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32023.09.

경기도 파주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황금빛 가을 들녘. (뉴스1)

평화통일 창

우리와 닮은 듯 다른 북한의 추석

교통 체증·명절증후군 없지만
생활수준 따라 ‘끼리끼리 문화’ 두드러져

2023년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
남과 북이 분단돼 70여 년간 갈라져 살고 있지만, 추석은 남북한의 동질성을 찾을 수 있는 민족 대명절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남한과 닮은 듯 다른 북한의 추석 명절 풍경을 소개한다.

북한은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1967년 추석 명절을 지내는 것을 금지했다가 1972년부터 성묘만 허용했다. 그러다 1988년 다시 민속 명절로 지정하고, 매년 민속놀이와 경기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한다. 북한에도 남한과 같이 가을에 추수한 햅쌀로 밥을 짓고 떡을 만들어 조상의 묘를 찾는 등 한민족의 문화와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민속 명절보다 국가 명절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추석 명절 휴일은 단 하루. 남한은 추석 명절 연휴가 사흘 이상이어서 해외나 국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지만, 북한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휴일이 하루뿐이기도 하지만, 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문제와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것도 주요 요인이다.

차례상, 집안 형편에 맞춰 간소하게
추석 명절에 북한에서는 주로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끼리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남한처럼 ‘민족의 대이동’으로 벌어지는 교통 체증이나 여성들이 겪는 스트레스성 ‘명절 증후군’ 같은 건 없다.

오히려 북한 경제의 시장화 이후 주민들의 생활수준에 격차가 발생하면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을 구별 짓는 ‘끼리끼리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배경과 환경, 권력이나 계층과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개인 또는 사회집단에서 나타나는 무의식적 성향을 뜻하는 ‘아비투스(Habitus)’와 같은 것으로, 이런 현상은 추석과 같은 명절에 더욱 두드러진다.

북한의 장례문화는 주로 공동묘지에 매장하기 때문에 한식과 추석에는 대부분 묘지에서 차례를 지낸다. 북한 주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집안 형편에 맞게 차례상을 준비하고, 조상의 묘를 찾는다. 벌초는 추석 당일에 하며,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한 후 차례상을 펼친다.

차례상을 준비함에 있어서도 남한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남한에서는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 등과 같이 격식을 갖춰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반면, 북한은 격식을 맞추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간소하지만 정성을 들여서 조상이 주로 좋아했던 음식을 위주로 준비한다. 형편이 괜찮은 가정에서는 문어와 이면수 같은 해산물과 갖가지 과일, 송편, 나물 반찬, 이밥 등 꽤 값비싼 음식들을 올린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도 평소에 아끼고 아껴 한 가지라도 더 올리려는 마음으로 차례 음식을 준비한다. 저마다 가족들은 순서대로 차례를 지낸 후 묘 앞에서 돗자리를 펴고 모여 앉아 술과 음식을 즐기며 도란도란 정을 나눈다.

지난해 추석부터 다시 열린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 장면.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의 대표적인 추석 음식 역시 남한처럼 ‘송편’이다. 송편을 빚는 방식은 지역별, 가정별로 모양이나 소에서 차이가 있다. 송편 모양은 빚거나 틀로 찍어내며, 송편 소에 들어가는 재료를 보면 함경도와 양강도와 같은 추운 지방에서는 보통 콩이 들어가는데, 갖가지 채소를 볶아 넣는 집도 있다. 평안도나 황해도 지역에서는 콩, 밤, 대추와 같은 것을 송편 소에 넣기도 한다. 그러니 집집마다 송편 맛과 모양이 특색이 있어 이집 저집 송편 맛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반면, 평양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추석 명절을 맞아 김일성·김정일 동상과 국가유공자들을 안치한 혁명열사릉에 헌화하고 참배하는 행렬이 이어진다. 이는 국가 명절이든 민속 명절 모두 비슷한 풍경이다. 놀이공원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대도시에서는 가족들끼리 놀이공원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추석에 즐기는 국가적인 ‘민속경기’
추석 명절에는 아이와 어른들이 민속옷(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각 시와 군, 인민반에서 준비한 명절 운동회를 즐길 수 있다. 북한이 사회적으로 즐기는 민족체육에는 씨름, 그네뛰기, 널뛰기, 제기차기, 줄당기기(줄다리기), 활쏘기, 길쌈(단심줄)놀이 등이 있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윷놀이와 장기와 같은 놀이도 즐긴다. 남한에서도 익숙한 민속놀이들이다.

북한은 민족체육으로 즐기는 민속경기를 1990년대 중반부터 장려하기 시작했다. 1994년부터 전국 윷놀이경기를 개최했으며, 2002년부터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 대회가 조선중앙TV를 통해 중계됐다. 대황소상 씨름경기대회는 국가적인 행사로 해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개최됐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3년간 열리지 못한 이 대회는 지난해부터 다시 열렸다.

씨름은 2018년 11월 26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남북한 공동유산으로 등재된 민속놀이다. 그런데 오랜 분단으로 말미암아 경기 운영방식은 물론 씨름 기술이나 용어, 체급, 경기장 등 여러 측면에서 남북한 간 차이가 있다.

이처럼 북한의 추석 풍경에서는 남한과 많이 닮았으면서도 오랜 분단으로 달라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남북한의 민속명절 풍경을 보면 금방 하나가 될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언제쯤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앉아 추석 명절을 즐길 수 있을까. 그날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조 현 정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이음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