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한중수교 30주년
다양한 형태의 전략적 소통으로
미중경쟁의 파고 넘어야
1992년 8월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이후 한중관계는 많은 변곡점을 지나며 발전해 왔다. 지난 30년간의 한중관계를 진단하고 심화하는 미중경쟁 속 한중관계의 해법을 모색한다.
한중수교 30년 회고, 정치적 신뢰 더욱 강화해야
한중 양국이 수교한 지 30년이 됐다. 그간 양국 간에 마늘 분쟁, 동북공정 갈등, 북한이탈주민 문제, 불량식품 문제, 사드 사태 등으로 때에 따라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지난 30년간 한중관계는 전반적으로 크게 발전해 왔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주로 화상이나 전화로 교류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중수교 이래 양국 지도자 및 고위 외교 관계자들 간의 회동이 빈번해졌고 양국 국민의 교류와 협력도 꾸준히 증가했다. 상호방문 인원은 연간 1천만 명을 상회하기까지 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중국은 우리의 가장 큰 무역상대국이자 2번째로 큰 투자대상국이 됐다. 양국 간 무역 또한 크게 증가돼 작년에는 왕복 무역액이 3천억 달러를 훨씬 상회했다. 한중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양국관계에 대한 공식 명칭도 수차례에 걸쳐 격상됐으며 2008년 이래 현재까지 한국과 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행사를 참관한 것은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중국과의 협력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통해 적어도 외형상 한중 우호협력 관계가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2016년 사드 사태 당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생긴 한중 간 이견과 더불어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우려가 강하게 표출됨에 따라 한중관계는 급속도로 경색됐다. 2017년 10월 한중 간 사드 문제가 봉합되면서 양국관계가 다시 정상화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최근의 양국관계가 과거와 다르다는 느낌은 부인할 수 없다.
한중수교가 정치안보 분야에 미친 영향은 관점에 따라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수교 이후 중국의 북한 일변도 정책에 수정이 이뤄졌고 현재까지 중국이 한반도에서의 전란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온 것은 비록 중국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 있어서 한중수교가 기여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현재 한중관계는 여전히 상호 정치적 신뢰가 부족한 상태이다. 특히 북핵문제 해결과 한국주도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왕치산 중국 국가 부주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심화하는 미중 전략경쟁, 불확실성 높아지는 한중관계
미래의 한중관계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이는 한중관계를 둘러싼 외부 환경과 더불어 양자 간의 실질적인 이해관계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미 행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한중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북핵 위협이 크게 증가되고 있는 정세 속에서 한미동맹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 한미 양국 정상은 지난 5월 서울에서 한미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상호협력 방안을 합의했다. 한편 중국은 한국 정부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한 양국관계의 발전을 언급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국의 쿼드(QUAD) 참여나 대만해협 관련 한미 협의 등에 대해서는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한국이 제3국의 영향 없이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심 사안에 대해 존중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북핵과 한반도 문제는 한중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변수이다. 현재 북미 간의 북핵 협상은 미국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 제의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북한은 최근 핵실험 및 ICBM 발사 모라토리엄을 파기하고 ICBM을 발사했으며 가까운 시일 내 7차 핵실험마저 감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상황이 더욱 엄중해졌다. 향후 북한의 도발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추가 대북제재를 논의할 경우 한중 간의 이견이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한 한미 대응이 고도화될 경우 중국은 과거 사드 배치 때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 판단하고 반발할 수도 있다.
한중 양자 간의 정치·경제적 모순들도 표면화되고 상호 부정적 인식 또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그간 잠재돼 있던 한국에 대한 중국의 대국 의식이 밖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한중 간 교류와 협력에 있어 비대칭성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한국 내에서는 중국의 공세적인 대외정책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최근 김치와 한복에 대한 원조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양국 간의 강한 민족주의 정서도 국민들 간의 감정 충돌을 유발시키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과 중국 사이의 기술 격차가 사라지고 있으며 중국 산업구조의 고도화로 교역 구조가 상호보완적 관계에서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 상대로 변해가고 있다.
한중 간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한중 경제안보 대화기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지난 2021년 개최된 제7차 한중경제협력포럼에서 상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축사하는 모습 ©연합
다양한 소통 기회 마련으로 한중 신뢰관계 구축해야
상술한 요인들로 인해 한중관계가 때에 따라 어려움을 겪게 될 수는 있지만, 한중 양국이 서로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상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북핵문제를 포함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양국의 협력이 여전히 필요하다. 상호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적 발전, 나아가 지역 내지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에 있어 양국 협력은 상호 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중 양국은 앞으로도 상호존중과 호혜·평등을 기초로 상생과 혁신을 위한 협력을 확대하되, 이견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풀어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향후 상당 기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전략적 사안들을 선택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한다면 한국은 국가이익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접하는 위치에 있고 국토가 분단돼 있으며, 부존자원도 부족해 대외무역이 한국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한국은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주변 국가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개방적인 자유무역 체제를 옹호할 필요가 있다. 안보나 경제 등의 측면에서는 국제협력을 중시하며 다양한 다자협력 체제에 중층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된다고 할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는 현재 기정사실화됐다. 북한은 전술 핵미사일, SLBM 등 투발 수단을 다양화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핵을 포함한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 대해 확장 억지력 강화 등 한국 스스로 보다 확실한 군사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중국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중국이 북한 비핵화와 도발 방지를 위해 역할을 하도록 가일층 노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핵문제를 미국과의 전략적 갈등과 연계시키지 않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다.
한중 양국은 정치적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한중 정상들의 상호 방문이나 국제무대에서의 회동 등 다양한 기회를 활용해 양국관계 발전 방안에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기회를 자주 가질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한중 간 정부와 민간의 다양한 형태와 층위에서 전략적 소통을 강화시키고 이를 정례화 내지는 제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최근 대두되는 경제안보 문제와 관련해 한중 간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한중 경제안보 대화 기제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북아에서 군사력이 증강되는 상황에서 양국 군 간 상호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반도 주변수역에서의 우발적 충돌 시 처리 절차에 대한 규칙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한국은 경제력과 기술력이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고 문화적 역량도 크게 제고되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거버넌스에서의 한국의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와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향후 지역문제나 기후변화, 국제 감염병 대응 등 글로벌 이슈들에 대한 국제 공조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중 간 협력을 강화시키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신남방정책을 포함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와의 접점을 찾는 노력도 계속돼야 할 것이다.
한중 양국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상호 인적교류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 양국 젊은 세대들 간에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양국 청년들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상호 이해와 유대감을 높이고 미래의 한중 협력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중 문화 교류에 있어서도 전통문화에 더해 양국의 젊은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재료들을 발굴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 정 승
동서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장, 前 주중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