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832022.01.

2021년 4월 12일 미국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의 화상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

국제

과학기술의 국제정치와 공급망 재편

국제공조로 미·중 전략경쟁에 대응해야

미·중 전략경쟁 속 과학기술 및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국제정치와 세계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살펴보고 우리의 대응전략을 제안한다.

미국우선주의(Amercia First)를 지향한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국가전략보고서에서 ‘경제안보는 국가안보’라고 주장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봉쇄를 목표로 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을 통상정책과 과학기술정책에 투사했다. 미 국무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호주, 인도, 일본, 뉴질랜드, 베트남, 대만 등 동맹국 및 동반국과 함께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추진했다. 이와 함께 중국 통신사, 앱스토어, 앱, 클라우드 서비스 및 통신케이블의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화웨이의 5세대(5G) 이동통신을 퇴출시키려는 클린네트워크(Clean Network) 구상을 펼쳤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된 미·중 대립
브레튼우즈체제1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급속히 퇴조하고 기술민족주의(techno-nationalism)와 디지털보호주의(digital protectionism)가 빠르게 부상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에 심각한 충격을 주고 있다. 무역전쟁이 발발한 이후 미국은 중국에 보복 관세, 수출 통제, 수입 제한, 투자 규제 등을 부과했다. 세계 1, 2위의 경제 및 무역 대국들의 충돌은 양국 사이의 무역량을 감소시켰다. 또한 미국은 대중제재를 역외의 제3국에 적용함으로써 보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1) 1944년 7월 세계 44개국 대표들이 모여 전후의 국제통화질서 공조를 제도화한 것으로, 미국 달러화를 중심으로 한 고정환율제의 도입이 핵심이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군비 증강에 치중했다면, 탈냉전시대 미국과 중국은 과학기술 경쟁에 집중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반도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5세대 이동통신(5G), 사물인터넷(IoT), 안면인식, 무인항공기 등은 상업용 제품뿐만 아니라 군사용 무기체계에도 필수적인 기술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은 첨단 과학기술의 플랫폼과 생태계 를 자국 중심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원천기술에서는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다. 미국의 연구기관과 기업은 4차 산업혁명에 필수불가결한 기술 특허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기업이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제조업이 공동화되어, 미국은 일부 첨단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원천기술은 부족하지만 세계의 공장으로서 많은 첨단 제품을 가공·조립해서 수출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로 인한 물류망 교란으로 공급망이 붕괴되었을 때, 원천기술에서 우위에 있지만 제조업이 공동화된 미국은 그 반대인 중국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보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하자마자 공급망을 점검했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을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을 단기간 내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점검은 국가안보와 첨단 과학기술 경쟁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반도체, 차량용 배터리, 희토류, 바이오에 한정되었다. 6월 백악관이 발표한 보고서는 국내의 불충분한 제조 능력, 민간 시장에서의 잘못된 유인책과 단기주의, 동맹국·동반국·경쟁국의 산업정책, 특정 지역에 집중된 아웃소싱, 제한적 국제협력 등을 취약점으로 지적했다. 향후 추진될 정책 대안에는 생산과 연구개발에 대한 직접투자, 자금지원, 세제혜택, 정부조달, 무역제재, 쿼드나 G7과 같은 다자외교포럼 등이 포함되었다.

2021년 10월 12일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CATL이 유럽의 첫 번째 공장을 독일 튀링겐주에 짓고 있다. ⓒ연합
미·중의 첨단 과학기술 경쟁과 공급망 재편 전략
장기적 대책으로 미국은 동맹국 및 동반국과 함께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앨라이쇼어링(allyshoring)을 시도하고 있다. 2020년부터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해져 자동차 생산이 감소하자, 4월 바이든 대통령이 전 세계 주요 기업이 참여한 반도체 공급망 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할 정도로 미국은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했다. 미국 상무부는 9월 공급망 병목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전 세계 주요 기업에게 45일 내로 반도체 공정, 기술, 고객, 영업 정보 등 총 14개 항목의 자발적 정보 제출을 요구했다. 동시에 미국은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에게 첨단 반도체 공장을 미국 내에 건설하라고 압박했다.

