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평화통일 기행
행운 가득, 한반도 중심 도시 포천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동행
경기도 포천시의 슬로건은 ‘평화로 만들어 가는 행운의 도시’이다. 포천(Pocheon)이 포춘(Fortune)으로 발음되면서 ‘행운’의 도시로 불렸고, 38선이 가로지르는 한반도 중심 지역으로 ‘평화’를 앞세웠다. 한반도 중심은 대부분 휴전선을 마주하고 있는 남북 접경지역이다. 분단 이전에는 남북을 잇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었지만, 분단과 전쟁은 한반도의 중심을 단절의 땅, 긴장과 대립의 땅으로 만들었다. 포천도 그렇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수도권이지만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연천군, 철원군 사이에 위치해 있고 군단 사령부가 두 곳이나 주둔한 남북 접경지역에 속한다. 전쟁이 끝난 지 70여 년. 포천에는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을까. 전쟁과 분단의 한계를 딛고 평화와 행운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포천시로 평화 여행을 떠나보자.
38선을 따라 조성된 평화의 숲길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38선은 광복 이후 남북을 나누는 선이었다. 강원도 양양에서부터 인제, 화천, 춘천, 가평, 포천, 연천, 개성까지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며 남북을 갈랐다. 포천에도 38선 휴게소와 38선 고개 등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포천의 중심 영중면에 위치한 38선휴게소는 지금은 영업을 중단하고 폐허가 됐지만 38선 표지석과 평화통일기원비 등이 남아 있어 평화통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평화통일기원비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포천시협의회가 1984년 건립한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폐허의 땅에 홀로이 서 있지만, 곧 이곳에 38선 평화공원이 새롭게 조성된다고 하니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북적일 그날을 기대해 본다.
38선휴게소 뒤편에는 38선과 맞물리며 영평천이 흐르고 있다. 한탄강과 임진강으로 흘러가는 영평천 제방에는 16.42km에 걸쳐 ‘임진강 38선 역사체험길’이 조성돼 있다. 6·25 전쟁 당시 38선이 그어진 영평천 일대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물길을 건너왔고 우리 군인들이 다시 북진하며 물길을 넘었다. 이 길목을 수없이 뺏고 뺏기며 치열하게 싸웠다. 역사체험길 제방에는 그날을 기억하는 조형물과 수많은 참호가 여전히 남아 있어 전쟁의 아픔과 평화통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2022년 4월, 이곳에 작은 편백나무들이 심어졌다. 포천시협의회가 시민들과 함께 영중면 사은교에서 영중교까지 약 1.2km 구간에 1,200그루의 편백나무를 심은 것이다. 이곳을 ‘평화의 숲길’로 조성해 더 많은 시민이 즐겨 찾는 평화와 힐링 명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양주승 포천시협의회장은 “자문위원과 시민들이 유서 깊은 자리에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었고 20년 후 울창한 숲길이 되도록 가꾸는 일도 열심히 하려 한다”면서 “시민들이 길을 걸으며 평화의 마음을 키우고 통일을 기원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38선 평화공원에서 평화의 숲길로 이어지는 이 길이 물길과 숲길이 어우러진 지역의 평화 명소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38선휴게소 인근의 38선 표지석
포천시협의회가 평화의 숲길 조성을 위해 심은 편백나무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킨 아트밸리
포천에서 그림 같은 에메랄드빛 호수를 만나고 싶다면 아트밸리로 떠나 보자. 병풍을 깎아지른 화강암 절벽 아래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호수가 넓게 펼쳐져 있다. 바로 천주호다. 고대부터 존재해 왔을 것 같은 신비스러운 모습이어서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그러나 호수의 역사는 깊지 않다. 이곳은 1990년대까지 화강암 채석장이었다. 1960년대 건설 산업이 확장되면서 여기저기 채석장이 생겨났다. 포천의 화강암은 품질이 좋아 석재로 인기가 높았다. 이곳에서 채굴된 석재는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인천국제공항 등 중요 시설물과 건축물에 사용되기도 했다. 무분별한 채굴로 황폐화되고 버려진 땅이었지만 자연의 치유력은 놀라웠다. 채굴된 화강암 골짜기에 빗물과 샘물이 고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었다.
