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22020.04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 도보다리를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2018년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업을 실천하면서 신뢰회복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연합

진단 2

열전과 냉전이 지배한 한반도
남북관계 교착에도 할 일 많아

2020년이 시작되고 봄이 왔지만 문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 느낌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숭숭하게 만들면서 모든 일상이 비정상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18년 남북 및 북·미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확산되었던 화해와 평화의 기대가 2019년도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좌절된 이후 사그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는 결렬의 원인을 상대에게 두면서도 관계 개선의 끈을 놓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핵문제 해결이나 북·미관계와 관련된 전망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더욱 문제인 것은 하노이 회담 이후 남북관계도 급속히 악화되면서 2018년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실천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대화나 교류도 대부분 막혀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교착되어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고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미의 입장 차이
남북관계를 이야기할 때 기본적으로 따져보아야 할 것은 남북한 당국의 입장 그리고 주변국의 정책 등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와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이 처한 현실이다. 즉, 남북관계 진전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안팎의 요인들을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북한의 입장과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이후 ‘병진노선’이 보여주고 있듯이 핵무기를 기반으로 한 체제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경제성장을 토대로 인민의 생활개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 집권 이후 개혁조치로 경제상황이 부분적으로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대외관계 개선, 특히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 근본적인 도약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남한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북한체제의 확실한 안전 보장이 모든 문제보다 선행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유엔제재가 강하게 유지되어 북한 내부의 현실이 어려워진다고 하더라도 이 때문에 정책 을 전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대외정책의 변화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계기성 사업을 발굴하여 추 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사업의 성과를 선보인 ‘개성 만월대, 열두 해의 발굴’ 전시 ⓒ연합
남한의 경우 문재인 정부가 대북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한반도 운전자론’을 제기하면서 북핵문제 해결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국면에서 한국정부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한국도 당사자라고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북핵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한국은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조연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 북한이나 미국이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현재 상황은 양측 모두 우리에게 역할을 주는데 소극적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남한 내의 정치사회적 상황도 녹록지 않다. 하노이 회담 좌초 이후 북한에 대한 남한사회의 부정적인 여론이 증가하였고 야당을 비롯한 보수적인 정치세력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문제가 전 사회적인 관심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논란이 많은 북한문제에 적극성을 보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핵문제 해결이나 북·미관계 개선이 핵심적인 의제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의 지속과 개인적인 성과를 위해서 북한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민주당을 포함한 미국 주류의 시각은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다. 북한의 핵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고 국제적 수준의 핵 관리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북한이 미국에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위협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오히려 한반도 지역에 북한과 같은 국가가 유지되는 것이 중국에 대한 견제와 동북아시아에 대한 개입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트럼프의 입장에서 연말의 대통령 선거가 어려워지지 않는 한, 현재의 고착된 북·미관계를 전환시킬 필요성도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남북 간 불신 줄이고 계기성 사업 발굴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각 주체들의 입장과 현실을 고려한다면 앞으로의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북관계의 개선과 이를 통한 평화정착이 남북뿐 아니라 민족공동체 구성원에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의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남한에 대한 북한의 불신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한 정부의 진정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북한에 대한 아쉬움이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북한에 대한 설득 작업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북한이 남한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하고 약속한 내용 가운데 가능한 사안부터 실천해야 하고, 최소한의 실천 노력을 북한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시민사회도 꾸준히 북한과의 협력 사업에 대한 의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2019년 5월 20일, 통일부 어린이기자단 합창단이 통일교육주간 개막식 공연을 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서 평화와 공존의 문화를 창출하는 것도 필요하다. ⓒ연합
둘째,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미국의 결정력이 크고, 한미관계에 대한 보수집단의 비판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미국과 갈등이 야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이나 평화정착 과정에서 미국의 입장만을 수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의 이익이 핵심인 국제정치 현실에서 한국과 미국의 이해는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있다면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이 대표적인 사업인데, 미국의 설득이 여의치 않으면 대응논리를 마련하고 미국과의 마찰이 있더라도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

셋째, 북한의 태도 변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계기성 사업을 발굴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코로나19로 개최가 연기되기는 했지만 도쿄 올림픽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북한이 공동참가에 적극적이었다는 경험을 생각한다면 공동선수단뿐 아니라 공동 응원 등을 추진하면서 남북한이 같이할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은 역사적인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20주년을 맞는 해라는 점에서 이를 기념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북한이 5주년, 10주년과 같은 ‘정주년’을 중시하고 최고지도자 사업도 중요하게 다루어 왔다는 점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청정지역’이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코로나19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방역과 치료 그리고 관련 장비 제공 등 대북지원사업이나 보건의학적인 차원의 협력사업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각종 시민사회 단체별로 가능한 사업들을 구상하여 제안할 수 있다.

넷째, 남북관계 개선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남한체제 내부를 정비해야 한다. 북한, 미국과의 관계를 다루는 정책과 더불어 남한사회 내부의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 전환의 추동력이 상실될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 화해협력과 평화정착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더불어 추진해야 한다. 단순히 통일교육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의 문화를 창출하여야 한다. 제도수준의 변화도 절실하다. 정부부처 간의 업무분장은 물론이고 지자체 등과의 협력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을 포함한 남북관계 관련 법률과 지자체의 시행령에 이르기까지 법령을 개정하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법령 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남북관계 역사를 돌아본다면 좋았던 10년의 시절이 문제가 아니라, 좋지 않았던 60년의 시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남북관계가 교착되어 있는 현재에 해야 할 일들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정책 추진위한 사회적 토대 준비
70년이 지난 분단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는 10년에도 미치지 못한다. 3년의 열전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은 냉전이 한반도를 지배했다. 따라서 남과 북 모두가 평화와 통일을 노래하면서도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냉전적 삶에 익숙하다. 남북관계가 나쁜 상태를 정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경제력이 남한의 2%에도 미치지 못하고 군사예산도 남한의 4%에 불과한 북한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감과 적대감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흔히 남북관계 문제를 이야기할 때 대북정책이나 대외정책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올바른 정책의 수립과 더불어 이를 지탱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관계개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개선의 계기가 왔을 때 제도적인 차원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필요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여부이다. 그동안의 남북관계 역사를 돌아본다면 좋았던 10년의 시절이 문제가 아니라, 좋지 않았던 60년의 시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남북관계가 교착되어 있는 현재에 해야 할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정확한 이해도 동반되어야 한다. 북한을 남한의 기준에서 희망적 사고를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Two Korea를 지향하는 대남정책 및 통일정책의 변화까지 꼼꼼하게 검토해야 남북관계를 위한 정책과 운동이 가능할 것이다.
이 우 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