단기적 대책으로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했던 상호의존의 무기화를 더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를 제3국에 적용하는 이차제재(secondary sanction)를 통한 상호의존의 무기화는 중국의 제재 회피·우회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상호의존의 무기화는 공격의 이점을 최대화하고 반격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과 금융 네트워크의 요충지(choke point)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TSMC와 삼성전자가 화웨이에 첨단 반도체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은 물론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을 금지함으로써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방해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첨단 과학기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중국제조(中国制造) 2025’를 비롯한 다양한 산업정책을 시도했다. AI, 5G, 빅데이터, 안면인식 등에서 중국은 미국과 격차를 상당 부분 좁히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고립을 피하기 위해 자유무역협정(FTA)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2020년 11월 타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가장 먼저 비준하고, 작년 9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가입을 신청했다. 일본과 호주가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칠레는 공식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

미국이 중국의 산업정책을 불공정 무역으로 비판하며 폐기를 요구하자, 중국은 2020년 1월 미·중 무역합의 직후 국제대순환보다 국내대순환을 우선하는 쌍순환(双循环) 전략을 채택했다. 또한 중국은 상호의존의 무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대중제재와 맞대응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없는 실체 목록에 대한 규정’, ‘수출통제법’, ‘외국인투자안전심사방법’, ‘외국법률·조치의 부당한 역외적용 저지방법’, ‘반외국제재방법’ 등을 도입했다. 배터리와 희토류에서는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압도하고 있다. 중국의 CATL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부상했으며, 희토류 공급망의 약 60% 이상을 중국 또는 중국계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극단적으로 몰리는 상황에서는 중국이 배터리와 희토류를 상호의존의 무기화에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중의 첨단 과학기술 경쟁과 공급망 재편 전략은 우리나라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 기업은 미국 기업 및 중국 기업과 다양하게 협력하고 있다. 반도체에서는 삼성전자(중국 시안, 미국 텍사스), SK하이닉스(중국 우시, 다롄 인텔 공장 인수 협상 중), 배터리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중국 난징·취저우, 미국 미시간·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 SK이노베이션(중국 창저우·옌청·후이저우, 미국 조지아), 삼성SDI(중국 톈진, 미국 부지 협의 중)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단위: 포인트, ( )는 OECD 38개국 중 순위를 나타냄

출처: 한국경영자총협회

안미경중 상황의 국가들과 공조하여 피해 최소화
미국과 중국의 탈 동조화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외교적으로도 큰 손실을 일으킬 것이다. 중국은 다롄에 있는 SK하이닉스의 미국 인텔 낸드 메모리 공장 인수를 허가하면서 “한 개의 제3경쟁자가 SSD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으며, 작년 11월에 발생한 요소수 품귀도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요소수는 첨단제품도 전략물자도 아니지만, 부족해지자 교통·물류를 비롯한 많은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다행히도 외교적 노력을 통해 중국의 수출 제한을 완화하고 다른 국가들로부터 수입을 확대하여 위기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안보 담당 조직의 신설,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 및 국제협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9월 신설된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는 위원장인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경제부처 장관 5명, 국정원·국가안보실·청와대 관계자 5명 등 총 11명이 참여하고 있다. 12월 청와대에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신기술·사이버안보비서관’도 신설했다. 11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경제안보 핵심 품목 태스크포스(과기정통부, 외교부, 문체부, 농식품부, 산업부, 복지부, 환경부, 국토부, 해수부, 식약처,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산림청 등이 참가)는 공급망에 대한 부정적 영향, 국민 생활 불편,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 국제가격의 큰 변동성 등 문제가 있는 100여 개 품목을 검토하여 경제안보 핵심품목을 1차로 선정했다. 선정된 품목은 중요성과 시급성에 따라 등급을 구분하여 주기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세계화의 퇴조와 지정학적 리스크의 부상이 다자주의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국제공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안미경중(安美經中) 상황에 처해 있는 국가들과의 공조가 중요하다. 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으면서 미국과 안보협력을 하는 독일, 일본, 호주, 대만 등은 미·중의 전략적 경쟁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경제규모와 군사력에서 격차가 크기 때문에 어느 국가도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에 독자적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이 국가들이 다자간 협의체를 구성하여 공동으로 대응한다면 미·중 갈등의 격화를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11월 9일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요소수 품귀 사태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이 왕 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