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22020.04

분석

남북협력과 평화경제

새로운 사고,
창의적 방법으로 협력의 공간 열어야

한반도의 지난 2년은 그야말로 격변의 시간이었다. 출구가 없어 보이던 한반도 정세는 2018년을 기점으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되며 평화 분위기로 급반전을 이뤘다. 비록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 대화의 교착 국면이 길어지며 협상의 속도가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운전자’, ‘중재자’,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한반도 비핵·평화프로세스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한반도 문제 해결에 진정성을 보이고 있으며, 향후 남북 간의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교류협력사업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 나가야 한다.

우리 정부가 북한과의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다. 특히 2016년 이후 강화된 UN 대북제재 결의안으로 사실상 북한의 모든 대외경제관계가 차단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교류와 대북정책이 원활하게 작동하기는 어렵다. 또한, 대북제재의 완전한 해제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작금의 국면에서 북한과의 현실적인 협력이 가능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협력 증진 위한 해법과 평화경제
문재인 정부는 최근 한반도의 변화와 새로운 질서를 반영한 우리 주도의 정책인 ‘신한반도체제’를 제시하였으며 그 실현 방안으로 ‘평화경제’ 개념을 도입하였다. ‘평화경제’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기본으로 하며, 우선적으로 평화를 공고히 하여 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이를 다시 안보 환경 조성에 재투자하여 강화시키는 평화 우선의 선순환 전략이다. ‘평화경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범위 안에서 추진하되, 우리 주도의 남북협력사업 개발을 우선해야 한다. 남북의 동반 성장을 위한 남북공동협의체 구성 등 민간 영역에서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또한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최종적인 목표로 설정하여, 북한 내부 경제성장을 고려한 개발 협력을 추진하고, 북한의 자생력 극대화와 아울러 우리의 내수 시장 확대를 통한 경제 구조 개편과 동반 성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평화경제를 위해서는 단계적인 추진 전략 수립과 더불어 평화협력공동체, 경제협력공동체, 문화공동체의 선순환관계 설정도 필요하다. 또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평화체제 구축을 주도하기 위한 능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북을 향해 지속적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제안했고, 일부는 구체적인 논의와 실행이 이어졌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제재와 사업 주체 간 의견 조율, 비용 문제 그리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최근 코로나19 같은 전염병까지 현실적인 장벽에 막혀 추진이 요원한 상태다.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비관할 필요까지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협력 증진을 위해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당위성을 역설했다. 남북 간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을 실현할 방법을 남북이 함께 고민하고, 이를 통해 남북 간 관광을 재개하고 북한 관광을 활성화시키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북한으로의 개별관광 추진을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통일부는 즉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동력 강화 차원에서 북한 지역 개별관광을 제시하면서 개별관광의 개념과 필요성, 방법과 승인 요건, 제재 저촉 여부 등의 쟁점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였다. 개별관광이 유엔의 제재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우리가 독자적으로 추진 가능한 사업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밝힌, 북·미대화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개별관광을 모색하겠다는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즉 개별관광을 둘러싼 많은 우려를 공론화하고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은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파주시 임진각을 찾아 북쪽을 바라보는 관광객들 ⓒ연합
그렇다면 왜 개별관광일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에 제안했던 주요 사업들은 남북 간 합의가 이루어졌을 뿐 좀처럼 진척이 없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북제재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관광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몇 안 되는 분야이기에 이를 통한 협력의 가능성은 오래 전 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 밖에 과거 금강산과 개성 관광의 경험도 개별관광을 독자적으로 전격 추진한 원인이다. 다만, 기존 사업자였던 현대아산을 통한 단체 관광이 아닌 제3국과 비영리단체를 통한 방식을 강조하며 대북제재를 피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사회문화 성격의 인적 교류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개별관광 추진을 본격화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북한지역 방문을 희망하는 이산가족과 실향민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남북 연계 관광을 시범적으로 운영하여 접경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으며, 침체기에 들어선 관광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도 정체되어 있는 남북관계를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써 협력 공간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측면이 크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북한 개별관광을 공식화하며 적극적인 추진 의사를 표명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예상된다. 개별관광이 작금의 교착 국면을 타개할 적절한 트리거(Trigger)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에서 국민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관광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 개별관광, 세밀하고 철저해야
북한 개별관광 허용에 대한 쟁점은 몇 가지 있다. 통일부가 제시한 방법 중 하나는 이산가족 또는 사회단체의 금강산 및 개성 지역 방문을 허용하여 인도주의적 가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추진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긴 하나 개별관광이 실향민의 마음을 얼마나 채워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이 아닐지라도 사회문화교류 차원의 개별 방문이 대북제재를 얼마나 피해갈 수 있을지 도 알 수 없다. 세컨더리 보이콧 등의 조치에 따른 불이익의 위험을 감수하고 참여할 개인과 단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현재 북한은 유엔제재는 물론이고 미국의 개별 제재도 받는 복합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개별관광을 본격화하기 전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동의를 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도 필요하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후 1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북한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관광이 실제로 허용되더라도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남는다. 현행 규정은 방북 시 북한 당국의 신변 안전 보장을 담은 초청장을 받아 통일부의 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다(「남북교류협력법 시행령」 12조 2항). 하지만 이번에 추진하는 개별관광은 개별 여행사와의 계약 조건에 신변 안전에 관한 내용만 포함되어 있으면 비자를 통한 방북을 승인한다고 결정했다. 이는 오히려 국민의 신변 안전 보장 요건을 완화한 것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의 공감과 지지 확보
한편 이를 수용할 당사자인 북한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북한이 우리 국민에게 관광 목적으로 입경을 허용한 사례는 전무하다. 우리가 제안하는 개별 관광이 수익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북한을 만족시킬지도 의문이 남는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이후 어려움 속에서도 집요할 만큼 꾸준하게 관광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개별관광이 북한이 꿈꾸고 있는 관광 대국의 한 방법이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서는 더욱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결국 관건은 국민적 공감과 국제적 지지 확보에 있다. 코로나19로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무리하게 개별관광을 추진한다면 지금껏 해왔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이 요구 된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현재 금강산과 개성을 제외하곤 인프라가 갖추어진 관광자원이 풍부하지 않으며, 이 또한 관광 수요와 비용 측면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통일부가 제시한 제3국을 통한 관광은 비용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외국인들의 남북 연계 관광도 아직 준비가 미흡하다.