천주호가 생기면서 2005년 황폐화된 곳을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계획이 추진됐고 2009년 10월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천문과학관을 비롯해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문화공연 시설, 조각공원, 모노레일 등이 함께 설치돼 있어 연인원 40만 명이 찾는 포천의 관광명소가 됐다.
예술가들도 힘을 보탰다. 버려진 화강암을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조각공원에는 자연, 상생, 치유의 의미를 담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작품도 있다. 바로 ‘민족의 염원’이다. 한반도 지도를 품고 있는 이 작품은 2009년 철거된 축석고개 방호벽의 일부 콘크리트 구조물을 활용해 만들었다. 공병 작가는 “포천시가 군사적 이미지에서 예술 문화적 이미지로 변화됐음을 보여주고, 통일된 한반도가 세계 중심의 일류국가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아트밸리는 무분별한 개발을 극복하고 환경을 복원한 도시재생 사업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상처의 땅이 자연과 예술을 통해 치유되고 새롭게 태어났다. 개발과 환경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할지 지혜를 함께 배운다.
임진각 역사체험길에 설치된 조형물과 북한군을 막기 위한 참호
남북을 흐르는 한탄강 물줄기와 자연유산
포천의 흐르는 한탄강은 북한 강원도 평강군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현무암 협곡으로 유명하다. 오리산에서 시작한 용암은 한탄강을 따라 흐르며 철원과 포천, 연천을 지나 파주까지 이어진다. 강물과 만난 용암은 육각형 모양의 주상절리를 만들고 현무암 협곡을 만들었다. 그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포천시와 연천군, 철원군 일대의 한탄강 협곡은 2015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202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포천에도 한탄강 협곡을 즐길 수 있는 명소들이 많다. 비둘기낭 폭포와 멍우리 협곡, 아우라지 베개용암 등이 대표적이다. 천연기념물 제537호로 지정된 비둘기낭 폭포는 비둘기 둥지처럼 동그랗게 생겼을 뿐 아니라 과거에 산비둘기가 많이 살아 비둘기낭 폭포로 불렸다고 한다. 이곳은 하식동굴, 주상절리, 판상절리, 협곡, 용암지대 등이 있어 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17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에메랄드빛 호수와 만나며 만들어내는 비경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싹 날려보낸다.
한탄강 협곡에 조용히 감춰져 있는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에는 동네 사람들의 은밀한 피난처였고 1970년대에는 군부대 장군들의 비밀스런 휴양지 역할도 했다. 동네 사람들만 알던 숨은 명소는 ‘선덕여왕’, ‘추노’ 등 드라마 촬영지가 되면서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비둘기낭 폭포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이동하면 나오는 한탄강 하늘다리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지상 50m의 다리 위에서 강한 바람을 맞으며 만나는 한탄강 협곡의 비경은 짜릿함과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포천 아트밸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명소라면, 한탄강은 자연이 만들어 낸 천혜의 명소로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뽐낸다.
화강암과 방호벽을 이용해 만든 조각 작품
인위적 분단을 넘어서는 자연의 이어짐
하늘다리에서 멀리 북쪽을 바라보면 철원 금학산이 보인다. 금학산에 오르면 비무장지대와 북한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탄강의 흐르는 물줄기가 남북을 흐르듯 백두대간의 생태계도 철책을 넘나들며 서로를 잇는다. 인위적인 분단 앞에서 자연의 연결은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을까.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포천의 아름다움처럼 분단을 극복하는 일에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동행이 있었으면 좋겠다. 전쟁과 평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꿈꾸는 포천에서 평화통일이라는 행운의 싹을 함께 키워보자.
하늘다리 전경
한탄강의 비둘기낭 폭포
이 현 희
민주평통사무처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