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22020.04

3월 26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 관련 G20 특별화상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

특집 1

감염병의 세계화와 보건협력

국경 없는 감염병,
동북아 보건협력 거버넌스 주도해야

1377년 베네치아는 흑사병 유입을 막기 위해 입항하는 선박을 40일간 바다에 머물게 했다. 이후 숫자 40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Quarantina’는 검역을 의미하는 영어 ‘Quarantine’의 어원이 되었다. 숫자 40은 기독교 문화에서 ‘고난 극복’을 상징한다. 노아의 방주는 40일간의 홍수를 극복했으며,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은 40년 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예수는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며 사탄의 유혹을 극복했고, 부활한 지 40일 만에 승천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지 40일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이 감염되어 일상이 멈추는 고난이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 시대 인간의 이동과 감염병의 확산
글로벌 시대 항공교통의 발전은 상품과 자본뿐 아니라 인간의 이동 속도와 규모를 획기적으로 증대시켜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감염병 확산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드리웠다. 사실 이는 예견된 것이다. 과거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양 문물만 전달된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페스트균이 유럽에 전파되었고, 대항해 시대 바닷길은 스페인 정복자들뿐만 아니라 구대륙의 질병을 신대륙에 옮겨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켰다. 지진과 내전을 겪은 아이티에 파병된 유엔평화유지군의 네팔 출신 병사가 콜레라를 창궐시켜 많은 사람들이 폭력이 아닌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에 호응하여 중국과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한 나라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인간 이동의 증가가 감염병의 확산을 초래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치명적인 감염병의 확산은 사회를 공포에 빠뜨려 마치 전쟁이나 폭동이 발생한 것처럼 사회의 기본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다. 코로나19 발병지인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이탈리아, 이란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많은 감염 사례와 사망자가 발생하여 학교와 사업장이 문을 닫고 입출국이 제한되고 있다. 이미 세계 항공업계는 벼랑 끝에 몰렸으며 각국의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고 있다. 스포츠 이벤트와 공연이 취소되고 많은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파급효과는 너무나 커서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가 되었다.

야생동물과의 접촉, 유전자 조작 및 생체 실험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사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생태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질병들이 등장하고 있다. 높은 전염성과 치사율을 보이는 신종 감염병의 예방백신과 치료약이 개발되지 못한 상황에서 질병이 급속히 확산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건강 문제 차원을 넘어 사회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를 깨뜨리는 안보적 위협이 될 수 있다. 보건안보 개념은 공동체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보건위협요인에 접근하여 해결을 모색하는 것으로 감염병 문제는 보건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기본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즉, 질병역학이나 백신개발과 같은 보건의학적 조치나 대응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 법제, 행정, 외교, 교육, 기술 등 비(非)보건의학적 접근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
예방과 대비, 사회 시스템의 안정 작동 필요
보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은 오랫동안 ‘예방’적 접근을 취해왔다. 이것은 예방접종이나 독감백신처럼 축적된 질병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행이 예상되는 질병의 확산을 예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신종 감염병, 바이오 테러, 생체실험 사고와 같은 보건안보 위협은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에, 사실상 예방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시민들은 공포와 불신에 빠지며 사회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지난 3월 26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옥외공간에 설치된 개방형 선별진료소에서
영국 런던발 여객기를 타고 입국한 무증상 외국인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은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
따라서 오늘날 보건안보는 ‘예방’ 접근뿐만 아니라 위기상황에 혼란 없이 대응하기 위한 ‘대비’ 접근을 함께 모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갑작스런 보건 위기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필수적인 사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 한편으로는 보건의학적 대응으로 검역과 치료 및 백신 개발의 노력을 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 교통, 교육, 에너지, 식품, 치안, 국방, 농업, 유통 등 필수적인 사회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뿐 아니라 비(非)보건 분야에서의 위기관리 능력을 증진하고 유기적 대응 시뮬레이션을 마련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국제적으로도 보건위기 상황에 초국가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2004년 사스 사태를 겪으면서 국제사회는 신종 감염병에 대한 정보공유와 상호협조의 필요성을 크게 인식했다. 그 결과 2005년 WHO의 세계보건규칙(IHR)을 개정하여 각국이 질병 발생에 대한 정보를 즉각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어 2008년 UN 총회에서 “보건을 전문적, 기술적 영역에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국가와 사회의 핵심 이슈가되는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2014년에는 질병과 바이오테러에 대한 국제적 대응을 모색하기 위해 국가 및 민간이 참여하는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이 미국의 주도로 발족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질병대응을 포함한 보건안보가 개별 국가만의 역할과 책임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공공재로써 다루어져야 함을 강조 하는 것이다.

