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감염병의 세계화와 보건협력
감염병 관리, 남북 간
정보교환체계 구축 시급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의 테드로스 게브레예수스(Tedros Ghebreyesus) 사무총장은 결국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팬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이는 WHO 역사상 세 번째 선언이다.
중국에 이어 유럽보다 먼저 코로나19의 유행을 맞았던 우리나라도 3월 30일 현재 9,661명의 확진자와 158명의 사망자를 기록 중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 개학이 연기되고, 종교행사까지 중단하는 초유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었고, 전 세계 나라들이 앞다투어 국경을 전부 또는 일부 닫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영화 속 이야기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감염병 유행
이번과 같은 감염병의 대유행은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가깝게는 메르스, 에볼라, 사스 등의 유행이 있었고, 역사적으로도 14세기 흑사병(약 1억 명 사망 추정), 20세기 스페인독감(5,000만 명 사망) 등 많은 감염병 유행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대규모 감염병 유행은 과거의 대유행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인간이 야기한 생태계 파괴 등이 주요 원인이다. 둘째, 국경을 넘나드는 대규모 지역 간 이동으로 전파 속도가 빨라져 위험의 크기가 매우 커졌다. 따라서 많은 전문가들은 감염병 유행이 일개 국가를 넘어 전 인류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이란, 에스파냐(스페인) 등의 환자와 사망자 수가 한국을 추월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코로나19 환자 발생국이었다. 물론 이는 중국과 인접해 있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인접국 일본에 비해 매우 적극적으로 환자를 찾아낸 까닭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급증하는 환자로 세계 여러 나라가 우려를 표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급변하여 빠르고 적극적인 대응, 투명한 행정 등 대처방식이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고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인 측면도 있다 하겠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한반도 이남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휴전선 이북 북한의 상황은 어떨까?
격리를 기본으로 하는 북한의 대응조치
북한은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에 세계 어떤 나라들보다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1월 22일 북한은 모든 외국인의 관광을 중단하고, 25일부터는 베이징을 오가는 항공편을 취소하는 등 국경폐쇄조치를 신속히 시행했다. 2월 6일부터는 위생방역체계가 국가비상방역체계로 전환되어 중앙으로부터 도, 시, 군에 이르기까지 비상방역지휘부가 조직되었다. 최고 지휘 조직은 비상설 중앙인민보건지도위원회다. 2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전염병예방법」에 따라 종래 격리기간을 14일에서 30일로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모든 조직 단위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검역, 소독, 격리 등의 조치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손 씻기, 마스크 착용 등 위생선전 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길거리 방송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유행과 관련하여 두드러지는 것은 「노동신문」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매일 상당한 지면을 지속적으로 할애하여 WHO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의 코로나19 발생실태, 임상·역학적 특징, 대응 방법, 의학관련 전문 정보를 구체적인 수치까지 사용해 매우 신속하게 보도 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북한은 관리대상자도 ‘의진자’와 ‘의학적 관찰자’로 구분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진자’란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전염병을 앓는 것으로 의심되는 자로, 코로나19와 유사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의학적 관찰자’란 병 증상은 없으나 병이 발생하기 전 24일(잠복기) 동안 바이러스 전파지역에서 여행, 거주했거나 감염환자와 접촉한 사람을 말한다. 이들에 대해서 북한이 기본적으로 취하고 있는 대응방식은 격리이다.
2010년 2월 23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북한에 전달할 손 소독제 20만ℓ가 트럭에 실려 있다.