대북제재를 피해하기 위해 관광이라는 보편적인 방법을 선택했더라도 관광이 추구하는 본래의 취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합리적인 비용에 기초해 이용자에게 휴식, 기분 전환, 자기 계발, 자아실현 등 관광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관광이 이루어지는 대상 지역의 인적·물적 및 기타 여러 측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까지도 관광의 한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북 간의 교류협력 추진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며, 그 자체가 목적일 필요는 없다. 한 가지 개별 사업의 측면이 아니라 긴 안목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대북제재의 틀은 준수하되 그 안에서 우리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남북협력방안을 모색한 다는 것은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체제전환국과 개도국에 시장경제 및 경제 발전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는 기술협력 사업의 한 형태인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nowledge Sharing Program, KSP) 등은 추진해볼 만하다. 먼저 이를 위한 ‘남북공동협의체’부터 구성해 북한의 관광 사업은 물론이고 경제발전 전반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며 투자 관련 법제 등을 정비하여 본격적인 협력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개별관광은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와 대북제재의 틀을 와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다시금 협상의 테이블로 나오는 동력을 확보하려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표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추진하려는 개별관광을 통한 대북 협력사업은 북한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북·미 협상 교착과 코로나19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그 전망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또한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발사 훈련과 대남 비방에 나서는 동시에 친서를 보내면서 양면 전술을 펼친다. 도무지 그 속을 알기가 어렵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동력이 더 상실되기 전에 우리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북한의 호응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며, 새로운 사고로 남북관계의 공간을 넓혀 비핵화·평화체제를 견인해 나가야 한다. 개별관광을 추진하여 평화의 분위기를 지속해나가면서 비핵화 협상 재개의 모멘텀을 이끌어내 남북, 북·미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공고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 유 석 한국수출입은행 북한·동북아연구센터 책임연구원