을 알 수 있다.
통일의 이유에 관한 조사에서는 단일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줄어든 대신 전쟁 위협 해소, 한국의 선진국화, 이산가족 고통 해소 등 그 정향이 다변화되고 있다. 이 역시 기성 민족통일 담론의 약화를 말해준다 하겠다. 통일이 필요한 이유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의 설득력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남북한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응답을 보면 통일의 방향성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시급한 과제는 △북한 비핵화 → △군사적 긴장 해소 → △북한 인권 개선 → △이산가족 및 국군 포로 문제 해결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평화를 비롯해 인권, 인도주의 등 보편가치들이 통일의 내용으로 잘 채워져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반대로 통일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한 응답도 흥미롭다. 통일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큰 반대 이유이고, 그뒤를 통일 이후 생겨날 사회적 문제, 남북 간 정치체제의 차이가 따르고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때 이들이 통일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상 통일 지지 여론의 약화, 통일 이유의 다변화, 통일 반대론의 부상 등은 서로 다른 현상인 것 같지만, 묵직한 하나의 메시지가 관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인간의 안전과 존엄에 대한 갈구이다. 민족 재결합,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과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에서 통일이 주는 이익 격차에 대한 인식,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이다. 이 모두는 나 자신과 내가 속한 공동체의 평안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지향을 반영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통일 여론의 변화를 선평화 후통일로 이분하고 어떤 이는 여론 변화를 애써 외면하며 흡수통일을 반복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여론을 오독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은 통일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내가 포함된 ‘인간의 얼굴을 한 통일’을 외치는 것이다. 선거국면에 들어선 정치권이 통일 여론을 왜곡하지 말고 겸허하게 수용하길 기대한다.
서 보 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