한국은 보건당국, 전문가, 제약업계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 보건협력 거버넌스 구축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로써 감염병뿐만 아니라 고령화,만성질환, 식품안전성 등 공동의 보건 관심사가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중·일 모두 강점을 가진 첨단기술을 보건안보에 접목함으로써 공동이익창출의 아이템으로 개발하여 동북아 보건협력 모델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수준 높은 한국의 보건의료 역량, 정책 분야는 보완해야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가 주도하여 예방접종과 구충사업을 실시하고 적극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보건위생교육을 강조하여 비교적 높은 수준의 보건의료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백신사업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으며 백신 전문가인 故이종욱 박사가 WHO 사무총장을 맡아 세계백신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2014년 GHSA가 시작될 때부터 한국은 10개 운영그룹 국가로 활동하였고 GHSA 제2차 총회를 서울에 유치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질병관리본부(KCDC)를 설립하여 정부 내 감염병 콘트롤타워를 단일화하였다. 이러한 노력 으로 한국의 보건안보 역량은 선진국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2019년 글로벌보건안보지수(GHS Index)에서 한국은 종합 9위에 올랐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한국의 높은 의료수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선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은 2015년 메르스를 겪은 후 국가방역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였고, WHO의 합동외부평가를 자발적으로 수검하였다. 당시 전반적으로 양호한 판정을 받았으나 위기소통, 우선순위 자원 확보, 내외부 정책조율, 위기상황 시 의료진 파견 등의 항목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9 GHS Index에서도 한국의 질병 감지·대응 역량은 10위 안에 들었으나, 관련 법률 및 위험요소관리 부문은 20위 바깥으로 평가되었다. 이는 정치, 행정, 법제의 문제이다. 높은 보건의료 수준에도 불구하고 위기상황 ‘대비’를 위한 상황판단과 정책 우선순위 설정을 위한 소통과 조율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행히 위기 상황에서도 우리 보건의료진의 헌신적 노고와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드라이브 스루 검사, 사회적 거리두기, 자발적 격리, 확진자 동선 지도앱 개발 등 위기극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져 큰 효과를 거두었다. 정부의 초기대응을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발원지인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과 인적 교류 규모를 고려할 때 기본 사회 시스템이 마비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또한 뒤늦게 발병이 증가한 다른 나라들이 한국의 대응방식을 참고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이탈리아는 전국에 이동제한령을 내리고 약국과 생필품 판매업소를 제외한 모든 상점에 휴업령을 내렸다.
사진은 지난 3월 12일 문을 닫은 상점 앞을 지나는 사람들 ⓒ연합
한국 주도의 동북아 보건협력 거버넌스 모색
이번 사태는 동북아 국가들에게 질병정보 교환과 검역공조 등 보건협력의 필요성을 확인시켜주었다. 중국은 ‘건강중국 2030’ 계획을 거창하게 추진했으나 획일적이고 통제적인 접근의 한계를 드러냈다. 일본 역시 높은 위생수준을 자랑해왔으나 질병 관리의 일차적 책임을 진 지방보건당국이 능력의 한계를 보였고 올림픽에 목을 맨 중앙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질병역학 정보는 군사정보처럼 숨겨야 할 대상이 아니며, 상호의존 시대에 문을 닫아걸고 해묵은 민족감정에 기대어 여론몰이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감염병 확산 앞에서는 오로지 협력과 공조만이 해결책이다.

그동안 한·중·일 보건협력은 연례 보건장관회담 수준의 대화에 머물렀다. 그마저도 외교적 갈등이 불거지면 흐지부지되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은 보건 당국, 전문가, 제약업계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 보건협력 거버넌스 구축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로써 감염병뿐만 아니라 고령화, 만성질환, 식품안전성 등 공동의 보건 관심사가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중·일 모두 강점을 가진 첨단기술을 보건안보에 접목함으로써 공동이익 창출의 아이템으로 개발하여 동북아 보건 협력 모델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중견국 한국이 동북아 보건협력을 주도한다면 정치, 역사, 영토 등 갈등요인을 우회하여 안정적인 교류협력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한반도 통일과정에서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위기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조 한 승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