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평화
세계 전통 오케스트라 ‘평화’
“음악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단비가 되길 기대합니다”
세계 전통 오케스트라 ‘평화(Peace)’는 2017년 뉴욕취타대의 단장이었던 필자에 의해 처음 조직됐다. 오케스트라 ‘평화’가 참여한 뉴욕 국악축전 공연은 2009년 창단된 뉴욕취타대의 연주 활동을 예의주시하던 뉴욕시 문화위원회가 2017년 봄 연주회 기획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공연의 총연출과 지휘를 맡은 필자는 고국이 아닌 미국 뉴욕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연주회를 기획하게 됐다. 하지만 악기 연주자 섭외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섭외가 막혀 낙담하던 중 “여기가 어딘가! 세계 문화예술의 수도 뉴욕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미치게 됐고, 세계 각국의 예술인이 모인 곳의 특성을 살려 ‘세계 각국의 악기 연주자’를 모아보자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됐다.
2017년 세계 전통 오케스트라 ‘평화’의 첫 공연
동서양의 소리를 하나로 모으다
먼저 한국의 전통악기인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 대금, 피리, 태평소, 장구, 북, 꽹과리와 중국의 전통악기 얼후, 비파, 디쯔, 쩡 그리고 사미센, 사쿠하치, 고토 등의 일본 전통악기를 한데 모았다. 그리고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악기에서 부족한 현 파트와 관 파트는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플롯 등의 서양 오케스트라 관현악 악기들로 채웠다. 이렇게 동서양의 악기들이 절묘하게 배합된 특별한 오케스트라가 조직됐다. 악단 이름은 고심 끝에 ‘세계 전통 오케스트라 평화(World Traditional Orchestra Peace)’로 명명했다. 서양의 오케스트라 악기 또한 유럽 어딘가의 전통 악기이기에 ‘전통(Traditional)’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 중 하나인 뉴욕에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모든 연주자들의 연습 일정을 맞추는 일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주어진 총연습의 기회는 단 한번 뿐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연습에서 모든 곡의 완성도를 높여야 했다. ‘발로 뛰자’라는 생각으로 뉴욕 각지에 흩어져 있던 연주자들을 필자의 연습실로 한 명씩 데려왔다. 그리고 일대일 개인 연습을 통해 한국의 장단을 알려주며 연주곡과 관련된 의견을 함께 나눴다. 이렇게 단원들은 연주자만이 느낄 수 있는 하모니를 교류하며 음악적 동지가 되어갔다.
처음 총연습 때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모든 연주자는 동서양의 소리가 배합된 난생처음 듣는 특별한 사운드에 매료됐고, 당시 공연에 참여한 100여 명의 합창단원들도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매력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혼란을 느끼는 것 같았다. 현장에서 이 특별한 사운드를 접하고 나니 단원들은 여느 공연과는 다른 어떤 특별함을 느꼈는지 총연습 이후 지휘자를 대하는 시선이 180도 바뀌어 있었다.
2019년 뉴욕 국악축전 공연 당시 현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
전 세계의 악기로 평화를 연주하는 꿈
매년 뉴욕에서 열리는 ‘뉴욕 국악축전’은 뉴욕시의 지원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비록 필자의 사비 1만 달러 정도가 더 지출되어 첫해 수익은 마이너스였지만 공연의 퀄리티를 인정받아 현재는 뉴욕의 명실상부한 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지금은 뉴욕시문화국(DCLA)뿐만 아니라 뉴욕 주 문화예술협회(NYSCA)에서도 뉴욕취타대가 주관하는 뉴욕 국악축전을 매년 지원해 주고 있다.
누군가에게 우리 음악과 내 연주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이러한 기쁨 속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음악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뉴욕 국악축전이 세계 국악축전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오케스트라 ‘평화(Peace)’의 새로운 도전 과제이다. 향후에는 남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더 많은 지역의 악기들을 한자리에 모아 국가, 성별, 인종, 나이에 관계없이 인류의 화합을 외치는 ‘세계 평화를 위한 연주회’를 하고 싶다. 음악은 소리 하나로 소통할 수 있는 묘한 재주를 갖고 있다. 정치적 분쟁이나 민족 간 갈등이 있는 현장에 음악만이 줄 수 있는 평화의 단비가 가득 내려앉길 기대한다.
이 춘 승
뉴욕취타대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