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32023.09.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8월 10일 보도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7차 확대회의 현장 모습. 노동신문은 전날 열린 확대회의 소식을 전하며 “조선반도(한반도) 지역에
조성된 엄중한 정치군사정세에 대처해 군대 전쟁 준비를 보다 철저히 갖추기 위한 중대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확대회의를 소집했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포커스

북한 군사력 강화가 동북아 질서에 미칠 영향

군비 증강, 북·중·러 밀착
한·미·일 협력 강화로 안보 우려 해소해야

북한은 9월 9일 정권 수립 75주년을 기념하는 ‘민간무력열병식’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들어 세번째 열병식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수공장 현지지도 소식을 연달아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군사력 강화 및 과시 움직임이 동북아 국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봤다.

8월 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주재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7차 회의가 열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날 회의 안건은 △공세적인 군사적 대응안 결정 △유사시 전쟁 준비태세 확립에 대한 토의 △주요 지휘성원의 해임 및 임명 등이었다. 또 이 자리에서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을 기념하는 ‘민간무력열병식’ 개최가 결정됐다. 9월 9일 열병식이 개최된다면 이는 올해 들어 세 번째 열리는 열병식으로, 2023년은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이 가장 많은 열병식을 치른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오늘날 열병식은 주요 국경일이나 중요한 군사 행사를 기념해 한 나라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선호된다. 특히 권위주의 정권이 열병식에 많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열병식을 통해 우월한 군사력을 외부 세계에 과시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주민 단합과 국가정체성 확립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병식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열병식에 참석한 인물과 그들의 좌석 배치 등은 권력 서열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열병식은 때로 군사적 의미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보다 ‘정치적 의식(political ritual)’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의 열병식은 군사력을 평가하고 전략적 의도를 가늠하기에 좋은 척도다. 북한에 대한 정보 확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북한의 열병식은 최신식 무기체계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까지 전해주는 정보 제공 단서가 돼왔다. 북한은 열병식을 통해 외부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강한 결의를 과시하고 동시에 신설 부대 및 최신식 무기를 공개해 군사력을 뽐낸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총 열여덟 번의 열병식을 개최했다. 2016년과 2019년을 제외하고 매년 열병식이 진행됐으며, 한 해에 두 차례 이상 한 경우도 있다. 북한은 주로 각종 기념일의 정주년(整週年·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을 맞을 때 열병식을 개최했으나 2021년 9월 9일 정권 수립 73주년 기념 열병식을 하는 등 특별한 해가 아닐 때도 열병식을 했다.

북한은 열병식을 통해 단 한 번도 시험 발사하지 않은 신형 무기체계를 공개하기도 하는데 화성-17형(2020년 10월 당 창건 기념일), 화성-18형(2023년 2월 건군절) 같은 전략무기가 모두 열병식을 통해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어떠한 무기체계는 열병식에서 공개된 후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계열인 북극성-4형(2020년 10월 당 창건 기념 열병식)과 북극성-5형(2021년 1월 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은 북극성-4형과 5형을 열병식을 통해 공개한 뒤 2년 이상 흐른 지금까지 시험 발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2021년 발간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서를 작성한 일부 국가는 북극성-5형이 모형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북한이 이처럼 완성되지 않은 무기체계까지 열병식에 공개하는 이유는 하나다. 북한의 발전된 무기상을 외부 세계에 과시해 적성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군 현대화 열망
열병식은 한 국가의 자원이 국방 분야에 얼마나 많이 배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최근 북한은 핵과 재래식 무기 증산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의 잦은 군수공장 현지지도가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8월 6일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8월 3일부터 5일까지 초대형대구경방사포탄 생산 공장, 전략순항미사일과 무인공격기 엔진 생산 공장, 새로운 약전기구공장 건설 현장 등을 방문한 사실을 보도했다. 노동신문 8월 14일 자에는 김정은이 8월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전술미사일, 이동식발사대, 장갑차, 포탄 등을 생산하는 공장들을 방문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북한에서 김정은의 군수공장 현지지도를 보도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군 현대화를 부단히 강조했다. 최근 군수공장 방문 과정에서도 현대화를 반복해서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생산 시설의 현대화, 신형 무기 개발이 군의 현대화에 포함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군 현대화가 반드시 무기 생산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통상 군의 현대화는 새로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물질적 능력뿐 아니라 교리, 조직, 훈련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지난해 9월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 가능성을 명시한 최고인민회의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이하 핵무력정책법)’를 발표하고 북한 핵정책이 공세적으로 변화했음을 공표했다. 또한 새로운 핵교리로 해석될 수 있는 법령 발표와 맞물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 맞춰 실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각종 발사 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도 각종 한미 연합훈련 기간을 전후로 발사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3월에는 실전 대응 가능성을 언급하며 핵반격 훈련까지 진행했다. 북한이 하반기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 시작에 맞춰 8월 24일 실시한 인공위성 발사는 실패로 끝났다.