이명박 정부는 손 소독제 10억 원 어치를 트럭 20대에 나눠 실어 북으로 보냈다. ⓒ연합
북한 당국은 2월 26일 일차적으로 외국인 380명을 격리시킨 것을 비롯하여 외국 출장자들과 그 접촉자들, 유사증상을 보이는 자들을 격리하고 의학적 감시와 함께 검병검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격리조치를 한 사람들의 규모는 평안남도에 2,420여 명, 강원도 1,500여 명이라고 발표했는데 3월 초 적어도 1만 명 이상의 격리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9일 「노동신문」은 ‘그간 자택과 기관들에 따로 격리되어 있던 2차 위험대상(접촉자)들 가운데서 1차 위험대상(입국자)들과 접촉한 때로부터 40일이 지났지만 코로나19로 의심할 만한 증상이 없는 대상들은 먼저 격리를 해제시키고 그들에 대한 의학적 감시를 계속 철저히 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그 규모는 강원도 1,020명, 자강도 2,630명 등이었다. 또한 평양에 격리된 채 체류하던 외교관과 대사관 직원, 무역업 종사자 등으로 추정되는 100여 명 안팎의 외국인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출국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북한 당국은 현재까지도 북한 내 코로나19 환자가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정부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코로나19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벌이고 있다. 특히 호(戶)담당의사들의 주민 건강 모니터링, 이동 시 역학증명서 발급 조치 등은 우리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다음과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검진과 방역, 방호 장비 등의 절대부족이다. 둘째, 격리자들의 생활보장을 위한 식량 등 지원물자의 부족이다. 셋째, 지역사회 감염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가정 여력 부족) + 조기발견·치료(고가의 첨단 장비 + 고가의 약 부족) + 환자 발생 시 이를 치료할 시설, 장비, 약제의 부족이다. 넷째, 투명한 정보공개와 국제적 정보교류 및 협력의 부족 등 대응 여건의 미비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검진키트와 방호복의 절대적 부족은 ‘장기간 격리’ 위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기화한 경제제재와 식량생산량 부족 등으로 많은 주민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감염병의 전파는 자칫 대량 사망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노정하고 있다.
감염병 관리만큼은 그 내용의 전문성, 파급효과, 범영역에서의 대처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민간단체가 주도하기보다는 양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진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운영될 수 있는 감염병 정보 교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내용적으로는 남북 전문가 간 실시간 긴밀하고 정교한 협의가 가능해야 한다.
감염병 분야 남북협력의 경험과 필요성
남북 정부가 나름 최선의 노력을 통해 신종 감염병의 유행에 대처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규모 감염병의 대응은 한 나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감염병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그간 감염병과 관련된 남북 간 협력은 많은 전례가 있다. 결핵, 말라리아 사업이 대표적이고 2006~2007년 북한의 대규모 홍역 유행시기에는 국제기구와 함께 6개 월~45세 사이 1,620만 명(전체 주민의 70%)에 대한 예방접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는 타미플루 40만 명 분 등 신종플루 치료제 50만 명 분을 북한에 공급하기도 하였다. 2010~2014년 독일 카리타스를 통해 북한 어린이(7세~16세) 약 370만 명에 대해 B형 간염, 일본뇌염, 풍진 예방접종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남북 공동 감염병 관리가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는 2010년 말라리아 사업이 잘 보여준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등을 이유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마침내 대북 말라리아 방역 지원까지 중단한 탓에 남한 내 말라리아 환자도 늘어나 서둘러 지원을 재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지원이 중단되자 작년 1~6월 경기 지역 말라리아 환자 수가 153명으로 증가하였다.
조선중앙TV는 지난 2월 1일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철저한 방역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은 황해북도 위생방역소 직원이 격리 병동을 소독하고 있는 모습 ⓒ연합
남북 간 정교한 협력체계 구축해야
감염병 관리만큼은 그 내용의 전문성, 파급효과, 범영역에서의 대처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민간단체가 주도하기보다는 양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진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운영되는 감염병 정보 교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남북 전문가 간의 긴밀하고 정교한 협의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코로나19 유행과 관련해서는 시급히 남북 전문가, 당국자 간 협의체계를 가동하고, 보호장비, 검역장비, 진단장비, 치료약 등 북한이 필요한 물자를 지원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개성과 신의주 검역체계 현대화 및 확장 등 협력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호 협력의 성공적인 경험과 신뢰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빠른 시간 안에 「긴급재난협정」과 「보건의료협정」 체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남북 평화와번영을 이루려면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 작업이다.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남북관계 전화위복의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신 영 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