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평화의 길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
‘파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자유로? 임진각? 판문점? 파주에 산다고 하면 ‘참 먼 곳에서 산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북한과 마주하고 있어 전쟁이 날까 걱정하는 분도 계시리라. 파주는 분단과 전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최북단 도시다. 그러나 이는 파주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제 긴장과 소외의 이미지는 잊으시길 바란다. 평화와 번영의 도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를 소개한다.
파주(坡州)의 ‘파’는 ‘고개, 비탈, 둑, 제방’이라는 뜻이 있다. 파주에는 한강과 과거 ‘칠중하’로 불렸던 임진강을 비롯하여 공릉천, 문산천, 갈곡천, 미암천 등 크고 작은 강이 많이 있다. 북녘에서 발원해 구불구불 흐르는 임진강과 남녘에서 가장 큰 한강은 교하에서 만나 서해로 흐른다. 서울보다 큰 면적에 대도시 못지않은 46만 명이 사는 파주시를 대표하는 길은 통일로와 자유로다. 서울 은평구 구파발에서 파주 문산읍 임진각까지 이르는 통일로는 목포와 신의주를 연결하는 국도 1호선 구간이기도 하다. 통일로는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남북대화를 시작하던 1971년에 착공하여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온 1972년 완성됐다.
한반도의 중심, 만남과 연결의 고장
파주는 한반도의 중심이자 연결의 고장이었다. 기차는 남북을 연결했고, 강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임진강은 한강과 만나 더 큰 바다로 흘러갔다. 과거 신의주까지 달렸던 경의선 열차는 다시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남과 북은 철도·도로연결에 합의하고 2002년 9월 경의선 착공식을 가진 후 2003년 6월 단절됐던 구간을 연결했다. 2007년 11월부터 경의선 문산-봉동 구간에 화물열차가 정기 운행하기도 했다. 지금은 임진강역에서 끝나는 경의선 열차가 예전처럼 28개의 정거장을 거쳐 신의주까지 가는 날이 머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멈춰 있는 임진각 장단역 증기기관차
도라산역까지 갈 수 있는 하행선 철교(좌측)
평화관광의 시작 임진각
파주의 평화체험은 임진각에서 시작한다. 임진각은 ‘망배단’으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실향민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제를 올리는, 분단과 이산의 아픔이 가득한 현장이다. 최근에는 자유의 다리 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평화에 대한 간절함을 더해 준다. 임진강의 독개다리는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교각만 남아 있던 것을 경의선 상행선 철교에 다리를 설치하여 관광 시설로 만들었다. 독개다리에 들어서면 민간인 통제구역에 발을 딛는 것이다. ‘군인의 구역’이자 ‘전쟁의 구역’인 이곳에 ‘BEAT 131’이 있다. 한국전쟁 때 지하벙커로 사용했던 곳으로, 당시의 군용품을 전시하고 영상체험 시설 등을 조성해 놓았다. 전쟁 때 자유의 다리를 건넜던 그 많은 포로들은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갔을까? 전쟁이 끝난 후 남과 북 어디에도 남을 수 없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이 떠오른다.
통일되는 날 철거될 독개다리
곤돌라에서 만난 풍경 - 끝나지 않은 전쟁
임진각에 평화 곤돌라가 생겼다. 곤돌라를 타면 임진강을 건너 민통선 구간을 지나 북쪽으로 갈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개성과 평양으로 갈 수 있는 통일대교가 있다. 곤돌라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임진강의 잔잔하고 평화로운 물결이었을까. 곤돌라 너머에 ‘지뢰’라고 쓰인 선명한 붉은 글자가 말해주는 금단의 땅이었을까.
곤돌라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캠프 그리브스’가 있다. 캠프그리브스는 1953년 미군 주둔을 위해 제공했다가 2007년 돌려받은 ‘미군반환공여지’로, 몇 년 전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지금은 캠프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끝자락에 있는 전시관만 둘러볼 수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캠프 그리브스 내 갤러리 그리브스는 한때 미군 볼링장이었던 건물로, 지금은 DMZ와 분단 관련 전시를 하는 갤러리로 바뀌었다.
전쟁의 격전지이자 분단의 현장인 파주에는 치열하고 참혹했던 전쟁을 기리는 기념물이 많이 남아 있다. 파주 적성면의 영국군 설마리 전투공원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4월 영국군 중 가장 많은 희생을 겪은 글로스터셔 연대의 희생을 기리는 곳이다. 문산역 근처에 조성된 통일공원은 1953년 휴전회담 당시 유엔종군기자센터가 있던 곳이다.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육탄 10용사 충용탑,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이유중 대령과 김만술 소위 기념상 등도 있다.
아직도 파주는 전체 면적의 88%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군부대 주변 지역 주민들은 사격장 소음에 시달린다. 왜 우리는 아직도 정전상태를 끝내지 못하고 있을까.
민통선 구간으로 가는 곤돌라와 선명한 ‘지뢰’ 글자
파주의 봄, 걸어서 DMZ
2018년 한반도에도 평화의 봄이 찾아왔다. 남북은 4·27 판문점선언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굳은 의지를 확인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한 실질적 조치는 4·27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에 따라 비무장지대 안에서 이루어졌다. 감시초소인 GP가 철거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비무장화되었으며, 서해 북방한계선 긴장 완화의 일환으로 남북이 함께 한강하구 수로조사를 했다.
비무장지대에 ‘DMZ 평화의 길’이 만들어지고 2019년 8월 파주 코스가 개방됐다. 임진각-통일대교-도라전망대-2통문-철거 GP를 돌아보는 총 21km 구간이다. 비무장지대 안을 걸어 다닐 수 있고 군사분계선 남쪽 700m에 있었다는 철거 GP 앞에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다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간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로 출입을 막았고, 최근 코로나19로 운영이 중단됐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는 진전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가지는않을 것이다. 한때 멈추었을지언정 그간의 무수한 노력들이 쌓여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 사용된 지하벙커 BEAT 131
남과 북,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평화도시 파주
파주는 지리, 문화, 군사적 요충지로서 늘 한반도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파주에는 인물도 많다. 파주 삼현(三賢)이라 불린 율곡 이이, 황희 정승, 윤관 장군 유적지 탐방은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성리학의 대가 우계 성혼과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도 파주 사람이다. 허준 선생의묘가 민통선 안에 있고, 아름다운 조선 왕릉인 파주삼릉(공·순·영릉)과 장릉은 언제 가도 좋다.
자유로를 거침없이 달리던 자동차는 통일대교 앞에서 막힌다. 가로막혀 있다는 것은 언젠가는 그것을 뚫고 나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통일대교를 넘으면 새로운 땅과 사람과 가능성이 열린다. 파주는 과거의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딛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커가는 공존의 도시다. 평화누리길과 임진강 생태탐방로, 감악산 출렁다리가 여러분들을 부르는 평화·생태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분단을 단절과 장벽이 아닌 연결과 개방으로 바꾸고, 다양성과 유연성, 국제성을 바탕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잇고, 남과 북을 넘어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평화도시 파주가 자랑스럽다.
* 사진: 필자제공
김 효 은
대진대학교 DMZ연구원 객원교수,
민주평통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