7월 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현장 모습. 노동신문은 7월 29일 ‘조국해방전쟁(6·25전쟁) 승리 70돌(전승절) 경축 열병식을 본 각 계층 인민들의
격정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이 사진을 실으면서, 열병식을 본 주민들이 “위대한 수령을 모신 인민은 언제나 승리한다”,
“만고 절세의 영장 위대한 김정은 동지 만세”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가속화되는 동북아의 전략적 불안정성
특히 북한의 최근 행보는 중국, 러시아의 지지를 등에 업고 군사 협력까지 추진할 가능성을 키우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개최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6차 회의에서 현재의 국제관계 구도를 신냉전으로 규정하고 이를 군사·외교 전략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7월 27일 ‘전승절(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을 맞아 러시아, 중국 대표단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러시아, 중국 대표단의 전승절 70주년 기념 열병식 참석을 두고 언론과 전문가들은 한·미·일 공조에 대응한 북방 3국의 결속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열병식을 통해 군사강국의 위용을 과시하고 이를 경제적 이익 창출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경우 열병식뿐 아니라 ‘무장장비전시회-2023’도 관람했으며 이후 김정은의 주요 군수공장 방문과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7차 회의에서 무기 대량생산 주문과 맞물려 북한의 대러 무기 판매 가능성이 대두됐다. 특히 러시아 공군 소속 일류신(IL)-62 여객기 1대가 8월 1일 평양에 도착해 다음 날 모스크바로 돌아가면서 북한의 대러 무기 판매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북한은 국방력 강화가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주변국의 안보 위협을 자극함으로써 동북아 안보지형을 위태롭게 만드는 게 현실이다. 한국과 일본은 고도화되는 북핵 위협에 대응해 상호 군사협력과 자체적인 국방력 증강을 지속적으로 모색 중이다. 북한의 핵능력 과시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에 의한 확장억제의 유효성을 다시 고려해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자체 핵무장에 대한 선호 여론이 높아진 한국은 3축 체계를 보완·강화하고 전략사령부 창설을 결정하는 한편, 미국과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통해 북핵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수십 년간 지켜온 전수방위 원칙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반격능력’을 갖출 계획임을 선언했다. 2023년 방위백서에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으로 표현한 일본은 방위비를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1%에서 2%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미국은 북핵 위협에 놓인 동북아를 하나의 전구(戰區)로 간주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을 촉진하고 있다. 한·미·일 군사 협력 수위를 끌어올리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구체화됐다. 한·미·일 3국 정상은 최소 연 1회 정상회의 개최에 합의했으며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도전이나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로 약속했다. 한·미·일은 특히 북한 핵위협에 대해 미사일 경보 실시간 공유체계 가동 및 3국 훈련의 연 단위 실시를 결정하는 한편 새로 부각되는 북한의 사이버 공격을 차단하기 위한 3자 실무그룹까지 신설했다.

이처럼 북핵 위협은 역내 국가들의 자체적인 국방력 강화 움직임과 함께 역내 안보 협력 강화를 추동하고 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동북아 지역 군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국방비 지출은 약 464억 달러로 일본(460억 달러)을 제치고 세계 9위에 위치했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해 5년 안에 방위비를 2배로 증액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일본이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방위비 지출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경우 2022년 국방비 지출이 2920억 달러로 8770억 달러인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10년 전에 비하면 두 배로 늘어난 수치다. 매년 국방예산을 6~7% 이상 인상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국방비 지출 세계 3위인 러시아는 2022년 전년에 비해 9.4% 증액된 860억 달러를 국방비로 지출한 것으로 발표됐다.

신냉전 구도 속 우리의 역할
물론 역내 군비 지출 증강이 모두 북핵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미·중 경쟁 구도와 대만해협 내 긴장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방비를 증액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각 국가별 안보 우려와 북핵 문제가 결합해 역내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치구도는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우리는 미국, 일본과 지역적 도전과 도발, 위협에 대해 정책 조율을 공약함으로써 북핵 위기 시 빠른 협조체제 구축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향후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지지와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북방 3국이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공유하며 유대를 강화해나가는 이상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 강화나 국제무대에서 북한 규탄 성명 채택에 찬성할 가능성은 극히 낮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러 밀착관계가 군사 협력, 특히 북한의 대러 무기 수출로 이어진다면 한국이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신냉전 구도로 말미암아 북한의 군사도발에 유엔 차원에서 공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미·일 안보협력 관계를 통해 대북정책의 허점(loophole)을 메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국은 대립구도가 강화되는 상황에서도 북한 문제에 있어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한·미·일 협력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미·일 협력이 안보적 차원에서 북한의 핵위협 대응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차원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한 조건 조성에도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한·미·일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 원칙’을 통해 힘이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하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현재의 대립구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북한이 깨닫게 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이 한·미·일에 열린 자세를 취할 때 안보 우려 해소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

김 보 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