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칼럼
‘모모’와 듣기의 윤리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는 시간 도둑과 도둑맞은 시간을 찾아주는 어린 소녀 모모에 대한 판타지 소설이다. 주인공 모모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이곳저곳을 떠도는 거지 소녀다. 모모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잠자리를 구하곤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이 소녀를 너무 사랑하게 된다. 마을에서 가장 필요 없어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거지 소녀 모모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모모는 어떻게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 모모가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듣기’였다. 그가 했던 건 그저 잘 들어 주는 것이었다. 모모는 사람들이 말할 때 말을 가로채거나 가르치려 하거나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진심으로 들어주는 모모 앞에서 사람들은 마음속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찾아나갔다. 그렇게 모모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듣기’의 윤리다. 듣기에도 윤리가 있다. 듣기의 윤리는 정성을 다해 귀를 기울이며 듣는 것이다. 모모의 올곧이 들으려는 ‘듣기의 윤리’(ethics of listening)가 사람들에게 잃어버렸던 행복을 되찾아 주었다.
온전히 듣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조바심이 발목을 잡는다. 저 사람이 어떤 말을 할 것인지를 예단하면서 쓸모없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며 간섭하거나 끊지 않고, 가르치거나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본 적이 있었는지를 성찰해 보면 잘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체감할 수 있다.
40년이 훨씬 넘은 소설 『모모』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에서 온전히 듣기의 윤리가 여전히 아니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알고 있는 지식을 이야기하고 싶고, 내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어떤 이슈가 나오면 이런 말과 저런 말이 SNS를 통해 넘쳐난다. 목소리를 키우고, 폭력적인 말이나 욕설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이건 말하기나 대화가 아니다. 언어적 배설일 뿐이다. 욕망으로서 말하기와 배설로서의 듣기가 아닌 경청과 존경의 말하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모모의 경청을 통해 자신을 성찰했다. 성찰은 곧 새로운 출발이다. 새로운 출발은 건강해야 한다. 건강한 출발이 건강한 삶,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역사를 성찰하고 되짚어 보는 이유다. 과거는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다. 과거는 기억하는 현재의 사실이다. 과거는 현재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현재이자 미래다. 과거는 미래에 다가올 현재를 통해 다시 기억될 것이다. 기억은 과거로 구성된 실체적 텍스트를 넘어 현재에서 과거를 사회적 기억으로 재구성하는 ‘재-구성-하기’(re-member-ing)의 과정이다. 기억이 사실을 담는 그릇을 넘어 의미를 생산하는 도가니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듣기의 윤리’가 절실하다.
※ 평화통일 칼럼은 「평화+통일」 기획편집위원들이 작성하고 있습니다.
전 영 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